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6-[푸른아시아가 만난 사람] 김연수 황금똥빵 공동대표
인생 2막을 버무리는 그의 손놀림은 아름다웠다
김연수. 푸른아시아 회원님들 사이에는 낯익은 이름일 것입니다. 예상한 바와 같이 문화일보 사진부장, 포커스뉴스 사진영상국장 김연수가 지금 말씀드리는 그 김연수입니다. 되돌아보니 김연수님은 푸른아시아와 참 인연이 깊습니다. 평생 야생조류를 사진으로 담아온 생태사진작가로서 현장을 지켜온 것이 그렇습니다. 푸른아시아도 몽골에 조림현장을 가지고 있죠. 사진작가 김연수에 대해선 우연히 ‘한강의 마지막 황제 참수리’란 사진전을 보고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푸른아시아 카페콘서트 그린토크 출연진으로 모시고자 했는데 흔쾌히 허락해 주셨죠. 그게 2016년 6월이었습니다. 그 다음달 푸른아시아 뉴스레터 67호에서 ‘푸른아시아가 만난 사람’으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당시엔 현직 사진기자이자 야생조류 전문 생태사진가로서 만났죠. 그런 그가 최근 포커스뉴스 사진영상국장을 그만두고 빵집을 차렸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해서 다시 만났습니다.
황금똥빵의 공동 대표 김연수(왼쪽)씨와 이용희씨가 가게 앞에서 서로 발전을 다짐하며 파이팅을 하고 있다.
# 후배를 자르기보다 먼저 그만두고 창업
– 최근 언론사를 그만 두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업종(?)인 빵집을 차렸습니다. 언론사를 그만 둔 계기가 무엇인지요?
“사진기자로는 문화일보에서 정년을 채웠고 덤으로 포커스뉴스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요. 요즘 언론사들도 경영이 어렵다고 하잖아요? 회사 경영이 어렵다고 갑자기 부원을 7명을 해고하라고 하는데 참 말하기가 어려웠죠. 언론사 33년을 잘해왔는데 마지막 몇 년을 더 하겠다고 후배 더러 그만 두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갓 결혼한 후배도 있고 애 낳은 후배도 있고 한데 그만 두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차라리 내가 그만두면 두, 세명 월급은 되니까 하는 생각에 먼저 그만 두었죠.”
– 사진기자로 큰 일을 많이 하셨는데 그만 뒀을 때 심정은 어떠했나요?
“일단 아쉽기도 했죠. 그동안 열심히 했고 또 어떻게 보면 후배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저도 단순한 일을 하고 싶고 좀 쉬고 싶기도 했어요. 자연 현장에 나가서 사진 찍고 걸 좋아했으니 어떻게 보면 그런 걸 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주어질 것 같기도 하고… ”
제분한 통밀을 반죽하는 기계.
– 황금똥빵 사업은 언제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예전부터 통밀빵, 황금똥빵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었어요. 2년 전에 문화일보 정년 앞두고 잘 아는 선배를 만나러 미국에 갔었어요. 그 선배가 구석기시대 돌칼 아트로 유명한 분이거든요. 미국사람들이 와서 가르쳐달라고 해도 안 알려주던 분이 제게는 중국, 일본, 한국의 판권을 줄테니 한번 해보라고 했거든요. 그걸 배우려 그 집에서 머물고 있을 때 아침 점심으로 빵을 주시는 거에요. 맛이 괜찮아서 이게 무슨 빵이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선배가 이거 삼일 먹으면 황금똥을 눈다고 했어요. 숙변을 제거하고, 장을 아주 깨끗하게 해주고 좋다는 거예요. 실제로 삼일째 되니까 황금똥을 누는 걸 체험하고 놀랐죠. 그래서 돌칼과 함께 이 빵 제조법을 배우게 되었어요.
– 그 선배님은 어떻게 건강빵을 먹게 되었는지요?
