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3-[송상훈의 식물이야기] 식물이란 존재 고찰①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영국의 큐 왕립식물원(Royal Botanic Gardens, Kew)이 발표한 세계 식물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현존하는 전세계 식물은 39만 900종에 이른다. 3만 1천종 정도가 인류에 의해 이용되는데 1만 7810종은 약재로, 5538종은 먹거리로, 1382종은 담배나 대마초 등 향정신성 기호품으로 쓰인다. 아직도 효용을 모르는 대다수의 식물을 고려한다면 식물이 얼마나 큰 자원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식물 중 21%, 즉 다섯 종 가운데 하나는 농경과 목축에 따른 서식지 파괴와 벌목, 기후변화 등 인간활동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기후변화는 현재 멸종원인의 4%밖에 안 되는 작은 요인이라지만 그 영향력은 훨씬 후에 나타날 것이기에 지금 우리가 보는 식물들을 후손은 보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미 2010년에 큐 왕립식물원과 런던 자연사박물관,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은 ‘적색경보 견본 리스트’라는 제목의 공동 보고서에서 식물종 20% 이상이 멸종될 수 있고 이는 지구 생명에 잠재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도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 571종을 관련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IUCN의 기준에 따라 분류했다.
국립수목원은 광릉요강꽃·금새우난초 등 144종은 멸종위기종으로 모데미풀·문주란 등 122종은 위기종으로 가시연꽃 등 119종은 취약종으로 만병초·히어리 등 70종은 관심종으로 제비붓꽃 등 112종은 자료부족종으로 지정했다.
‘야생 동·식물 보호법 시행규칙’에 의해 지정 및 보호되고 있는 멸종위기 식물도 65종이나 되며 이 중 이미 멸종한 식물도 적지 않다.
멸종이라 함은 인공재배 중이거나 외국의 자연에서는 자생하지만 국내 자연에서 자생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즉 어떤 지역의 특정 식물이 그 지역의 자연상태에서 자생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매년 2천여종의 새로운 식물들이 발견된다니 불행 중 다행이다. 새로운 종의 발견은 척박해진 환경에 적응하는 식물의 능력을 검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회부터는 식물이 현실에 어떻게 적응하는지 살펴본다. 필자가 직접 목도한 것은 아니고 이미 지면과 인터넷을 통해 익히 알려진 내용을 정리하는 정도인데, 이를 통해 식물의 존재를 더욱 깊이 이해할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식물의 본성, 타감작용
우리는 흔히 식물을 매우 순하고 욕심 없는 성선설적 생물체로 인식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식물의 본성과는 무관한 사람의 주관일 뿐이다.
실제로는 식물도 매우 배타적이고 경쟁적이라는 보고가 많다. 대부분의 식물들, 특히 나무는 토양의 양분을 더 많이 흡수하기 위해 화학물질을 내뿜어 다른 나무 종의 접근을 배제하며 단일종의 영역을 형성하려 한다. 이를 타감작용(他感作用. allelopathy)이라 하며 그리스어로 ‘서로(mutual)’를 뜻하는 ‘alle’와 ‘해로운(harm)’을 뜻하는 ‘pathy’의 합성어로 자신만의 터전 보호를 위해 다른 종의 번식을 막으려는 식물 고유의 생존전략이다.
소나무, 편백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뽕나무, 아까시, 호두나무, 초피나무 등에서 특히 잘 나타나지만 사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모든 식물들이 나름의 타감작용을 한다.
양수인 소나무는 더 많은 햇볕을 받기 위해 다른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는 갈로탄닌(Gallotannin)을 내뿜고 단풍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는 단풍물질인 안토시아닌으로 대신한다.
타감작용이 특히 심한 참나무는 같은 종의 어린 개체 성장까지 어렵게 한다. 이러한 타감작용의 결과 같은 종의 무리로만 이루어진 숲도 종종 발견할 수 있고 그런 숲에서 작은 개체는 발견하기 어렵다.
식물이 배타적이고 경쟁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한 소통을 한다는 보고도 있다. 식물이 위험에 처했을 때 이웃 동종식물에게 이를 알린다는 식물 커뮤니케이션은 1983년 미국 다트머스대 연구진이 밝힌 바 있다. 식물도 사회적 소통망을 가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침엽수는 박테리아 등으로부터 위험에 처했을 때 Phytoncide(피톤치드)를 내뿜어 이웃에게도 위험을 알리고 캐나다 단풍나무도 위험에 처했을 때 유사한 화학물질을 분비해 이웃에게 위험을 알린다.
2008년 미국 국립대기연구센터(NCAR) 연구진에 의해, 2012년에는 멕시코 신베스타브-이라푸아토대학 연구진에 의해 식물이 분비하는 아스피린(아세틸 살리실산)과 유사한 화학물질인 살리실산메틸(methyl salicylate)은 가뭄이나 벌레의 공격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식물끼리 위험을 알리는 신호라 분석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통이 한편으로는 타감작용으로 발현되어 동종 나무끼리의 경쟁을 강화하고 심지어 어린 개체 성장을 방해한다니 자연의 아이러니라 할 것이다.
