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몽골] 우리 눈에 보이는 몽골 ? 육심제 단원
한국에 봄이 찾아오고 매년 느끼지만 질리지 않는 이유 모를 설렘을 모두가 느낄 때 나는 몽골로 떠날 준비를 마쳤고 나 역시 앞으로 내가 하게 될 걱정들에 대한 설렘을 만끽하고 있었다. 나는 이 두려움 섞인 설렘을 하루라도 빨리 현지에서 느끼고 싶었기에 출국만을 애타게 기다렸고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을 떠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망치듯 집을 떠났다. 미리 하는 걱정과 미리 하는 기대가 남아있지 않았을 때 떠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타지의 첫인상에 대한 느낌이 이렇게나 무미건조할 수가 있을까? 물론 밤늦게 도착해서 부랴부랴 숙소로 들어갔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었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엔 여유가 없었을 것 같다. 몽골 땅에 발을 내디뎠지만 도심은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이 녹아있는 곳이 아니므로 별 감흥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본격적으로 몽골에서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어색함을 느낄 틈도 없이 빡빡한 일정이 시작되었다.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사전교육이 진행되었고 직접 현장에 가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시간도 포함되었다.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현지교육은 확실히 국내교육과는 느낌이 달랐고 우리가 하게 될 일에 대한 정의를 드디어 내릴 수 있게 해주었다. 모든 교육이 뜻깊었지만 그중에서도 조림지 방문 교육이 가장 의미 있었다. 우린 바가노르와 에르덴을 방문했는데 항상 현장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왔고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지만 이제야 내가 일하게 될 현장을 만나게 되었다는 역설 덕분에 반가움을 숨길 수 없었다. 최근 내 귀와 제일 친한 단어는 당연 ‘조림지’이다. 귀로 들을 때는 세 글자로 끝나버리는 이 조림지를 눈으로 담기 위해 나는 한참을 둘러봐야 했고 끝내 다 담을 수 없었다. 몇 개월 전의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푸른 아시아의 조림지를 ’숲‘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콧방귀를 뀔 것이다. 나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몽골의 환경과 수많은 어려움이 조림 사업을 끝없이 괴롭히기 때문에 조림 사업은 10년 뒤를 내다보며 천천히 진행되어야 하며 남들에게 성과를 한눈에 보여주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곳에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고 이 변화의 시작점은 힘든 환경과 누군가의 비웃음에도 당당히 버티는 작은 나무들이다. 변화에는 땅이 회복되고 있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조림지에서 일하시는 주민들은 조림지를 단순히 일터가 아니라 삶의 터전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시켜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것을 지켜내기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에르덴에서 우리를 보고 손 흔들며 뛰어 나와준 꼬마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꼬마들을 보고 전율을 느꼈고 그들을 보고 있으면 그냥 웃음이 나왔으며 곧 행복이라는 단어로? 정의되었다. 아직도 내가 느낀 감정의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음가짐만큼은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울란바토르에서의 한 주가 순식간에 지나가고 이제는 숙소를 우리 집이라고 부르며 뭘 먹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되었을 때 우린 드디어 우리가 파견될 지역을 알 수 있었다. 사전에 희망지역 1순위와 2순위를 적어내긴 했지만 어디든지 장단점이 있으므로 어딜 가더라도 상관없었다. 굳이 내가 1순위와 2순위를 정한 이유는 일종의 책임감 함양을 위한 최면이었다. 지역에 대한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모르는 게 더 많은 것이 사실이었고 지역의 장단점을 산술적으로 계산하여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원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난 내 마음을 이용했다. 결과적으로 난 내가 원하던 지역인 다신칠링으로 가게 되었고 내가 선택한 곳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파견지역이 결정되고 우린 각자 파견지역을 방문했다. 운 좋게도 내가 가는 날에 주민선발을 하고 있었고 함께 일할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막상 가보니 막막함을 숨길 수 없던 것도 사실이지만 불평을 하고 싶진 않았고 얼마 후면 자연스럽게 지역의 전문가가 되어있을 것이기 때문에 조급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신칠링의 조림사업은 인천시와 함께 진행한다. 인천을 벗어난 적이 없는 인천의 아들인 나에게 이 점은 장점으로 느껴졌고 이 역시 책임감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이제 현장 밖에서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마쳤다. 나머지는 현장 안으로 들어가야만 보일 것이다. 괜한 걱정은 날 작아지게 만들고 괜한 기대는 날 실망하게 하므로 미리 걱정하지 않고 미리 기대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잘 간직할 것이다. 현장에서는 서로 부딪힐 일도 정말 많겠지만, 열심히 부딪히면서 현장의 소리를 내고 이 소리를 퍼뜨리는 것도 내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에 부딪힐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부딪히려 한다. 나는 이제 도우러 온 것이 아니라 나를 녹이러 온 것이라는 초심을 꽉 잡고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몸으로 보여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