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6-[생태사진작가 김연수의 바람그물⑭] 독수리 밥상
모스크바 보다 더 추운 강추위가 일주일 내내 계속되고 있다.
겨울 추위를 피해 몽골에서 남하한 독수리들은 온 대지가 동토로 변한 들녘에서 어떻게 버틸까?
휴일인 28일, 만사 제치고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들판을 찾았다.
임진강 생태보존회(회장 : 성연석)와 임진강생태체험학교 회원들이 매주 펼치는 ‘독수리밥상’ 행사에 참석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혹한의 날씨에도 10여명의 회원들이 약 100kg의 소고기와 간, 허파를 임진강변에 위치한 마정 들녘의 논에 골고루 흩어놓았다.
평소 같으면 밥상을 차려주고 2시간 정도가 지나야 독수리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이날은 5분도 채 못 되어 약 70여 마리의 독수리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흰꼬리수리도 5마리나 날아와 독수리 틈새에서 먹잇감을 채갔다. 이들은 모두 지난 한주 내내 굶주림에 지친 모습이다.
독수리(천연기념물 243호, 멸종위기동물 2급)는 스스로 사냥하지 못하고, 죽은 동물의 사체를 분해하는 자연의 청소부다. 몽골 초원에서 번식하며 지구상에 3000 여 마리 남아 있는 국제보호조다. 이들 중 1/2 이상이 우리나라의 철원, 파주, 고성에서 월동하고 일부는 제주도까지 남하한다.
혹자는 야생동물에게 인간이 “왜 인위적으로 먹이를 제공하느냐” 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먹이사슬의 균형이 잡힌 자연생태계라면 굳이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자연 생태계의 균형이 깨진 지 오래다. 독수리들이 자연 상태에서 찾는 먹이는 우리나라에 충분하지 않다. 온 국토가 도시화되고, 포장도로가 거미줄같이 발달한 나라에 몽골 초원처럼, 독수리들이 먹잇감을 구할 형편이 못 된다.
우리나라를 찾은 독수리들의 많은 개체가 해마다 굶어 죽고 있다. 그럼에도 수천만 년 전부터 똑같은 월동 습성을 보여 온 독수리들은 이동 경로를 쉽사리 변경하지 않는다. 아마도 멸종되는 순간까지 한반도를 매년 찾아 올 것이다. 따라서 이 지구상에서 독수리가 멸종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의 국민은 최소한의 배려를 해야 한다.
김연수 생태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