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9-[생태사진작가 김연수의 바람그물⑦] 너구리
<사진설명>
너구리 가족이 경기도 용인시 수지의 한 아파트 정원에 밤만 되면 나타나 개처럼 익살을 부리고 있다.
야생 늑대와 여우가 사라지지만, 너구리는 최근에 그 개체수가 늘고 있다.
익살스럽고 넉살 좋은 친구를 보면 흔히 너구리라는 별명을 붙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너구리’ 하면 라면을 떠올리지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노인들에게는 따뜻한 봄날 산나물을 뜯으러 가는 엄마 따라 뒷동산에 올랐다가 약간 골이 진 계곡의 바위틈에서 강한 노린내를 느끼면 영락없이 너구리 집을 찾던 추억이 있을 것 같다.
식육목 개과의 너구리. 유라시아대륙에 분포하는 너구리는 이웃 일본에서는 멸종위기종으로 법정보호를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비교적 널리 분포해 있다. 천적인 늑대나 표범 같은 맹수류가 멸종했고 야생동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사람들의 포획이 줄어든 탓도 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지난 60년대와 70년대에는 노린내 나는 너구리도 닥치는 대로 잡았다.
너구리는 봄철에 6~9마리의 많은 새끼를 번식하기 때문에 인간의 간섭만 없으면, 안정적인 개체수를 유지할 수 있다. 봄철에 태어난 새끼는 가을이 되면, 거의 어미만큼이나 자란다. 자연 상태에서의 수명이 약 7~8년이지만 1년생부터 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밀도가 증가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큰 편이다. 갓 태어난 새끼는 몸무게가 60~90g 정도이고 20일 남짓 지나면 눈을 뜬다. 암수가 함께 새끼들을 돌보지만, 젖을 뗀 생후 3개월 정도부터는 새끼들을 독립시킨다.
야행성인 너구리는 개과동물 중에서는 특이하게 겨울잠도 잔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굴속에서 보내지만, 배가 고프면 먹이를 찾아 밖으로 나온다.
덥수룩하게 생긴 모습과 달리, 무척 깨끗한 동물이다. 잠자리도 청결할 뿐더러 배설물은 주거지에서 좀 떨어진 한 곳에 모아두는 독특한 습성을 가졌다. 숲 속을 거닐다 배설물더미가 수북이 쌓인 곳을 발견하면, 틀림없이 근처에 너구리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주변이 먹이환경만 좋으면 어느 정도 무리를 지어 산다. <김연수 생태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