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6-[강찬수 환경전문기자의 에코사전?] 대기오염사고
요즘 한반도 겨울 날씨는 ‘삼한사온’이 아니라 ‘삼한사미(三寒四微)’란 말이 있다. 차가운 북서풍이 부는 사흘은 춥지만, 춥지 않은 나흘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는 말이다. 미세먼지 오염 탓에 대기오염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대기오염의 대표선수 격인 스모그(smog)는 연무(煙霧)라고도 한다. 연기(smoke)와 안개(fog)의 합성어로, 그냥 안개가 아니라 대기오염 물질이 섞여 있는 안개를 말한다. 바람이 잔잔한 기상 조건에서 안개가 끼면, 안개 물방울에 대기오염 물질이 녹아들고 뭉쳐져 미세먼지가 만들어지면 스모그가 나타난다.
대기오염은 사람이 숨 쉬는 공기 속의 오염물질 농도가 높아 사람과 생태계의 건강을 해치고 건물에도 피해를 주는 현상을 말한다. 자동차나 공장 등에서 배출되는 먼지나 유해물질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산성비가 내리는 경우까지 대기오염의 원인도 다양하다.
공장 굴뚝이나 자동차 배기구에서 직접 배출되는 오염물질도 있고, 초미세먼지나 오존같이 공기 중에서 오염물질들이 반응해 2차 오염물질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충남 보령지역의 화력발전소.
최근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득 수준에 따라 관심을 갖게 되는 대기오염 종류도 달라진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소득수준이 낮을 때에는 땔감으로 인한 실내공기 오염, 주택의 공기 오염이 가장 큰 문제가 된다. 소득이 늘어나면 집안 공기 오염은 어느 정도 해결되지만 이번에는 도시 대기오염이 문제가 된다고 한다. 자동차와 공장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거기서 다시 소득이 더 늘어나면 도시 대기오염은 해결되지만,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지구온난화 같은 지구적 차원의 대기오염 혹은 국경을 넘는 월경성 대기오염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게 된다.
20세기 이후 세계 곳곳에서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피해가 자주 발생했지만, 지금까지 단시간에 나타난 최악의 대기오염사고는 ‘런던 스모그’다. 1952년 12월 5일부터 9일까지 5일 동안 영국 런던은 짙은 스모그로 가득 찼다. 추운 날씨에 난방 연료로 석탄을 집중적으로 태운 게 화근이었다. 석탄에서 나온 이산화황(아황산가스)이 바람도 없는 잔잔한 날씨에 안개와 섞였다. 극심한 스모그가 시작된 것이다. 안개가 흔한 런던 시민들은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스모그로 인한 피해는 처참했다. 호흡기질환 등으로 숨진 사람만 4000명이었고, 10만 명이 각종 질환에 시달렸다. 이듬해 2월까지 8000여 명이 더 숨져 총 사망자는 1만2000명에 이르렀다. 이 사고를 계기로 영국 정부는 대기오염에 관심을 갖게 됐고, 1954년 런던시 조례와 1956년 대기정화법을 마련해 공장 매연 단속을 강화하고 석탄 대신 가스를 사용하는 가정에 돈을 지원하기도 했다.
952년 12월 영국 런던을 뒤덮었던 스모그.
당시 대기오염으로 인해 4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듬해 2월까지는 모두 1만2000명이 사망했다.
런던 스모그에 앞서 1930년 벨기에의 공업지대인 뮤즈(Meuse) 지방에서도 대기오염 사고가 있었다. 그해 12월 1~4일 수백명의 호흡기 질환자가 발생했고, 그중에서 급성폐렴과 심장병으로 63명이 숨졌다. 초겨울 기온역전 현상으로 인해 공장 매연이 확산하지 않고 쌓인 탓이었다. 대기오염으로 사람과 가축은 물론, 나무까지 죽는 바람에 뮤즈 계곡은 ‘죽음의 계곡’으로 바뀌었다.
기온역전 현상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이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보통 대류권 내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기온이 낮아지는데, 지표면이 차갑게 식거나 찬 공기가 유입되면서 아래쪽이 오히려 차고 위로 갈수록 온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이런 기온역전 현상이 벌어지면 대류현상이 약해져 공기층은 매우 안정하게 돼 오염물질이 확산하지 않는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LA) 지역에서 발생한 스모그.
