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7-[송상훈의 식물이야기] 기후변화 알리미 지표생물
지난 3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약 2만 여종의 식물, 곤충, 양서류, 조류 중에서 50여 종을 선정하여 ‘기후변화 알리미 생물‘로 발표했다. 즉, 복수초가 피고 북방산개구리가 울며 제비가 날아 든다면 초봄이 도래하고, 현호색이 피고 호랑나비가 날며 뻐꾸기가 노래한다면 봄이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변화에 민감히 반응하는 생물들인데 이들의 발생 시기가 빠른지 느린지를 통해 한반도의 기후변화와 생태변화를 예측하고 계절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이번에 선정된 계절 알리미 생물종 중 변산바람꽃, 피나물, 한계령풀, 고려엉겅퀴, 금강초롱꽃, 북방산개구리 등은 환경부와 산림청에서 공통으로 지정한 기후변화 지표종에 해당된다. 이번 회에서는 이들 생물에 대해 간략하도록 한다.
1993년에 변산반도에서 발견되어 변산바람꽃이라 명명되고 변산반도국립공원 깃대종으로 지정된 변산바람꽃은 너도바람꽃과 비슷하게 생겼으며 주로 해변가 산지의 볕 좋은 습지에 서식한다.
설악산에서 한라산까지 습윤한 지역에서 발견되지만 꼭 한반도에만 서식하는 것은 아니며 지역에 따라 변이가 심하므로 변산이 아닌 서식지역 이름을 일일이 붙인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식물이다. 복수초 등과 함께 2월말에 개화하며 고도에 따라 4월까지도 관찰할 수 있다.
미나리아재비과인 바람꽃에는 변산바람꽃 비슷한 너도바람꽃, 하나의 꽃대에 여러 꽃이 피는 만주바람꽃, 꽃잎이 8~12장이며 마치 노루귀처럼 화려한 꿩의바람꽃, 꽃대에 오로지 한송이만 꽃피는 홀아비바람꽃, 꽃대가 길고 꽃받침 뒷면이 분홍색인 남방바람꽃, 볼품 없는 노란꽃의 회리바람꽃을 비롯해 8월 중부이북 고산에서 개화하는 바람꽃 등등 19종 정도인데, 변산바람꽃은 가장 먼저 꽃피우며 꽃밥이 연한 자주색이어서 구별이 쉽다.
높이 10cm 정도이며 땅속에 덩이뿌리(괴근)가 있다. 흔히 꽃잎이라 착각하는 흰꽃잎은 사실 꽃받침이며 자주색 꽃밥을 둘러싼 녹색 꽃밥처럼 여겨지는 것이 진짜 꽃잎이다.
서양의 바람꽃은 우리나라 바람꽃과 많이 다르다. 서양에서는 바람꽃을 아네모네(Anemome)라 하는데 그리스어로 바람이라는 뜻의 아네모스(Anemos)에서 비롯되었다. 굳이 우리나라 바람꽃과 비슷한 아네모네를 찾는다면 알프스아네모네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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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물은 노랑매미꽃이라고도 불리는 양귀비과 식물이다. 금강초롱꽃처럼 1속1종으로 귀한 몸이며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아의 산지계곡과 개울가에 서식한다.
높이 20∼40cm이고 잎은 깃꼴(새털 모양)겹잎이고 3~7장이며 노란꽃이 4~5월에 개화한다.
피나물꽃은 매미꽃과 구별이 어려운데 피나물은 봄에만 개화하고 매미꽃은 봄부터 여름까지 개화한다. 따라서 매미가 우는 시절의 꽃은 피나물이 아닌 매미꽃으로 보면 족하다.
물론 둘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피나물은 원줄기가 오르면서 2~3개로 갈리고 그 끝에 꽃이 핀다는 점에서 잎줄기와 꽃줄기가 처음부터 각각 따로 올라오는 매미꽃과 다르다. 또한 피나물 잎은 결각이 심하지 않아 단정한 모습이지만 매미꽃은 잎의 결각과 변이가 심하다.
같은 양귀비과의 애기똥풀 줄기를 자르면 노란 유액이 나오고 이를 아기똥 같다 하여 애기똥풀이란 이름을 붙이듯이 피나물의 줄기를 자르면 진한 노랑에 가까운 주황 유액이 나와서 피나물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새붉은 유액은 피나물이 아닌 매미꽃에서 나온다. 그래서일까? 피나물의 이명이 노랑매미꽃이다.
초봄 어린 잎은 데쳐서 나물로 식용한다. 양귀비과 식물이 모두 그렇듯이 꽃과 잎과 뿌리 전체에 독성이 있으므로 잘못 섭취하면 호흡장애와 사지마비를 부르지만 독을 다스려 류머티스관절염과 타박상, 종기치료에 이용했다. 이들과 비슷한 식물로 새발노랑매미꽃이 있는데 잎은 매미꽃을 닮고 꽃은 가지친 줄기 끝에 달린다는 점에서 피나물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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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풀은 중부이북 고산의 활엽수와 침엽수림에서 자라는 매자나무과 두해살이 초본으로 높이 30~40cm 정도이다. 설악산 오색계곡의 한계령 능선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꽃잎도 꽃술도 노란 꽃이 4월 하순에 개화하며 10일 정도 지속된다. 유전다양성도 낮고 세계적으로도 서식지가 넓지 않은 북방계 식물이다. 또한 환경부가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할 만큼 귀한 꽃이지만 아직은 대단위 군락지도 몇 곳 남아있다.
