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2-[생태사진작가 김연수의 바람그물?] 적과의 동침 뻐꾸기와 뱁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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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사진작가 김연수의 바람그물은 이번달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전국 산하를 발로 뛰며 취재한 좋은 글을 공유해 주신 김연수 생태사진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김 부장님, 드디어 찾았어요! 뱁새둥지에….”
자연의 소리 녹음전문가인 유회상 씨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 왔다. 그때가 2003년 7월 5일이었다.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에서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에 탁란한 뻐꾸기 알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7월 7일 오후에 시간을 겨우 쪼개서 현장을 찾아갔다. 뱁새둥지는 미사리 조정경기장을 지나 한강변에 위치한 농가 앞에 유치원 다니는 아이만한 크기의 이름 모를 잡풀 속에 있었다. 둥지 속에는 푸른빛이 도는 뱁새 알이 4개 있었고, 암컷뱁새가 그 알들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이상한 놈이 끼여 있었다. 눈도 못 뜨고 깃털도 나지 않은 검붉은 빛의 새끼뻐꾸기가 뱁새의 품에서 벗어나, 날개와 등을 이용해서 뱁새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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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더니 드디어 알 1개가 둥지 밖으로 떨어졌다. 맨 땅에 떨어진 뱁새 알은 그 자리에서 깨져버렸고, 어느덧 새의 모습을 갖춘 알 속의 새끼뱁새를 향해 개미떼가 우르르 모여들었다. 하지만 멍청한 어미뱁새는 새끼뻐꾸기의 대담한 행동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수컷이 어느새 날아와 그 새끼뻐꾸기에게 먹이까지 건네준다. 문헌으로 보아온 뻐꾸기의 얌체 짓이 시작된 것이다.
뻐꾸기를 비롯한 두견이과 새들은 탁란을 하여 대리모에게 자신의 새끼를 몰래 위탁시킨다. 둥지를 짓지 않고 자기보다 덩치가 작은 뱁새나 개개비, 멧새, 산솔새 등의 둥지를 노리는 것이다. 이 녀석들은 노리고 있던 둥지에서 알을 낳은 것을 알면 그 어미가 없는 틈을 타서 잽싸게 알을 하나 버리고 대신 자기 알을 낳는다.
뻐꾸기의 알은 부화기간이 12일 정도이니까, 부화기간이 14일 정도인 연작류보다 먼저 부화한다. 이렇게 대리모의 품안에서 먼저 태어난 새끼뻐꾸기는 본능적으로 다른 알들을 둥지 밖으로 밀쳐내 버리고는 대리모를 독차지한다. 그리고 대리모는 그런 녀석을 자기 새끼로 착각하고 열심히 먹이를 잡아다 준다. 뱁새는 자기보다 몇 배나 큰, 뻐꾸기의 새끼를 자신의 새끼로 착각하고 혼신을 다해 먹이를 잡아다 주지만, 정작 그놈은 자신의 새끼를 모두 죽인 원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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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뻐꾸기는 1~2시간 간격으로 나머지 알들을 모두 둥지 밖으로 밀쳐버렸다. 아까운 생명들이 피어나지도 못하고 죽음으로 끝나는 현장을 보면서 나는 뻐꾸기의 얌체 짓을 중단시키고 싶었지만, 이 또한 자연의 한 현상이다. 지금도 의문스러운 것은 그 어미뱁새가 왜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학자들은 처음 번식을 하는 젊은 어미일수록 뻐꾸기에게 당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이렇게 한두 번 속아서 당하다 보면 어미들은 적절히 방어를 하게 된다고 한다. 내 눈앞에서 맥없이 속고 있는 이 뱁새부부는 아마 갓 결혼한 초년병일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새들은 더 강한 종을 번식하기 위해, 수컷을 고를 때도 강자를 원한다. 자기가 낳은 알들 중에서도 큰 알부터 품고, 목구멍을 크게 벌리고 요란스럽게 머리를 흔들어대는 새끼부터 먹이를 먼저 준다. 뻐꾸기를 비롯한 두견이과 새들은 이러한 자연의 생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얌체 짓을 하는 셈이지만, 이들이 왜 탁란하고 또 뱁새는 왜 멍청하게 당하고 있는지는 과학적으로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