“제 선배 경우는 성인병을 앓으며 건강이 안 좋아지셨어요. 당뇨에 혈압까지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오래 살기 힘드니 시골로 내려가 인생정리를 하라는 애기를 들었대요. 그런데 이 선배분이 탐구정신이 강해요. 시애틀 외곽에 70만평 땅을 사서 이것 저것 먹으며 농사를 지으며 스스로 인체 실험을 하면서까지 투병을 했어요. 영어, 중국어, 일본어까지 능통해 각종 고서의 의학서를 파고 들었다고 해요. 발효식품에 대한 공부를 하고 콩을 좋아해서 식생활도 콩을 위주로 했대요. 낫또, 된장, 청국장 다 해드시고 콩과 이 통밀빵을 주식으로 하면서 몸이 서서히 원상회복이 되었다고 해요. 나중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기절을 하려고 할 정도로 놀랐다고 해요. 그후 제 선배의 지론은 식생활이 너무 단맛, 짠맛에 오염되어 있다. 원시상태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걸로 바뀌었어요. 달고 기름진 음식은 먹을 땐 즐겁지만 속은 병들는 거예요. 제 선배는 미국 어린이들이 뚱뚱한 게 안타깝다고 했죠. ‘통밀빵을 먹었으면 안 그랬을텐데’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 가서 보급하겠다고 했죠.”
황금똥빵은 통밀을 직접 제분하여 반죽을 만든다고 한다. 이를 위해 제분기까지 직접 구입했다고 한다.
# 내가 먹어보고 좋은 걸 팔자
– 김국장님도 먹어보고 효과를 보셨나요? ‘자영업 초보’이신데 시작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요?
“첫째 절대 비싸게 받지 말라. 둘째 돈을 탐하지 말라. 이 두가지 원칙을 세웠어요. 이 나이에 뭐 떼돈을 벌겠어요. 함께 시작한 제 친구도 대기업 임원 출신인데 정년을 하고 같이 시작했어요. 친구하고 이런 좋은 음식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도록 하자고 약속했죠. 국민건강은 이런 작은 실천에서부터 하나하나 좋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기자생활하면서 환경운동, 환경 쪽으로 많은 관심을 갖고 지냈는데 이런 건강한 먹거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나이 들면서 몸에 신경도 쓰이고 지난 2년간은 고혈당 당뇨로 300이 넘어갔었죠. 그런데 이 통밀빵 먹으면서 거의 정상 수치로 돌아왔어요.”
– 공동 대표와의 인연은 어떻게 되나요? 어떻게 같이 시작하게 되었나요?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감자농사도 같이 지어봤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죠. 이런 일을 같이 하면 마음이 잘 맞을 것 같았어요. 먼저 저 친구가 창업을 해서 저는 옆에서 도와주기만 하려고 했는데 저도 갑작스레 퇴직하면서 같이 하게 되었죠. 지난해 말부터 준비했는데 이제 두달 조금 넘었네요.
가게 간판도 손글씨 작가인 지인이 써줬다고 한다.
– 빵을 팔려면 많이 먹어보기도 해야 할텐데요, 예전에도 빵을 좋아했나요?
“빵은 원래 참 좋아했어요. 고혈당이었다는 것도 지금 생각해보니까 빵을 좋아했던 탓이었던 것 같아요. 아침에 회사 출근하면 꼭 단팥빵을 두 개씩 먹었거든요. 이도 별로 안 좋아서 칼국수 같은 국수류를 많이 먹었죠. 그런 것들 때문에 고혈당이 온 것 같아요. 우리집에 당뇨 유전도 없는데 저만 그러니. 그런데 밀가루랑 통밀은 차이가 있이요.”
(인터뷰 중에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잘 됐다 싶어 몇마디 여쭈어 봤습니다)
– 안녕하세요? 빵 사러 오셨어요? 이 동네 사세요?
“네 여기 대화동 살아요”
– 네 혹 성함을 여쭈어봐도 될까요?
“네 저는 주부 유인영이고요, 오늘 세 번째 왔어요.”
– 여기 빵을 먹어보니 어떤가요? 분위기가 단골 같습니다.
“이전에 근처에서 호밀빵을 구입해서 먹었어요. 그 빵은 건포도가 들어가서 단맛이 강했어요. 그런데 동네 가까운 곳에 새 빵집이 생겨 와 보았지요. 먹어보니 맛이 단백한게 너무 좋았어요. 가족의 건강을 생각해서 빵을 바꾸어보자고 했죠. 집에서는 이 빵에 코코넛 오일을 발라 먹어요. 이 빵은 먹은 후 속이 편한게 너무 좋아요. 남편과 딸둘인 식구들 모두 편하다고 해요. 저희는 집이 가까우니까 자주 와서 사먹으니 굳이 냉동 보관할 필요가 없어요. 저는 다이어트를 해야 하니까 식사대용으로 해요. 남편도 건강관리를 해야 하고 저도 혈관관리를 해야해서 젊은 사람들보다 빵을 바꾸기가 쉬웠어요.”
