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몽골] #몽골에서 #어떻게든 (7) ? 박정현 단원
피곤한 울란바타르의 일정을 마치고 3일 만에 다시 출근하는 아침, 무거운 몸을 겨우 이끌고 나와 출근차를 넋 놓고 기다리고 있던 중, 오른편에 어떤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느릿느릿 그쪽을 바라보았다. 종종 와서 애교를 부리던 개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와서 몸을 부비더니 배를 훌러덩 내밀고는 놀아달라고 교태를 부렸다. 평소 같았으면 쓰다듬어주고 긁어주고 같이 놀았을 텐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저 빨리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 멀리 차가 올 길만 보았다. 그러자 개는 흥미가 떨어졌는지, 일어서서 가던 길을 가려 내 바로 옆을 지나갔다. 그 와중에도 계속 살랑이던 그 꼬리가 내 다리를 쳤고 그 순간, 처음으로 나는 가벼워 보이던 그 모습과는 다른 둔탁한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얼얼해진 나는 멀어져가는 개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고 문득, 아련해졌다.
이번 달에는 행사가 참 많았다. 다신칠링 솜 주관의 농업 박람회가 있었고, 우리도 출전했으며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우리 조림장이 올해 푸른아시아 조림장 중 높은 생존율을 기록하게 되어 그 부상으로 현장학습 겸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주민분들에게 한국에서부터 준비해온 선물도 드리고, 아리랑도 불러드리고, 몽골 카드놀이도 배우는 등 함께 어우러지던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봉사자들도 방문했다. 간만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던, 보람찬 시간이었다.
이러한 굵직한 일정 외에도 스스로 계획했던 일이 있었다. 다신칠링의 영농 사업화를 위한 발전 제언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다신칠링의 몇 년 간의 자료를 살펴보고, 주변 관광지를 조사하는 등의 노력을 하였다. 다만, 중요한 자료들이 몽골어로 작성되어 있어서 주변에 도움을 청할 일이 많았으나, 사업종료를 앞두고 있다보니 모두가 바빠서 피드백을 받지 못해 충분한 자료 해석을 결국 하지 못하게 되었고, 보고서는 미완의 상태로 남게 되었다. 패기 있게 삽 대신 펜을 들겠다고 선언하던 과거의 내가 있었다. 그 모든 것의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마무리가 잘 지어지지 않아 너무나 아쉬울 뿐이다.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 속에서 그 시간이 더욱 빨리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 것은, 그 이전의 시간까지 반추하곤 했기 때문이겠다. 이제 오늘이 지나면, 우리가 만날 날은 하루밖에 남지 않게 된다. 이 시점에 자연스레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것은,
‘나여, 최선을 다 했는가?’
기억한다. 도중에 잠시 슬럼프도 왔었고, 태만하게 근무한 적도 있었다는 것을. 또한, 나도 모르는 짜증으로 인해 무미건조하게 주민들을 대한 날도 있었다는 것을. 그래, 그것 모두를 ‘일상의 태도’가 아닌 ‘잠시의 일탈’로 말해도 될 만큼, 나는 최선을 다 했는가.
업무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 내가 조사한 고사 수목의 수량이 주민분들이 구덩이 작업을 하신 것과 많이 차이가 나더라. 그래, 제일 중요한 생존율의 신뢰도를 흔드는 이 큰 문제를 ‘나의 무능력’이 아닌 ‘불가피한 실수’라고 말해도 될 만큼, 나는 최선을 다 했는가.
4월부터 10월까지 이곳에서 일곱 달의 시간은, 놀아달라고 배를 드러내고 꼬리를 살랑이던 개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내가 부르지 않아도 가까이 와서 내 주변을 돌아다니며 나의 눈길과 손길을 바랐다. 쭈구려 앉아야 개와 눈을 마주치며 장난을 치듯, 내가 조금 더 다가와 함께 놀고 함께 살기를 시간은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깨달아 진심으로 소망하는 것은, 오늘 내가 개한테 드러낸 피곤함으로 어제의 내가 시간을 대하지 않았길. 실망하며 떠나간 개의 뒷모습과는 다른 뒷모습으로 시간과 이별할 수 있기를.
기다리다 지쳐 떠나간 개가 꼬리로 친 정강이 어딘가는 속으로 멍이 든 것 같았다. 그렇게 가벼워 보일 정도로 나를 보며 힘차게 흔들던 꼬리였기에, 그 무겁지 않은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꼬리가 그렇게 가벼워 보인 것은 정녕 그것이 가벼웠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나를 보며 그만큼 너가 힘차게 흔들고 있던 것이었음을, 이제야 나는 깨닫다.
나는 이 시간과 이별하며 감사할 수 있을까, 아니 감사해도 될까? 그렇게 내게 노력했던 시간, 너와 이별하며 나는 ‘너의 노력을 이제야 깨달았다’며 차마 감사의 말 하지 못하고 회한에 찬 눈빛으로 눈물짓다 돌아서지는 않을까. 미리 답을 엿보려 아무리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봐도 조금도 추측할 수 없다. 아마 그것은 이별의 순간, 그 때의 내 자신으로부터만 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별을 나는 두 번 겪을 참이다.
사업장을 떠나면서 한 번,
몽골을 떠나면서 또 한 번.
그때의 이별은 지금보다 조금은
기뻐함으로 맞을 수 있기를
다짐하고 기도한다.
#몽골에서 #어떻게든 #이별을앞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