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9-[송상훈의 식물이야기] 향신료 식물2

프로필_송상훈

향신료에 대한 엄격한 정의는, 첫째, 식물성. 둘째, 양념(부재료), 셋째, 식물의 잎을 제외한 부분이라고 전회에 소개했다. 그러나 허브라 통칭하는 향기 있는 식물의 잎도 부재료로 사용되면 향신료에 포함된다는 정의가 더 일반적임도 밝혔다.
식물 전체가 향신료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체로 식물에 따라 뿌리, 줄기, 열매, 씨앗, 잎, 껍질, 꽃 등 일정 부위를 취하여 독특한 맛과 향을 갖춘 향신료를 만든다.

향신료라는 언어가 조금 낯설기는 하지만 우리 주변에도 많은 향신료가 있다. 생강, 파, 양파, 마늘, 고추, 참깨, 배초향, 쑥, 황기, 인삼, 더덕, 냉이, 달래, 부추, 산초, 초피, 유자 등등 들과 산에서 접할 수 있는 많은 식물들이 있다. 비록 이들은 약초로, 한편으로는 음식의 주재료로도 사용되기에 향신료와의 경계가 애매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음식의 부재료로 활용한다면 모두 훌륭한 향신료인 셈이다. 가령 쑥갓이나 미나리를 주재료로 한 국물 요리가 있다면 이 때의 쑥과 미나리는 향신료가 아니다. 그러나 매운탕 같은 음식에 가미되어 향과 맛을 더한다면 이 때의 쑥과 미나리는 향신료라 할 수 있다.

지금부터는 매우 글로벌 한 향신료 식물들을 3~4회에 걸쳐 살펴 보겠다.
가장 대표적 향신료인 후추(Pepper), 석란육계(錫蘭肉桂. 시나몬 Cinnamon.), 정향(丁香. 클로브 Clove), 육두구(肉荳?, 넛맥 Nutmeg), 올스파이스(allspice), 샤프란, 강황 등을 살펴 보고 허브류 식물들도 소개하겠다.

 

 

후추, 향신료의 제왕

상쾌한 향과 매콤한 맛으로 전세계를 사로잡은 후추과 식물인 후추(호초 胡椒)는 기원전 1210년에 제작된 이집트의 미이라에서도 발견되었고 로마제국 이래 유럽은 물론 동양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은 글로벌 스타인데 고추 다음으로 많이 생산되는 향신료다. 인도 남서부의 말라바(Malaba)해안이 원산지이며 한반도에 전해진 때는 기원전 120년쯤 중국을 통해서이며, 고려 때 대중화되었고 조선 때 수요가 늘어. 일본을 통해 수입했다. 호초라는 이름은 중국에서 전해졌기에 붙은 이명이다.

이슬람교도인 아랍 상인들에 의해 유럽과 중국으로 전해진 후추는 유럽에서는 약처럼 취급되고 정력제로 혼동되었으며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한편 육류 섭취가 주를 이룬 중세유럽인들에게 고기의 누린내를 제거하고 냉장고를 대신하여 신선도를 지속하는 생활필수품이기도 했다. 로마제국은 게르만족의 잦은 침입을 당했는데 이 때 게르만족이 요구하는 물품이 황금과 후추였을 정도로 큰 가치가 있었다. 카돌릭 유럽과 이슬람 아랍의 갈등은 십자군전쟁으로 나타났으나 그 이면에는 동방무역이 끊기면서 후추가 부족해지마 후추를 열망하는 유럽 경제계의 욕구도 한 몫 했다.

조선시대 때의 후추 역시 한약재와 주요 향신료로 쓰였다.
이영미의 ‘세계 향신료 음식문화 비교 연구’에 따르면 1400년대~1700년대의 조선시대 고조리서인 산가요록(1450년경), 수운잡방(1500년대), 음식디미방(1670년경), 주방문(1600년대 말), 증보산림경제(1766년)에 겨자, 계피, 고추, 깨, 마늘, 미나리, 방풍, 부추, 산초, 생강, 염교, 정향, 차조기, 파, 후추, 회향 등 총 16종의 향신료가 등장하는데 이 중 가장 자주 쓰인 향신료는 후추였다. 같은 연구에서 1700년대~1800년대에는 생강이, 1900년대에는 참깨가 가장 많이 쓰였지만 이때도 후추는 지속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한다.

