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00-[엄민용 전문기자의 <우리말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 우리 땅에 돈나물은 자라지 않는다
꽃샘추위가 말 그대로 시샘을 하고 있지만, 햇볕은 나날이 더 푸근해지고 있습니다. 그 온기 속에서 산과 들에서는 푸른 생명들이 하나둘씩 솟아납니다. 차가운 겨울을 이겨내고 삶의 기지개를 켜는 ‘녀석’들이 참으로 정겹습니다. 기특하기도 하고요.
해마다 그들에게서 교훈을 얻곤 합니다. 겨울의 끝자락에 봄이 있듯이 인생의 고난 끄트머리에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서 배웁니다.
그건 그렇고요. 이즈음 들녘에서 곱디고운 얼굴을 내미는 ‘녀석’ 중에는 흔히 ‘돋나물’이나 ‘돈나물’ ‘돗나물’로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물김치로 담거나 초무침으로 해서 먹는 이것은 비타민C와 인산이 풍부하고, 새콤한 신맛이 식욕을 돋우는 데 그만입니다.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가 높습니다.
하지만 이 귀한 먹을거리의 이름을 제대로 쓰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나 카페는 물론이고 신문과 방송에서도 ‘돈나물’ ‘돋나물’ ‘돗나물’ 등 엉뚱하게 부르는 일이 흔하거든요.
잎사귀에서 즙을 짜 벌레에 물린 데나 불에 덴 데 바르는 약으로도 쓰는 이 신통방통한 ‘녀석’의 바른 이름은 ‘돌나물’입니다. 이 녀석이 바위나 돌 틈에서 잘 자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지요.
이즈음에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이지만 사람들이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것에는 ‘연산홍’도 있습니다. 봄이면 진달래와 함께 우리의 산과 들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녀석 말입니다.
봄을 대표하는 꽃인 철쭉에는 몇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흔히 ‘연산홍’이라고 부르는 것인데요. 네이버의 백과사전도 이 녀석을 ‘영산홍(연산홍)’으로 적어 놓아 마치 ‘영산홍’과 ‘연산홍’이 모두 바른말인 것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영산홍’만 표준어입니다. 말 그대로 “산을 붉게 비치게 한다”는 한자말 ‘영산홍(映山紅)’이 이 꽃의 진짜 이름인 거죠. 이 꽃을 ‘왜철쭉’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아울러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진달래꽃은 ‘참꽃’으로 부르지만, 독성이 있어 사람이 먹으면 큰 탈이 나는 철쭉은 ‘개꽃’으로 부른다는 사실도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특히 꽃이 예쁘다고, 철쭉을 배경 삼아 어린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주는 일은 ‘범죄’와 같으니, 조심들 하시기 바랍니다.
봄에 피는 꽃은 아니지만, ‘영산홍’보다 더 많이 잘못 쓰는 꽃 이름도 있습니다. 바로 ‘사루비아’라는 녀석입니다. 봄에 씨를 뿌리면 여름과 가을에 꽃을 피우는 이 녀석의 꽃잎 끄트머리에서 단물을 빨아 먹은 기억이 많은 사람에게 있을 듯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 꽃의 바른 외래어 표기는 모두가 아는 ‘사루비아’가 아니라 ‘샐비어(salvia)’입니다. 이 ‘샐비어’를 ‘사루비아’로 잘못 부르는 것은 일본의 영향 때문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ㄹ’ 받침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샐비어’를 제대로 소리 내지 못하고, ‘사루비아’라고 소리를 냅니다.
우리가 ‘ㄹ’ 받침을 소리 내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다들 ‘샐비어’로 소리 낼 수 있는데도 일본 발음을 그대로 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