(손님과 인터뷰를 하는 중에 김 대표는 연신 빵을 더 담는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아유, 그만 담으세요. 지난번에도 덤을 주시고는 하면서 빵 주머니를 건네받는다. 그야말로 옛날 동네가게의 참 익숙한 풍경이다. 다시 김대표와 마주 앉았다.)
인터뷰 중 손님이 찾아와 주문을 하고 있다.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이 익숙하다.
# 지방에서 택배주문 오는 게 가게 직접 판매보다 많아
– 제2인생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사업 준비 과정을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준비 과정에서 친구가 고생을 많이 했죠. 가게 이름은 제가 정했어요. 우선 미국에서 오자마자 특허출원을 했어요. 그게 작년 상반기였어요. 어떤 분들은 빵이름이 황금똥빵이 뭐냐고 말리는 분도 있었지만 똥이 나쁜 게 아니잖아요? 배설을 잘 해야 몸이 건강하잖아요. 오히려 현대인들은 변을 못 봐서 병이 되잖아요. 촉매재, 촉진제 역할을 하면 더 좋지 않겠나 해서 황금똥빵이라고 지었고요. 가게는 친구집이 일산, 제 집도 원래는 정발산 아래여서 일산으로 정했어요. 일산으로 정한 것은 소자본으로 창업하니까 임대료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리고 이 골목이 먹자골목으로 자리잡아 유리하다고 생각했어요.”
– 황금똥빵 자랑을 한껏 하신다면?
“대한민국에 황금똥빵만큼 신선한 빵은 없다. 일반 빵은 집에 사간 후 며칠을 두어도 썩지 않아요. 저희 황금똥빵은 상온에서 삼일 지나면 곰팡이가 쓸 거예요. 그만큼 방부제나 첨가제가 안 들어갔다는 걸 증명해주는 거죠. 유일하게 들어가는 게 소량의 소금이에요.”
– 현재 가게 운영은 잘 되는 편인가요?
“저희 둘이 여기 와서 노동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 대해 만족해요. 처음엔 하루 700개 만드는 것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1,000개 만드는데 큰 무리가 없어요. 평균적 700~800개 팔리는데 물량의 반은 택배로 나가요. 택배로 가도 저녁에 발송하면 그 다음날 받으니 상할 염려는 없어요. 지방의 주문이 서울보다 더 많아요.”
–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아빠가 다시 또 일을 한다니까 좋아하죠. 말리거나 큰 걱정을 하지는 않더라고요. 큰 자본이 드는 것도 아니고 친구랑 반반하니까. 인테리어도 아시는 분이 재료비만 받고 해줬어요. 벌써 체인점 문의도 들어와요.”
– 앞으로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
“비즈니스 차원이 아니라 건강 차원에서 대량생산 소비의 시대를 벗어나서 옛날 사람들이 오랫동안 먹었던 이런 음식들이 곳곳에 많았으면 좋겠어요. 전국에 황금똥빵이 많아지면 가능하겠죠. ㅎ ㅎ 자라나는 세대들이 어려서부터 달콤한 것에 맛들이면 입맛을 쉽게 바꾸지 못해요. 패스트푸트 좋아하는 게 그렇잖아요. 성인병 예방을 위해서라도 건강한 걸 먹어야지요. 요즘 나이드신 분들이 많이 오시는데 그 분들 말씀이 옛날 먹는 빵맛이래요. 그래서 아 제대로 만들었구나 하게 되는데 달지 않지만 몸에 좋은 빵을 많이 찾았으면 좋겠어요. 꼭 황금똥빵이 아니더라고 건강한 한끼를 먹는 풍토가 자리잡길 바래요.”
예전의 밥상은 소박했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는 그를 보면서, 중세시절 먹던 빵이 몸에 좋은 빵이라고 강조하는 그를 보면서 ‘빵집 아저씨’ 다 되었다는 걸 느꼈다. 평소 그의 품성에 감동한 지인들의 격려가 주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인생 2막을 버무리는 그의 손길도 바빠졌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오후 햇빛에 반짝였다.
글 이동형 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