고온다습한 인도가 원산지이지만 최대 산지는 베트남이다. 담쟁이 덩굴 비슷하게 줄기 마디에서 뿌리(착생근)를 내리며 의지할 기둥을 타고 오르는 덩굴성 상록식물이다. 보통 암수한그루지만 암수딴그루도 있다. 암꽃은 짧고 수꽃은 길다. 꽃은 자작나무과 꽃과 비슷해 보인다.
재배할 때는 기둥(부축목)을 세우고 기둥 주변의 흙에 여러 개의 후추 마디를. 묻고 줄기를 부축목에 의지하게 하면 경쟁하듯이 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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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가 우리나라에 자생하지 않지만 제주 해안가와 남해의 섬에는 후추와 매우 흡사한 후추등(개후추. 일본후추, 바람등칡, 풍등갈, 호초등)이 자생한다. 후추와 구별이 어렵다.
후추과 후추속에는 1,000여 종이 있으며 이중 2종만이 제대로 된 후추향을 가진 후추를 맺는다. 그래서일까? 후추등에 개후추라는 이명이 붙은 것은?
짐작하듯이 후추등의 열매로 후추를 대용할 수 있으나 품질은 떨어진다고 하며 필자도 아직 후추등으로 만든 후추를 접하지 못했다.
후추등도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먼저 관상용으로 매우 훌륭하다. 잎과 줄기에서는 후추 냄새가 나므로 입욕제로도 활용된다. 말린 잎은 중풍과 관절염, 타박상, 기관지질환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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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는 지역이 다르니 후추와 후추등을 직접 비교할 기회가 없다. 그러나 보다 더운 지역에서 자라는 후추 잎이 더 두툼하고 잎맥의 볼륨감이 풍부한 듯하다. 독자들이 제주나 남해의 섬 어디선가 이와 비슷한 식물을 만난다면 후추등이라 여기면 족하다.

후추의 채비신(chavicine)과 피페린(Piperine) 성분이 매운맛을 낸다.
성숙하기 전의 후추 열매는 녹색이다. 이 녹색후추를 과피까지 통째로 데쳐서 말리면 흙후추(Black pepper)다. 껍질에는 테르펜유가 함유되어 있어 독특한 향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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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후추의 과피를 그대로 둔 채 말리거나 염장하면 녹후추(Green pepper)인데 매운 맛이 적고 향이 신선하다. 한편 적후추(red pepper)는 완숙한 열매를 말린 것인데 매운 맛이 없이 달콤하고 향이 부드럽다. 완숙한 열매를 물에 불려 .과피를 제거하고 데쳐 말리면 백후추(White pepper)인데 매운맛이 덜하면서 향이 부드러워 식육가공이나 수프에 사용한다.

 

 

후추라는 불리지만 후추가 아닌 향신료

후추라 불리지만 후추과와는 다른 식물로 만들어진 향신료도 있다. 브라질후추(Brazilian pepper)와 워터페퍼(Water Pepper: 여뀌)가 그것이다.

브라질후추는 브라질후추나무(Brazilian pepper, Schinus terebinthifolius)의 열매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에 자생한다. 주로 비가 많은 지역에 자생하는 암수 따로인 식물이며 열매를 먹은 새의 배설을 통해 번식한다. 생존력이 대단해서 벽의 틈, 나무의 홈, 염분이 많은 모래 어디서건 기회만 주어지면 생존한다.
꽃은 가을과 봄 두번 개화하며 겨울에 열매가 붉게 익는다. 옻나무과이므로 후추과와는 관계 없지만 열매는 달콤한 꽃향기와 과일향기가 풍부해서 가루를 내어 생선이나 카레에 혼합하고 야채에 곁들여 식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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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나무과 그렇듯이 독성 있어 인후염, 위장염, 설사 및 구토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약성이 풍부해 류머티즘, 염증, 부종, 부종, 결핵, 궤양, 요도염, 비뇨 생식기 질환 약품으로 개발 중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여뀌(Water Pepper)도 향신료로 이용된다. 여뀌는 잎이 톡 쏘는 매운 듯한 신맛이 있는 마디풀과 식물이다. 피부에 좋아 기름으로 추출하여 사용하고 향신료로는 재배종 매운 맛을 함유한 잎을 활용한다.
어린잎은 살짝 데쳐서 무침으로 식용하거나 생선회 비린내를 제거하는 고명(beni-tade 紅蓼, red water pepper)으로 활용한다.
약간의 독성이 있지만 여뀌를 식용한 건 오래 전부터이다. 장에 절여 식용했다는 우리 고문서도 있고, 일본에서는 식초에 잎을 절여 다양하게 활용한다.
열매도 매콤해서 고추냉이에 섞기도 하는데 혈액순환에도 도움을 준다. 한방에서는 신경통, 타박상, 부인병과 항문질환에 사용한다. 민간에서는 벌레 물린데, 뱀독 치료제로 활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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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뀌는 개여뀌와 달리 꽃차례가 엉성하다. 개여뀌는 가장 흔한 여뀌인데 이삭이 풍성하고 보기 좋다. 개여뀌 잎을 짓이겨서 개울에 풀면 물고기를 마비되어 움직임이 둔해진다.
여뀌와 비슷하지만 잎에 검은 무늬가 있고 매운맛이 없이 신맛만 있는 바보여뀌와도 구별한다.