타감작용 또한 자연의 섭리
타감작용은 식물이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이고 여러 형태로 나타나지만 결국은 자연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하는 자연의 섭리다. 가령 식물은 곤충을 비롯한 다른 동물의 먹이로 전락하지 않으려 가시를 생성하기도 하고 잎과 가지에 테르펜(terpene) 등 화학물질울 분비해 해충의 천적을 초대해 해충을 제거하기도 한다.
테르펜은 삼림욕에서 얻을 수 있는 알싸한 휘발성 향기다. 피톤치드가 주로 미생물에 대항하기 위한 항균물질이라면 테르펜은 피톤치드의 역할도 하면서 곤충을 유인하거나 억제하고 타감작용까지 하는 화학물질이다.
식물은 무려 2만 가지 이상의 휘발성 물질을 합성해 상황에 따라 분비하는데, 야생담배는 애벌레가 공격하면 니코친을 분비해 물리친다. 그러나 박각시나방 애벌레는 니코친에 잘 적응한다. 이때는 베르가모틴을 분비해 딱정벌레인 노린재를 초대하여 박각시나방 애벌레를 물리친다. 이러한 과정을 The Scientist에서는 ‘식물의 경고 시스템’이란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소나무 또한 타종과 동종에 대해서도 배타적이긴 하지만 송이버섯에게는 관대해서 자기 뿌리의 탄수화물을 제공한다. 대신 송이버섯은 질소·인·칼륨 기타 유기질소화합물을 소나무에게 제공한다. 결국 자신에게 도움을 준다면 공생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식물의 타감작용은 더러 사람들을 유혹하는 원인이다. 허브향, 쑥향, 마늘의 알싸한 알리신, 고추의 매운 캡사이신은 사람이 즐겨 찾는다. 어쩌면 이 식물들도 조금씩 사람에 저항할 수 있는 화학물질을 배합 중일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타감작용이 거북하고 이기적이라 느끼는 사람들은 잡초에게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들판과 야산에는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 나무도 아닌 소위 ‘잡초’들이 어울렁더울렁 함께 존중하며 살아간다.
서로의 뿌리를 섞고 필요한 양분을 공급하고 받으며 더불어 성장하는 공존경제를 잡초들이 보여 준다. 줄지어 질서 있게 성장하는 작물들을 보아왔던 사람들에게 서로 다독이며 살아가는 모습이 외려 질서 없는 모습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인간에 의해 길들여져 본성을 잃고 사육되는 작물과 달리 이들은 매우 협력적이고 상호의존적이다. 이들이라고 타감작용이 없을 리 없건만 지나친 권리 주장 없이 주변 식물에게 서로 경계를 허락한다는 점에서 여타 나무들 보다 값진 미학을 갖추었다고 유추해 본다.
잡초에게서 큰 배움을 얻기도 한다. 태평농법이 그것이다. 벼를 비롯한 작물들도 잡초들 사이에 있으면 훨씬 건강하게 성장한다. 사람에게 길들여진 작물은 잡초에 비해 약하므로 작물이 뿌리 내리는 동안만 잠시 주변 잡초를 관리해 주고 뿌리를 내린 이후로는 사람의 간섭 없이 작물과 잡초가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농법이다. 잡초 덕분에 건강한 작물을 적은 비용으로 수확 가능하다.
식물의 지능
식물들이 타감작용을 하건 어울렁더울렁 함께 공존하건 그 이유가 있을 것인데 식물이 이를 스스로 선택할 지능이 있을까?
클린턴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는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인간은 기억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공유하는 존재라 하였다.
『식물은 알고 있다(What a plant knows)』의 저자 대니얼 샤모비츠(Daniel Chamovitz)는 식물에게는 뇌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경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고 행복과 고통을 느낄 수도 구분할 수도 없지만 적어도 외부 자극을 감지하고 반응하며 정보를 저장하고 비슷한 상황에서 그 정보를 기억하여 반응을 발전시킬 수는 있다고 한다.
피렌체 대학의 스테파노 맨쿠소(Stefano Mancuso) 박사는 한 곳에 고착되어 생활하는 식물에게 뇌는 오히려 위험하다고 한다. 언제든지 곤충의 습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뇌를 갖지 않은 것은 식물의 선택이고 비록 뇌가 없지만 그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식물은 폐가 따로 없어도 호흡하고 입이 없어도 뿌리를 통해 영양분을 흡수하니 메커니즘이 동물과 다를 뿐 동물과 비슷한 뇌 기능도 갖고 있는 것이다.
한편, 식물의 씨앗에는 매우 작은 뇌(배아 끝단에 위치하는 작은 세포들)가 있어 스스로 자신의 씨앗을 파종해야 할지, 아니면 휴면 상태에 들어가야 할지 판단한다는 논문이 2017년 영국 버밍엄 대학 연구팀에 의해 밝혀져 국제학술지 ‘생태학 저널’에 실렸다.
