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2-[송상훈의 식물이야기] 식물의 수분방법 4

프로필_송상훈

이번 회에서는 수매화를 살펴보고, 수분방법과는 별개인 식물들의 번식방법을 살펴 본다.

바람의 도움을 받아 수분(受粉 가루받이)하는 식물이 있듯이 물의 도움을 받아 수분하는 식물들도 있는데 이를 수매화(水媒花)라 한다. 수매화는 수중 또는 수면 가까이에 수꽃을 피우고 꽃가루가 물살에 섞이면서 암꽃에 수분하는 개체들이다.

물과 관계 있으니 수생식물은 모두 수매화가 아닐까 묻기도 한다. 지구 생물의 근원이 바다고 이후 육지로 진화했지만 고래의 경우 환경에 따라 육지에서 물로 진화한 것처럼 물풀로 통칭되는 수생식물 상당수도 육지에서 발생해 물과 가까워진 경우다. 따라서 수생식물에는 수매화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모두 수매화는 아니다.

한편 충매화, 풍매화, 수매화는 식물의 대표적인 수분방법에 따른 구분이지 어떤 식물이 반드시 어디에만 해당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수매화가 물에 잠길 때는 물에 풀어진 꽃가루에 의한 자가수분이 주를 이루지만 암수 꽃이 물 밖에 있어서 곤충의 접근이 가능하면 충매화가 되는 것이다. 후에 설명할 연꽃, 물옥잠이 그렇다. 한편 바람 강한 날에는 바람에 의해 수분되기도 한다. 암수딴그루인 자라풀은 주로 수매화지만 때론 충매화이고 풍매화이기도 하다. 암꽃이 피고 난 자리에 다시 수꽃이 피는 수련과 순채도 수매화이지만 때론 충매화이고 풍매화이기도 하다.
즉, 충매화이면서 풍매화인 식물도 있고 수매화면서 풍매화인 식물도 있으며 충매화이자 풍매화이고 수매화인 식물도 있다. 물론 항상 충매화이거나 풍매화이거나 수매화도 있다.

수생식물은 종류에 따라 번식지에 차이가 있다. 보통은 육지에서 물로 습생식물, 정수식물, 부엽식물, 부유식물, 침수식물 순으로 자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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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늪에서 볼 수 있는 고랭이 등 사초과나 갈대 또는 물억새 등 벼과인 풍매화와 꿩고비 등 양치식물인 고비과, 충매화인 부채붓꽃이 습생식물이다. 습생식물 중에서 수매화는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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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식물(挺水植物 = 추수식물 抽水植物)은 물 밑바닥 진흙 속에 뿌리를 내려 고정하고 줄기와 잎의 일부 또는 모두를 물위에 뻗어 있는 식물들이다. 꽃과 잎이 수면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다. 피, 갈대 등 벼과 식물과 큰부들, 큰고랭이 등 사초과 식물 그리고 수매화인 연꽃, 벗풀, 보풀, 소귀나물, 물옥잠, 물수세미 등이 해당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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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랭이나 부들은 슾지나 연못에서 자주 본 기억이 있을 것이지만 벗풀, 보풀, 소귀나물은 생소한 독자가 많을 것이다. 이 세 식물의 꽃은 거의 같다. 위 이미지처럼 벗풀은 화살 모양의 잎을 가졌다. 이 잎과 비슷하게 끝이 둥근편이면 소귀나물이다. 모양은 비슷한데 잎이 가늘고 길면 보풀이다. 모두 예전의 논바닥에서 자주 보이던 개체들이다.

대부분이 수매화인 부엽식물은 물 밑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잎은 수면에 뜨는 식물들이다. 꽃과 잎이 수면 높이에 위치하며 잎 표면에 기공이 있어 물에 잘 뜨면서도 잘 젖지 않는다. 수련, 순채, 어리연꽃, 가시연꽃과 마름 등이 해당된다.

