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3-[Main Story] 폭염재난, 온난화에 따른 ‘열돔(Heat Dome)’이 원인
올해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 에어컨 없이 열대야를 견뎌야 하는 시간들은 참 어려운 시간이었다. 이제껏 에어컨 없이 지내면서도 산자락 밑에 바람 잘 통하는 위치에 집이 있다는 것을 감사히 여기며 살았다. 아무리 덥다 하더라도 조그만 견디면 지나간다는 생각에 에어컨이 없는 것이 지구를 위하는 것이라 스스로 위로하며 살았는데 올해는 그 생각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새벽 3-4시가 되어도 좀처럼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 잠을 이룰 수 없는 열대야와 한 주, 두 주가 지나가도 쉬지 않고 계속되는 지루한 폭염과 후덥지근한 날씨는 이제 더 이상 에어컨 없는 친환경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선풍기 하나로는 점점 더워지고, 높은 습기를 포함하는 폭염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게 되었다. 의료 전문가들도 이구동성으로 에어컨의 필요성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에어컨은 무슨 돈으로 사고 사용하면서 부담하게 되는 전기료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자료출처(미국 메인대학 기후변화연구소, 18.07.23)
기상청은 지난 8월 22일까지 올해 집계된 폭염일수가 31.2일을 기록하면서 1994년 31.2일을 근소하게 뛰어 넘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폭염은 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일 때를 의미하며 기상청은 전국 45개 주요 관측지점에서 확인된 수치를 계산해 전국 폭염 일수를 계산한다. 44개 지점 모두 33도를 넘는 것으로 관측되면 폭염 일수 1일이 가산되고, 절반가량의 지역에서만 관측되면 0.5일을 가산하는 식이다.
폭염의 정의는 국가마다 다르고 절대적 정의와 상대적 정의로 구분하고 있다. 절대적 정의는 온도 또는 열적 스트레스 지수가 지정된 임계치를 초과하는 날이 일정 기간 지속하는 경우로 정의한다. 이를테면 우리나라는 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하는 경우를 폭염으로 정의하고 있다. 반면 상대적 정의는 지역과 사람에 따라 열적 스트레스가 다르게 나타나고, 이러한 반응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캐나다는 혹서의 지속으로 사망률이 높아질 확률이 90%에 이르는 경우로 정의하고 있다.
3년 전부터 한반도의 폭염이 ‘열돔(Heat Dome)’ 현상에서 기인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열돔은 지구가 더워지고 여기에 기압과 대류 조건이 결합할 때 생긴다. 한마디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현상 가운데 하나다. 열돔은 지상에서 5-7킬로미터 위치에서 형성된 고기압이 정체하면서 내려앉은 공기가 지표면 가까이에 열을 가둬놓는 현상이다. 열에 의한 일사병뿐만 아니라, 오염이 대기 중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지표면 가까이에 머무르면서 사람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열돔을 형성하는 고기압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것은 몽골에서 여름철 상승한 기온 때문에 열기를 품고 형성된 고기압이다. 이 고기압은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이동해왔고, 마침 북태평양에서 만들어져 한반도로 이동한 거대한 고기압 장벽에 눌려 열돔 현상을 만든다. 몽골에서 기후변화 대응 사막화방지 활동을 하고 있는 푸른아시아의 오기출 상임이사에 따르면, 몇 년 전 까지 섭씨 10도 언저리를 유지해왔던 몽골의 5월 평균기온이 온난화로 인해서 36도까지 상승했고, 여름철 기온은 66도까지 올라갔다. 이처럼 몽골에서 열기를 품고 이동해온 고기압을 ‘열적 고기압’이라 한다. 전문가들은 올해 미국과 유럽에서 발생하고 있는 폭염도 이 열돔 현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본다. 대기 순환에 기여하는 제트기류가 약화되면서 대기 흐름이 정제되고 적도 부근의 뜨거운 공기가 유입되면서 열기가 누적돼 북미, 유럽, 중동 등 지구 중위도 지역에 폭염이 이어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제트기류가 약화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올해만 있는 특이한 현상일까? 아니면 앞으로도 반복될 현상일까? 북극을 둘러싼 제트기류는 온도차이가 심한 두 대기가 부딪히며 생기는 현상으로, 온도차가 클수록 기압차도 커지므로 강력한 제트기류가 형성된다. 그러나 북극의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제트기류의 약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지구 평균기온이 0.89도 상승할 때 북극은 최근 20년 동안 4~5도 상승해 (IPCC 보고서, 2015) 세계에서 가장 빠른 온도상승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즉, 기후변화로 인한 북극의 온난화 속도가 늦춰지지 않는 한 올해와 같은 폭염은 더 이상 이상기후가 아닌 우리가 매년 겪을 수밖에 없는 끔찍한 재난이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다.
유럽 폭염의 경우, 아프리카에서 형성된 열적 고기압에 의한 영향으로, 전문가들은 이 폭염 때문에 올해 여름 유럽에서 약 1만 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03년 이미 유럽 전역에서 발생한 폭염 때문에 약 3만 5천 여 명이 사망한 것에 비해서 그 규모는 낮지만 폭염이 사람들의 건강과 생존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치명적이다.