사람 뇌처럼 회백질로 구성돼 있지는 않지만 정보를 처리해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능력이 있기에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씨앗은 스스로 발아할 시점도 선택할 수 있고, 동물에게 먹힐지 혹은 거센 바람을 타고 먼 곳으로 날아갈지, 혹은 위험을 감지한 후 일정기간 휴면상태에 들어갈지 어찌할지를 결정하여 생존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씨앗은 한꺼번에 발아하지 않는다. 여러 씨앗이 비슷한 환경의 땅에 떨어져도 실패할 경우를 고려해 후에 발아할 씨앗을 남긴다.
식물의 뿌리에서 뇌를 추론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은 1880년 『식물의 운동력(The Power of Movement in Plants)』에서 어린 뿌리 끝부분이 하등동물의 두뇌와 비슷하게 행동한다고 서술한 바 있고, 2016년 스테파노 만쿠소(Stefano Mancuso)는 『매혹하는 식물의 뇌(VERDE BRILLANTE)』에서 식물 뿌리 끝 1mm도 안 되는 조직이 산소를 가장 많이 소비하면서 전기 신호를 발생한다고 밝힌 바 있다.
‘뇌가 없지만 식물은 인식한다’, ‘뇌가 없음은 식물의 선택이다’, ‘식물도 뇌가 있다’로 식물의 능력을 인정하는 추세다. 그러니 식물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촉각이 이로운 것인지 해로운 것인지 기억하고 구별한다는 것은 이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동물이 식물을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동물을 길들인다는 주장도 있다.
『욕망하는 식물(The Botany of Desire)』의 저자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에 따르면 이동 가능한 동물과 달리 한곳에 정주하는 식물이 동물보다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식물이 지금까지 존재한 것은 수십억 년에 걸쳐 생화학 물질 합성에 주력한 결과이며 이 물질로 동물의 뇌에 작용하여 동물을 길들여 왔다는 것이다.
식물은 동물을 길들이기 위해 생화학 물질뿐 아니라 다른 방법도 동원한다. 이미 예전에 밝혔듯이 벌들이 찾는 꽃들은 벌을 안내하기 위한 꿀안내선(nectar guide)이라는 특별한 장치를 고안했는데 이는 꽃가루받이를 원활히 하여 생존하기 위해서다.
식물의 학습 능력도 당연하다.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학 모니카 가글리아노(Monica Gagliano)의 실험에 따르면 식물은 어떠한 자극이 자신에게 해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해로울 때 취하던 행동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춘화처리도 식물의 기억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식물들은 여름과 가을에 꽃눈을 준비하고 이듬해 꽃을 피우는데 반드시 일정한 겨울잠을 자야 한다. 겨울잠이란 일정한 저온기간을 거쳐야 함을 의미한다. 이를 춘화현상((春化現象)이라 한다. 이 겨울잠 기간이 지나고 볕을 쬐어야 식물은 비로서 기지개를 펴는 것이다. 식물은 겨울잠의 기간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보아 식물이 중력을 인식하여 뿌리를 밑으로 향하게 하고, 자기 주변 빛의 색을 구분하고 냄새를 인식하며, 과거에 걸렸던 병과 기후상태를 기억해 생리를 조절함은 물론 이전의 경험을 다음 세대로 전달한다는 것 또한 의심할 바 없다.
식물의 청각 능력에는 아직 이론이 있다. 식물이 클래식을 좋아한다는 것은 청각 능력 때문이 아니라 스피커의 열로 인해 성장이 촉진된 것일 뿐이라는 논리도 있다. 그러나 농촌진흥청의 이완주 박사는 클래식 음악을 바탕에 깔고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를 삽입한 그린음악(green music)이 식물에게 유용하다며 국내 특허까지 확보했다. 그린음악을 들은 식물은 체내 화학성분 변화를 유도해 생육이 촉진되고 병충해 발생이 저하되는데 증명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류와 교감해온 유기체
자연사 연구가인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은 『초록 덮개(green mantle)』 에서 사람들은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함 없는 특수하고 신비한 나무의 힘에 이끌렸다 한다. 인류는 식물을 경외하고 숭배하며 깊은 교감을 나누고 다양한 의약품은 물론 신과 교합한다는 환각제도 얻을 수 있었다 한다.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 역시 예로부터 큰 나무는 신령이 깃든 신목(神木)이라 여기고 섬겨왔다. 그러한 신목으로부터 사람이 영감을 받았다는 많은 일화도 전해진다.
동물과 식물은 20억년 전 분화될 때까지 한 몸이었다는 대니얼 샤모비츠(Daniel Chamovitz)의 말을 상기한다면 사람과 신목의 영적 교류는 충분히 가능하다.
영화 ‘아바타(Avatar)’에서 판도라 행성의 푸른 피부를 가진 원주민 나비(Na’vi)인들은 나무를 비롯한 모든 생물체와 생태적으로 공존하면서 감정과 생명까지도 공유하고 교류하는 유기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또한 인류와 신목의 오랜 역사에서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 감독이 얻은 영감을 상상력과 과학기술로 표현한 것이다.
인류 훨씬 이전부터 지구라는 행성의 주인이었고 지금도 푸른 생명을 부여하는 식물들에게 감사하고 배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글은 다음 회에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