연꽃과 수련은 같은 수련과에 속하지만 정수식물과 부엽식물의 정의로 자생하는 위치도, 꽃 피는 위치도 다름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구별점은 연꽃 잎은 둥굴고 수련은 발굽처럼 갈라진다.
참고로 연꽃과 수련, 순채, 가시연꽃은 수련과이고 어리연꽃은 용담과이다. 수련과는 꽃에 털이 없고 용담과는 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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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매화인 부유식물은 뿌리를 물에 내리되 바닥에 고정시키지 않고 잎은 수면에 뜨는 식물들이다. 식물사전에 따르면 개구리밥, 물옥잠, 자라풀 등이 해당된다. 그러나 필자는 물옥잠과 자라풀을 부엽식물 형태로 자주 접했다. 물에 떠있기보다는 물기가 흥건한 습지에서 뿌리를 바닥에 내린 채 자생하던 모습을 더 많이 보았다. 식물도 처한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달리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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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옥잠과 꽃이 거의 같은 식물로 역시 수매화인 물달개비를 꼽을 수 있다. 둘의 차이는 물옥잠은 꽃이 잎보다 높은 곳에서 피고 물달개비는 잎보다 낮은 곳에서 핀다는 점이다.
자라풀처럼 하얀꽃으로는 역시 수매화인 물질경이가 있다.

역시 수매화인 침수식물은 식물체 전체가 물속에 잠겨있고 물 밑바닥에 뿌리를 내려 고정된 대형수중식물로 바다에서 생육하는 대황, 톳 등의 해조류와 대가래, 검정말, 어린잎이 나사처럼 말리는 나사말, 코스모스 풀어 논 듯한 나자스말, 미역 비슷해 보이는 말즙 붕어마름, 등이 포함된다. 보통은 물에 잠겨 있으므로 꽃가루는 풀에 풀어지게 된다. 나자스말의 경우는 암꽃이 물 밑에서 피고 수꽃은 암꽃보다 위에 피어 수꽃에서 만들어진 꽃가루가 가라앉으면서 수분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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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방법에는 크게 충매화(곤충), 풍매화(바람), 조매화(새), 수매화(물)로 나누지만 이들 외에도 수분에 관여하는 생물체가 있다.
전회에 언급한 박쥐가 그렇다. 박쥐는 새가 아닌 포유류지만 새처럼 수분에 관여한다. 박쥐가 드나드는 꽃의 색은 주로 희거나 녹색이거나 붉고 향기는 매우 강한 편인데 다량의 꿀을 갖고 있으나 꿀안내선은 없다.
‘밤의 여왕’이라 불리는 ‘셀레니세레우스(Seleaicereus grandifloru. 선인장과)’와 아펠라드라 아칸사스(Aphelandra acanthus. 쥐꼬리망초과), 무쿠나 홀토니(Mucuna holtonii. 콩과)가 박쥐에 의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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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꽃에 접근할 수 있다면 수분에 관여할 수 있는데 달팽이류도 그 중 하나이다. 물론 파충류도 수분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다. 카멜레온이 꽃을 찾아 든 곤충을 먹이로 삼아 이 꽃 저 꽃을 옮겨 다닌다면 역시 수분 가능하다.
덴마크 오르후스대 연구팀에 따르면 뉴질랜드 섬에서는 도마뱀이 수분에 관여한다. 천적이 없는 환경에서 개체가 늘어나고 곤충이 부족하게 되자 꿀과 꽃가루를 먹이로 삼게 되면서 일어나 현상이라 설명한다.
앞서 박쥐를 언급했는데 하늘다람쥐도 박쥐처럼 앞발과 뒷발 사이에 가는 비막이 있다. 같은 비막이 있더라도 박쥐는 위아래를 종횡하는 비행체지만 하늘다람쥐는 위에서 아래로 공간을 가르는 할공체이다. 할공만 하는 하늘다람쥐에게 수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통 침수식물은 물의 흐름에 의해 수분되고 수생생물은 수분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외는 는 있는 법. 거북말귀갑(Thalassia testudinum. Turtle grass)은 물이 아닌 동물 플랑크톤에 의해 수분이 이루어 진다. 멕시코 자치대학(National Autonomous University of Mexico) 연구팀의 카리브해와 서부 대서양의 해조류 조사에 따르면 크기 0.6mm 정도의 갑각류인 동물 플랑크톤이 거북말귀갑의 수분에 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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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크톤이 해초와 해초를 오가며 꽃가루를 먹기도 하고 몸에 묻혀 수분 매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수분방법을 살펴 보았다. 이제 몇 가지 번식방법을 살펴 보겠다.
식물이 수분하면 결실을 맺는다. 이 결실을 퍼뜨리는 방법은 각기 다르다. 때로는 버드나무나 민들레처럼 바람에 씨앗을 날리기도 하고 질경이나 냉이처럼 사람의 발목을 따라 퍼지기도 하며, 새나 동물의 먹이가 되어 배설을 통해 퍼지기도 하고 동물의 몸에 묻어 퍼지기도 한다. 이상의 번식방법은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과 달리 물을 따라 번식하는 식물도 있다.
현존하는 식물 26만 종 중에 종자가 물을 따라 퍼지는 종은 1%에 불과하며 이 중에서도 물에서 1주일 이상 견디는 종자를 갖춘 식물은 0.25%에 불과하다.
물에서 종자가 오래 잘 견디는 대표적인 식물로 모감주나무(무환자나무과)와 야자나무(야자나무과) 그리고 맹그로브나무(홍수과 紅樹科)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충매화다. 즉 주로 곤충을 통해 수분하고 물을 통해 씨를 퍼뜨린다.