 

 

계피를 아시나요? 시나몬 & 카시아

석란육계(錫蘭肉桂. 시나몬 Cinnamon.)은 후추와 함께 가장 선호되는 향신료인데 계피의 한 종류다.
계(桂)란 향기 있는 나무의 통칭이다. 가령 월계라 불리는 금목서(금계화나무. 만리향)과 은목서(은계화나무)는 계화(桂花)라 부른다.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나무라는 의미다. 중국의 유명 관광지 계림(구이린)은 금목서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찬가지로 계피(桂皮)는 향기로운 껍질을 가진 나무를 말한다. 주로 녹나무과 나무 중에 향기로운 껍질을 가진 나무를 말함이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계피나무는 크게 4종이며 그 밖에도 여러 식물을 더할 수 있다. 가령 생달나무는 일본시나몬이라 불리는데 4대 계피나무만큼은 아니어도 계피향을 뿜는다. 향신료 팔각(Star Anis)을 만드는 열매를 맺는 붓순나무도 계피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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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계피나무는 시나몬(참시나몬. 석란육계 錫蘭肉桂, 실론Ceylon 시나몬. Cinnamomum verum)과 육계나무(Cinnamomum Cassia), 음향(陰香. Cinnamomum burmannii), 사이공계피나무(Cinnamomum loureiroi)다.
이중에서 석란육계(錫蘭肉桂)만을 시나몬(Cinnamon.)이라 하고 나머지는 모두 카시아(Cassia)라 부른다. 석란육계는 세계가 가장 선호하는 계피나무이다. 우리가 생강, 대추를 섞어 차로 달여 마시거나 수정과로 만드는 계피나무는 육계나무(Cimmamomum Cassia)이다. 수피 즉 계피가 가장 두껍고 향도 강하며 매운맛도 강하다.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데 6월에 황녹색 꽃이 피고 이후 열매는 검게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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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몬의 이명에 섞인 석란(錫蘭) 또는 실론(Ceylon)이란 단어의 뜻은 스리랑카이다. 즉, 시나몬이란 스리랑카에서 자생하는 육계나무의 껍질이다. 부드러운 맛과 향이 특징이어서 많은 이들이 선호한다. 어린 석란육계의 껍질을 통계피라 하고, 수령 많은 석란육계의 자주색 껍질을 후계피라 하며, 아주 어린 석란육계의 회색 껍질을 박계피라 하는데 통계피가 제일 상품이고 박계피가 제일 하품이다.
이에 비해 중국과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껍질이 가장 두꺼운 육계나무,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많고 값이 싸면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음향(陰香), 베트남에 많지만 최근 제주에서도 재배하는 사이공계피나무는 모두 카시아라 부른다. 따라서 앞서 밝힌 생달나무나 팔각나무도 카시아라 할 수 있다. 카시아는 향이 강하고 매운 편이다.

 

 

팔각나무, 열매는 팔각, 껍질은 계피

팔각(Star Anis. 대회향)은 팔각나무 열매를 말린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수피는 계피로도 활용된다. 인도와 중국 원산이지며 열매를 팔각이라 하는데 향신료로 이용한다. 이 식물은 독감치료제인 타미플루 원료이기도 하다.

향신료로 이용하는 팔각나무 열매인 팔각은 회향과 딜(dill. 시라) 흡사하고 맛은 감초처럼 달달시큼하며 씨보다 껍질의 풍미가 더 좋아 열매를 통째로 갈아서 사용한다. 다른 재료와도 잘 어울려서 오향과 카레의 주요 성분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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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의 성질은 계피나무들과 다르지 않다. 맵고 따뜻하기에 한기를 체외로 배출하고 위장을 튼튼하게 하며 이뇨를 돕고 요통에도 효험 있다. 팔각 가루는 찜이나 오래 끓이거나 졸이는 음식에 주로 사용하므로 생선조림이나 보쌈 등 비린내와 누린내를 제가하는데 에 적합하다.

국내에는 이 팔각나무와 매우 유사해 구분이 어려운 붓순나무가 제주에 자생하는데 열매와 잎에 신경독이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붓순나무도 한약재로 활용되어 통증치료, 피부염, 치통, 탈로, 노화방지 약재로 활용된다. ?팔각나무와 붓순나무 모두 열매는 별 모양인데 마치 쪽동백나무의 충영(벌레집)과도 비슷하다.

향신료 식물 이야기는 다음 회에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