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1-[송상훈의 식물이야기] 식물의 수분 방법 3
식물이 새로운 생명을 복제하는 수분방법 중 하나는 다른 생명체를 활용하는 것이다.
생명을 품는 수분방법과 생명을 퍼트리는 번식방법은 구별해야 한다. 가령 충매화인 겨우살이는 새를 유혹하여 열매를 먹게 하고 나무 위에서 배설하게 하여 나무에서 반기생한다. 전자는 수분방법이고 후자는 번식방법이다. 새가 꿀을 먹으러 꽃을 드나들면서 수분을 하여 결실을 맺는다. 이 열매를 산짐승이 먹고 배설하여 식물이 여기저기 자란다. 전자는 조매화(鳥媒花)에 해당하는 수분방법이고 후자는 번식방법이다.
#새가 꽃가루를 묻혀 수분하는 식물은 꿀이 많다
이번 회는 조매화에 대한 알아본다.
조매화는 설명한대로 새의 몸에 꽃가루가 묻어 다른 꽃의 암술에 떨어져 수분하는 방법을 이용하는데 이 역시 1억5천만년 간 진화의 결과다.
지구상에는 최소 150종의 꽃들이 50종의 새를 이용해 수분한다.
동백에 관여하는 동박새, 남북미에 많은 벌새(Hummingbirds)류, 아프리카와 호주, 동남아에 많은 태양조(Sunbird), 하와이와 호주, 태평양 여러 섬에 많은 꿀빨기새(Honeyeater, honeycreepers)류, 유럽꾀꼬리(Oriole), 플라워피어서(Flowerpiercer)류, ·홍작, 직박구리 등이 대표라 할 수 있다.
새가 들락거려야 하니 그만큼 꽃은 크고 아름다우며 새를 유인할 꿀이 많은 편이다.
꽃색은 새가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붉거나 오랜지 계통 또는 흰색이 많은 편이지만 향기는 그다지 많지 않다. 꽃 구조는 새가 꿀을 빨기 좋도록 깔때기 모양의 화관을 갖추고 있는데, 벌과 나비를 유도하지 않으므로 꽃 안에 꿀안내선(nectar guide)은 없다.
참고로 충매화 중에서도 파리나 딱정벌레, 나방을 유도하는 꽃들에는 꿀안내선이 없는 편이다.
조매화로는 동백(차나무과), 바나나(파초과), 극락조화(파초과), 파인애플(파인애플과), 선인장(선인장과), 참마(마과), 병솔나무(도금양과), 유칼립투스(도금양과), 불꽃산호나무(에리트리나 Erythrina. Flame Coral Tree. 콩과), 자귀나무(콩과), 헬리코니아(helikonios 헬리코니아과), 바비아나(Babiana. 붓꽃과) 등을 들 수 있다.
동백은 악기나 농기구 재목으로 쓰이고 잎은 염료로 사용하며 열매는 머릿기름으로 쓰였다. 벌과 나비가 나오기 전에 꽃을 피우는 동백은 꿀을 좋아하는 `동박새`에 의해 수분이 된다. 잎사귀 크기에 버금가는 큰 꽃에서 이른 개화를 위해 많은 양의 꿀을 생산하여 깊숙이 숨겨 놓고 동박새를 유인해 노란 꽃가루를 가득 묻히게 한다. 동박새도 겨울을 나기 위해 꿀이 필요하다. 꿀뿐만 아니라 강렬한 붉은 색의 꽃으로 동박새 유인효과를 배가시킨 동백나무의 본능이 놀랍다.
풍부한 꿀을 갖고 있는 바나나는 벌새와 박쥐가 수분에 관여한다. 바나나와 파초에 대해서는 얼마 전 ‘그림 속의 꽃들1’에서 상세히 다루었기에 설명을 생략하며 박쥐의 수분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서술하도록 한다.
잎과 등황색꽃이 마치 극락조를 닮은 극락조화는 남아프리카 원산인데 벌새나 태양조가 자주 드나들며 수분을 한다. 수분을 맺으면 열매를 결실하는데 마치 꼬투리 같은 열매집에 콩 같은 열매를 맺는다.
#자귀나무 등도 새를 유인해 수분돕게 하는 식물
콩과 식물의 수분에도 새들이 자주 관여한다.
콩과 식물은 사막 등 황폐한 지역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는 특별한 힘을 갖고 있다. 아까시나무가 헐벗은 우리나라 산에 많은 영양을 부여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콩과 식물의 유용함을 이해할 수 있다.