중국이 원산지인 모감주나무는 장마철에 노란꽃을 많이 피우는 교목이어서 영어권에서는 Goldenrain tree로 불린다. 불교권에서는 종자로 염주를 만들기에 염주나무라고도 불린다. 염주를 만드는 식물로는 피나무, 찰피나무, 보리자나무도 있는데 모두 염주나무라는 이명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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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감주나무의 꽈리 같은 열매 안의 3~4개의 종자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껍질인 씨방은 터지면서 2갈래로 나눠지고 종자를 품은 채 떨어진다. 그 모양은 돛단배와 비슷한데 씨방 재질은 물에 잘 뜬다.
혹자는 껍질 위에 종자가 얹힌 모습의 배를 상상할지 모르나 껍질이 종자를 덮은 모습으로 물에 떨어지면서 종자가 무겁기에 배가 뒤집힌 모양이 된다. 따라서 종자는 직접 물과 접촉하게 되는데 종자와 껍질인 씨방 사이에는 공간이 충분해 공기층이 형성되기에 가라앉지 않는다. 더불어 종자는 염주로 사용할 만큼 매우 단단해서 해수에 오래 견딜 수 있다.
주로 서해와 남해 해안선에 모감주나무가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안면도의 모감주나무 숲(천연기념물 제138호), 포항 발산리의 모감주나무·병아리꽃나무 숲(천연기념물 제371호), 완도군 대문리의 모감주나무 숲(천연기념물 제428호)이 해변에 있는 이유다. 그러나 해안선에만 자생하는 건 아니다. 바닷가 가까운 산은 물론 내륙에서도 간혹 발견되고 꽃이 아름답고 환경에 매우 강해서 관상용으로 공원에 식재하기도 한다. 한중일에서 보이던 이 나무는 이제 국제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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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나무는 야자나무과의 암수딴그루 상록교목이다. 야자나무과 식물은 대부분 풍매화이며 간혹 충매화도 있다. 동남아시아의 섬이 원산지이나 전세계에 퍼져 약 2,500여 종류나 된다. 키는 20~30m나 자라며, 잎겨드랑이에서 노란 수꽃과 암꽃이 피고 열매 맺는다. 꽃은 연중 피고 열매는 일년 반 동안 성장하며 열매 속에는 달달한 즙이 들어 있다.
대부분의 야자나무는 가지가 없으며, 나무 몸통 끝에 바로 잎이 달린다. 이 잎이 좁기는 해도 광합성에는 문제 없다.
열매인 코코넛은 무려 4개월을 짠 바닷물에서 견딜 수 있기에 멀리 다른 해안까지 이동할 수 있다. 코코스 야자가 해변가에서 많은 자생하는 이유다. 염분으로 인해 웬만한 식물이 자라지 못하므로 야자는 해변을 독점하듯이 넉넉히 자란다.