최근 건강과 의료 분야 국제학술지 ‘랜싯(Lancet)’은 1981년~2010년 유럽에서 발생한 기후재난 사례를 비교분석하여, 폭염으로 인해 2071년~2100년 유럽에서 매년 15만 여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 피해지역은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등 유럽남부를 비롯하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도 해당된다.
폭염이 치명적인 이유는 높은 온도도 문제지만, 높은 습도 때문이다. 사람은 땀과 호흡을 통해서 높은 열을 제어한다. 흘린 땀이 마르면서 몸의 높은 체온이 내려가는 원리다. 그러나 높은 온도에다 습도까지 높아질 경우, 사람들이 땀을 흘리더라도 땀이 마르지 않기 때문에 체온이 내려가지 않는다. 그래서 온도와 습도가 모두 높을 경우, 문제가 된다.
그런데다 사람이 장기간 고온에 노출되었을 경우에는, 제일 먼저 땀 흘리는 것을 멈추게 된다. 땀을 흘리지 않게 되면, 아주 짧은 시간에 일사병에 걸리게 되고 몸이 뜨거워진다. 이는 또한 뇌에 영향을 미쳐 의식을 잃게 만든다. 또한 높은 기온은 신경계통과 순환기계통의 질병을 낳는다. 전문가들은 습구온도(온도계의 수은주에 젖은 헝겊을 두르고 재는 온도. 보통 습구 온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건구온도보다 낮다.)로 35도 이상의 기온에서 오래 있을 경우, 6시간 이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1995년 여름 미국 시카고에서는 692명이 폭염 때문에 사망했고, 3,300 여명이 응급실로 실려갔다. 응급실에 실려간 환자들을 연구한 한 보고서는 당시 심한 열사병 진단을 받았던 이들 가운데 28%가 1년 이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당시 이들 환자의 경우, 열과 관련된 질병이 아니라 신장 문제로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고열 관련 질병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지만, 이러한 사례를 통해서 폭염에 의한 일사병 보다는 폭염에 의한 순환기계통 관련 질병이 사망의 주요 원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밖에도 폭염은 건강뿐만 아니라 농업과 교통 등 여러 분야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폭염은 건강, 농업, 교통 등 여러 분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폭염으로 비행기 엔진이 고장 나거나 공항의 활주로, 아스팔트가 녹아내려 교통을 마비시킨다. 올해 미국과 캐나다,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장기간 계속된 폭염으로 대형 산불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 폭염이 1964년-2007년 사이에 국제 곡물 생산량의 20% 감소시켰다. 그러나 작물이 더위를 이긴다 해도, 앞으로 사람들이 작물을 경작하기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얼마 전, 외신에 의하면 인도에서 폭염 때문에 작물의 생산량이 낮아지자 매년 약 6만 여명이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기온 상승 때문에 식량위기와 함께, 기후취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계가 위협당하고 있는 사례에 해당된다.
의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선풍기는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대류를 이용하는 컨벡션 오븐처럼 뜨거운 공기를 사람에게 전달해 오히려 체온을 높이게 하므로 폭염 시에는 오히려 선풍기가 위험하다며 폭염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추는 것은 에어컨 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수 십년 전, 아니 4-5년 전에도 분명 심하게 더운 여름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더위의 경우, 온도 차이가 크지 않을지라도, 분명 체감온도는 훨씬 높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에도 섭씨 34, 35도를 오르내린 적 있었지만, 지금과 같이 끈적끈적한 무더위는 아니었다고 기억된다. 올해 더위는 내년에 또 새로이 그 기록을 갱신할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로 지구가 점점 더 더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인구의 30%가 연간 20일 이상 치명적인 폭염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게을리할 경우, 이 수치는 21세기 이내 약 74%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당장 온실가스배출을 아무리 많이 줄인다 해도, 도시의 폭염은 계속될 것이다. 지금까지 배출되어 대기 중에 잔존해 있는 온실가스의 수명이 짧게는 12년에서 길게는 3,200년이 넘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주간에 있었던 ‘야행성 폭우’ 역시 올해 있었던 기록적인 폭염이 우리나라 부근의 해수면 온도를 높여서 일어나는 이상기후 현상이라고 한다. 온실가스의 증가로 인해, 선진국들이 중심이 되어 전 세계에서 한계를 넘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증가는 취약한 나라의 특히 가난한 주민들이 생존을 위협다고 있다. 국내에서도 기후변화의 심각한 피해를 입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이다. 쪽방촌 사람들, 저소득층, 독거노인 등 에너지 빈곤층은 선풍기 하나로 이 살인적인 무더위를 견뎌내고 있다. 그들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받을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하나하나에 스며든 기후변화의 원인도 함께 성찰해보고 작지만 변화를 위한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 해마다 돌아올 여름과 폭염, 이상기후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종우 푸른아시아 캠페인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