오염물질이 자외선과 반응해서 나타나는 광화학 스모그다.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작은 공업 도시 도노라(Donora)에서도 대기오염 사고가 발생했다. 1948년 10월 26일 도노라 지역을 흐르는 모논가헬라 강 계곡에 두꺼운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한번 낀 안개는 사라지지 않았고, 제철소와 아연공장 굴뚝에서 나온 대기 오염물질이 차곡차곡 쌓였다. 매연으로 앞을 볼 수가 없을 지경이 됐다. 탁한 공기 탓에 도노라 지역 주민 6000여 명이 앓아누웠다. 일주일 동안 마을 주민 20명이 사망했고, 그 후 한 달 동안 50여 명이 더 사망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지역도 1940년대부터 이른바 ‘LA 스모그’로 고통을 겪고 있다. 분지 지형인 데다 건조한 날씨가 많은 LA에서는 황갈색 스모그 현상이 나타나 눈과 호흡기를 자극했다.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이나 탄화수소 같은 물질이 햇빛의 강력한 자외선과 반응한 결과다. 그래서 LA 스모그는 광화학 스모그라고도 불린다. 캘리포니아주는 60년대부터 자동차 배기가스를 규제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농도를 50분의 1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스모그 현상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건강 피해를 낳고 있다.
하늘공원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대기오염.
이웃 일본에서도 60년대 대기오염 사고를 겪었다. 도쿄와 교토 중간에 위치한 요카이치(四日)시 시민들은 석유화학 공단에서 배출된 오염물질로 고통을 겪었고, 천식 환자들 사이에서는 사망자도 발생했다. 요카이치 시민들은 업체 6곳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200여명이 피해자로 인정을 받았다. 피해자 가운데 80여명은 72년 소송이 끝나기도 전에 사망했다.
한국의 경우 60~70년대에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빈발했다. 당시에는 대기오염이라는 개념도 별로 없었지만, 연탄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CO) 중독으로 인해 연간 1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정부 차원의 대책위원회도 구성됐다. 요즘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정 내 고체 연료 연소에 따른 실내공기 오염이나 다를 바 없다.
80년대에는 울산 국가산업단지 등 공단지역에서 시민들이 대기오염, 공해병을 호소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온산병’이다. 80년대 중반 울산 울주군 온산공단 주변 주민들 사이에서 허리와 팔다리 등 온몸이 쑤시고 아픈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11개 업체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건강 피해 위자료와 농작물 피해 보상금 지급 판결을 받아냈다. 이후 주민 이주사업도 진행됐지만, 온산병의 구체적인 원인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대도시 대기오염도 심각했다. 88년 서울 올림픽 전까지 겨울철엔 아황산가스 등 런던 형 스모그가, 여름철엔 오존으로 인한 LA형 스모그가 번갈아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저유황 연료를 의무화하는 한편, 경유 버스와 트럭에 매연여과장치를 부착하도록 했고, 압축천연가스(CNG) 시내버스 보급에도 힘을 썼다.
서울시청 앞의 대기오염도를 나타내는 전광판.
덕분에 대기오염이 개선됐지만, 최근에는 중국발 스모그와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탓에 우리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베이징 등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는 최근 해마다 가을과 겨울, 봄에 심각한 스모그가 발생하고 있다. 석탄 사용량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초미세먼지(PM2.5) 오염도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한 환경기준치의 30~40배에 이르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스모그로 인해 120만 명 이상이 조기 사망, 평균수명도 5년 이상 짧아졌다는 연구결과도 나온다. 한반도까지 영향을 주는 중국의 스모그는 아예 ‘차이나 스모그’로 이름이 굳어질 수도 있다.
중국발 스모그가 주목을 받는 것은 평상시 깨끗한 공기와 중국에서 스모그가 날아왔을 때의 오염된 공기가 확연히 구별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국내 미세먼지 오염 중 중국 스모그가 차지하는 비중을 30~50% 정도로 보고 있으나, 오염이 극심한 일부 상황에서는 80~90%가 중국 스모그 탓으로 분석하고 있다.
여름철에는 폭염이 빈번해지면서 오존(O3) 오염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폭염이 극심했던 2016년 여름 전국에서는 234회의 오존 주의보가 발령돼 1995년 오존 주의보 도입 이후 가장 많은 발령횟수를 기록했다. 오존은 강력한 산화제이기 때문에 눈과 코, 호흡기를 자극하고,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람은 5분 이상 숨을 쉬지 않고 지낼 수 없다. 대기오염, 즉 공기의 오염은 사람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깨끗한 공기를 유지하는 것은 환경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일 수밖에 없다. 미세먼지 등 환경기준을 강화하고, 오염 배출량을 줄이는 데 노력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정부도 2017년 9월 26일 미세먼지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2020년까지 국내 미세먼지 오염 배출량의 30%를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기업과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오염된 공기를 마시면서 건강한 삶을 바랄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