야자나무 외관은 특이하다. 야자나무 이외의 특이한 나무를 잠시 알아보자. 사막의 선인장은 나무가 환경에 적응하려고 잎이 바늘 모양으로 진화한 것인데 너무 좁고 단단해 광합성을 못한다. 나무고사리는 고생대 석탄기와 페름기에 엄청난 숲을 이루던 양치류다. 겉모양은 소철이나 야자나무 비슷해 보이지만 잎이 고사리 같다. 나무고사리 줄기는 나무줄기가 아니라 뿌리줄기이며 공기뿌리가 서로 뒤엉킨 것이다. 따라서 나무껍질이 없다.
선인장, 나무고사리 모두 형태는 통상의 나무와 다르지만 그래도 나무로 분류된다.

맹그로브는 70여 종이 120개국의 바닷가나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에서 자생하며 전세계 나무의 0.7%나 차지하는 중요한 나무다. 성난 바다로부터 사람들 삶의 터를 지켜주는 방파제 역할도 하고 많은 물고기를 불러들여 양식을 제공하는 어장 역할도 하며 생태계를 유지에 혁혁한 공을 세운 고마운 나무다. 또한 탄소흡수 능력이 대단해서 최상의 탄소흡수를 자랑하는 백합나무(튜울립나무)의 2.2배에 달하니 기후변화 방지 최적종이라 할 수 있다.

맹그로브는 걸어 다니는 나무라는 별칭이 있는데 줄기 아래에 삼발이 같은 뿌리가 밖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드러난 뿌리로 공기를 흡수한다. 뿌리는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자란다. 보통은 암수딴그루인데 암나무 잎은 넓고 둥글며 수나무 잎은 좁고 길다. 물에 잠기면 자가수분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충매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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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이 되면 암나무 가지 끝에 스스로 싹을 틔우는 고추를 닮은 주아가 생기는데 일종의 묘목이라 보면 된다. 어느 정도 주아가 자라면 땅에 떨어지는데 마치 짐승이 새끼를 낳는듯하다. 이 주아는 때로는 해수를 타고 이동기도 하는데 해수에서도 한달 이상 견딜 수 있다. 주아가 바닷물에 떨어지게 되면 표면적이 넓은 면으로 누워서 바다를 떠다니다가 소금기가 적은 지역에 이르면 뿌리 쪽이 무거워져 마치 낚시 찌처럼 바로 서서 정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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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아는 일종의 묘목이므로 스스로 광합성 한다. 이처럼 과실이 모체에 머물면서 발아하는 형식을 모태발아 또는 태생종자라 한다. 수련도 모태발아 한다. 이 신기하고 고마운 나무를 한국에서 활용할 수 없어 아쉽다.

동물 못지 않게 다양한 방법으로 저마다 생명을 잉태하고 번식하는 식물들이 놀랍지 않은가! 또한 식물의 수분에 관여하는 동물과 바람 또한 고맙지 않은가! 그러나 인간 활동은 점점 이들을 위기로 몰아 넣고 있다.
IPBES(유엔생물다양성과 생태계 서비스를 관한 정부간 과학정책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식물의 수분을 돕는 곤충을 비롯한 동물의 개체수 감소가 세계 주요 작물생산을 위협할 것이라 한다. 세계 주요 작물 가운데 동물의 수분에 의존하는 종은 3분의 1로, 전 세계 농업 생산량의 5~8%에 해당하며 이는 매년 2350억달러~5770억달러(약 290조~713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벼나 밀, 옥수수 등 바람에 의해 수분되는 경우는 제외한 수치인데도 그렇다.

개체수 감소에 의한 동물수분의 감소는 조만간 식량난으로 나타날 수 있다. 개체수 감소 원인은 서식지 감소, 농약, 오염, 외래종, 병원균 및 기후변화 등 인간 활동의 결과가 대부분이다.
IPBES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벌과 나비 종 가운데 9%가 멸종위기에 처했다. 벌의 개체수는 37%, 나비는 31% 감소했다. 일부 유럽 지역에서는 40% 이상의 서로 다른 벌들이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가 꽃과 나무를 사랑하듯이 수분 매개 동물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일 것을 당부하며 지금까지 4회에 걸친 ‘식물의 수분방법’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