불꽃산호나무는 북중미 계곡과 절벽에 자생하는 교목이다. 꽃이 마치 가스레인지 불꽃처럼 보인다. 가지가 성장하면서 마치 바다의 산호처럼 자라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꽃은 음식재료로도 활용되고, 꼬투리 안의 붉은 씨앗에 독성이 있는데 근육이완 성분이 있다고 알려졌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보이는 콩과 식물인 자귀나무도 많은 새들이 부른다. 자귀라는 이름은 나무를 다듬는 도구인 ‘자귀’의 손잡이를 만드는 나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고, 저녁이면 접히는 잎이 마치 귀신이 자는 듯한 모습이어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필자에게는 자주색 꽃이 마치 귀신 머리 풀은 듯해서 자귀라 불렀다는 할머니 말씀이 떠오른다.
자귀나무의 독특한 향이 부부 금슬을 좋게 한다 하여 합환수(合歡樹)라는 이명 외에도 소가 좋아한다 하여 소쌀나무로도 불리며, 가을에 열리는 콩꼬투리 터지는 소리가 여자 수다 떠는 듯 시끄럽다 하여 여설목이라고도 불리는 매우 친숙한 나무다.
생강목인 헬리코니아는 새부리 모양의 꽃이 바로서기도 하고 늘어지기도 한다.
잎은 파초, 바나나, 극락조화, 생강 비슷한데 남미를 비롯한 아열대지방에 널리 퍼져 자라는 초본식물이다. 볼리비아 국화로도 알려진 이 식물은 빛과 습도에 민감하며 은은한 향기와 강렬한 꽃색을 자랑하는데 바나나가 그렇듯 새와 박쥐가 수분 매개체다.
호주 원산인 병솔나무는 가는 수술이 가득한 화서를 자랑한다. 아쉽게도 꽃이 빨리 시드는 특징이 있다. 수술은 주로 붉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어서 녹색 또는 황색 수술종도 있다.
병 닦는 솔과 꼭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며, 줄기는 가늘지만 높이 8m까지 휘청이면서 자라고 꽃에 꿀이 많아 새들이 방문을 재촉한다.
거치 없는 잎은 단단하며 광택 있는데 호주에서는 향신료로 쓰기도 한다.
참고로 아욱과인 무궁화는 봄에는 충매화이고 가을에는 조매화이다. 무궁이라는 말처럼 꽃이 새로 난 잎겨드랑이에서 하나씩 계속 피는데 매개체인 곤충이 사라지는 가을에는 새들이 매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 식물의 수분방법과 번식방법은 구분해야
앞서 언급한 대로 수분방법과 번식방법은 구분해야 한다.
식물들의 번식법은 온갖 짐승을 가리지 않는다. 사람의 발길을 따라 번지는 냉이와 질경이가 있는가 하면 짐승이 먹이가 되어 배설을 통해 번식지를 이동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새로 인한 수분과 산짐승에 의한 식물번식은 식물과 산짐승은 물론 때로는 사람에게도 큰 행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천종(天種), 지종(地種)이라는 산삼이 있는데 이는 오로지 자연적으로 자생하는 산삼의 씨앗을 새가 먹고 배설한 조복삼(鳥腹蔘)으로 귀한 대접을 받고 가격도 비싸다. 필자도 산행을 하면서 혹여나 하고 두리번거렸지만 아직 만난 적 없다.
대신 겨우살이는 자주 만나는 편이다. 겨우살이는 수분을 곤충과 바람에 의존하는 충매화면서 풍매화지만 번식은 새에 의존한다. 새가 열매를 먹고 참나무, 팽나무, 밤나무, 버드나무, 자작나무, 뽕나무, 서어나무, 오리나무, 느릅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오동나무, 동백나무 등 숙주에 배설하면 숙주에 반기생하면서 생존한다. 반기생이라 함은 물은 숙주에게서 얻지만 광합성은 스스로 함을 말한다.
겨우살이는 참나무류에 반기생하는 것을 최고로 치는데 항암, 진통제, 동맥경화, 당뇨에 효험 있어서 동서양 모두 약재로 사용한다. 그렇다고 행여 산행에서 만난 겨우살이를 채취하지는 마시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매년 겨울에 겨우살이 채취를 집중 단속하고 있기도 하지만 채취 위험도 크므로 그저 감상만 함이 좋겠다.
식물에는 물을 이용해 수분하는 수매화(水媒花))도는 있고 번식방법으로 동물뿐 아니라 물을 이용하는 식물도 있다. 다음 회에서는 이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