vol.104-[엄민용 전문기자의 <우리말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20>]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서는 인류가 멸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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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 중에는 글의 형태나 발음은 비슷하지만 뜻은 완전히 다른 말이 적지 않습니다.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엉뚱한 표현을 만들게 됩니다.
요즘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많이 쓰는 ‘햇빛’과 ‘햇볕’도 그런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두 말은 의미가 완전히 다르므로 반드시 구분해 써야 하지요.

 우선 ‘햇빛’은 말 그대로 “해의 빛”, 즉 광선입니다. ‘살아생전에 그의 작품은 햇빛을 보지 못했다’처럼 “세상에 알려져 칭송받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쓰이지요. 반면 ‘햇볕’은 “해가 내리쬐는 뜨거운 기운”, 곧 온기를 뜻합니다. 요즘의 더위를 만든 것은 ‘햇빛’이 아니라 ‘햇볕’이지요.
 따라서 “햇빛이 따뜻하다”라거나 “햇볕이 눈부시다”라고 쓰면 안 됩니다. 따뜻한 것은 햇볕 때문이고, 눈이 부신 것은 햇빛 탓이거든요.

 그런데 어떤 때는 ‘햇빛’을 쓰기가 뭐하고, ‘햇볕’ 또한 아닌 것 같은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표현에서는 ‘햇살’을 쓰는 것이 좀 더 나을 수 있습니다. “해에서 나오는 빛의 줄기. 또는 그 기운”을 뜻하는 ‘햇살’에는 ‘햇빛’과 ‘햇볕’의 뜻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방으로 뻗친 햇살”을 의미하는 ‘햇발’로 써도 되고요.

하지만 “아기가 타고 있는 유모차에 ‘햇귀’가 살포시 들어와 앉아 있습니다” 따위처럼 문학적 표현에 자주 쓰이는 ‘햇귀’는 함부로 쓰면 안 됩니다. ‘햇귀’는 “해가 처음 솟을 때의 빛”을 뜻하는 말로, 한낮의 태양빛을 의미하는 말로는 쓸 수 없기 때문이지요.

 또 요즘 신문과 방송에서 툭하면 “작렬하는 태양이…” 같은 표현을 쓰는데요. 정말 그랬다가는 큰일납니다. 왜냐고요? 그랬다가는 인류가 멸망하고 말거든요.
 ‘작렬하다’는 “포탄 따위가 터져서 쫙 퍼지다”를 뜻합니다. 그 때문에 ‘이승엽 선수의 홈런포가 작렬했다’처럼 “운동경기에서의 공격 따위가 포탄이 터지듯 극렬하게 터져 나오다”를 뜻하는 말로도 쓰입니다. 그러니 태양이 작렬하면 인류가 멸망하는 것은 물론이고, 태양계 전체가 사라지게 될 겁니다.

 ‘작렬하는 태양’은 ‘작열하는 태양’으로 써야 합니다. “불 따위가 이글이글 뜨겁게 타오르다”를 뜻하는 말이 ‘작열하다’이거든요.
 참, ‘태양’을 ‘햇님’으로도 많이 쓰는데요. 이 역시 바른말이 아닙니다. ‘왕자+님’이 ‘왕자님’, ‘대리+님’이 ‘대리님’이 되듯이 해를 높이면 ‘해님(해+님)’이 되거든요.

 끝으로 늦장마가 이어지는 요즘에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를 얘기하면서 ‘하늘이 꾸물거리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이럴 때는 ‘꾸물거리다’가 아니라 ‘끄물거리다’를 써야 합니다.
 왜냐고요?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국어사전을 뒤져 보세요. 그래야 우리말 실력이 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