삼지구엽초나 꿩의다리아재비 등 매자나무과 초본은 거치 없는 잎이 3개로 갈라지기를 반목하는데, 한계령풀 역시 원줄기를 감싸는 한 개의 잎이 3개로 갈라지기를 2회 반복하여 9개의 잎을 갖고 있다.
실처럼 가는 뿌리 줄기 끝에 굵은 덩이뿌리를 가져서 북한에서는 메감자라고 부르는데 독성이 있지만 멧돼지의 먹이이기도 하다. 멧돼지는 덩이뿌리를 파먹으면서 씨앗도 묻게 되므로 자연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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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엉겅퀴는 구멍이, 고려가시나물이라고도 불리는 국화과의 한국특산식물로 산지의 서늘하고 습진 곳에서 자생한다. 키는 1.2m 정도로 자라고 8~10월에 자주색 또는 흰꽃이 가지 끝에 1송이씩 개화한다.
잎에 결각이 많아 단정치 못한 다른 엉겅퀴와 달리 타원형의 부드러운 잎을 갖고 있다. 잎은 5~6월까지 식용하며 잎의 가시는 점차 억세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술 취한 듯하다 하여 곤드레나물이라고도 불리며, 지금은 곤드레나물밥이 사랑 받고 있지만 과거에는 나물로, 국으로 쓰이던 구황식물이었다.
우리가 흔히 만나는 엉겅퀴는 스코틀랜드 국화이자 왕가의 상징이기도 한데,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전쟁 때 아일랜드 첩자가 침입하다 엉겅퀴 가시에 찔려 들통났고 첩자의 정보를 역이용해 대승하게 된대서 연유한다. 엉겅퀴는 전쟁 중에 전염병이 돌자 왕이 신에게 기도하고 화살을 쏘자 모두 엉겅퀴에 꽂혔고 이 엉겅퀴를 병사에게 먹이자 병이 나았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식물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고려엉겅퀴를 포함한 엉겅퀴, 가시엉겅퀴, 바늘엉겅퀴, 지느러미엉겅퀴, 동래엉겅퀴, 정영엉겅퀴, 도깨비엉겅퀴 등등은 모두 고혈압과 간경화, 관절염 치료에 탁월하다. 멸종위기 식물이 아니고 대단위 재배하므로 건강식으로 즐겨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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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만 있는 금강초롱꽃은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1종1속 식물이다. 일반 초롱꽃과 달리 뿌리에서 나오는 잎이 없고 잎이 줄기의 가운데 부분에만 모여 달리는데 털이 없이 미끈하다. 꽃색은 흰색, 자주색, 붉은색으로 다양하며 꽃받침은 작고 뚜렷하다.
금강산에 살던 오누이의 슬픈 전설을 담고 있는 꽃이다. 누나의 병을 고치려 약초를 찾아 떠난 동생이 걱정되어 초롱불을 들고 나섰다가 누이는 쓰러져 죽고 초롱불은 초롱꽃이 되었다 한다. 북한에서도 금강산 인근에 있는 군락을 천연기념물제223호로 지정하여 보호 중이다.
1962년에는 우리나라 우표 모델이 되기도 했고 여전히 광고에 자주 등장하지만 학명은 ‘하나부사야 아시아티카 나카이(Hanabusaya asiatica Nakai)’로 어색하다. 일제 강점기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1882~1952)이 1911년 금강초롱꽃을 새로운 속(屬)으로 명명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국제식물명명규약’에 따라 학명표기는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가 창안한 속명(屬名) 종소명(種小名) 명명자(命名者) 순으로 표기함이 원칙이므로 ‘Campanula koreana Nakai’가 되었어야 하지만 자신의 식물 채집을 도와준 조선총독부의 초대 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를 학명에 붙이고, koreana가 싫어서 ‘아시아 지역의 식물’이라는 asiatica를 표기함으로써 한국 특성이 사라진 학명이 되었다고 한다. 나카이는 ‘금강인가목속(Pentactina·1917)’, ‘미선나무속(Abeliophyllum·1919)’ 등 한국 고유식물을 발견했으며 그 중 몇몇 식물에 일본식 학명을 붙였다. 전설보다 서글픈 역사가 우리식물에 깃들어 있음에 마음이 착잡하다.
환경부 보호2종이기도 한 북방산개구리는 양서류 개구리과로 한반도와 일본, 사할린의 내륙 산지 주변에 서식한다. 몸은 6~7cm이고 갈색이며 진한 암갈색 무늬가 눈 뒤까지 있지만 눈 앞쪽에는 없다. 암갈색 무늬는 다리에도 있으며 배는 희거나 노랗다. 주둥이는 날렵하며 점프력이 좋다.
산계곡 바위 밑 또는 낙엽이 쌓인 곳에서 겨울잠을 자다가, 개구리 중 가장 먼저 동면에서 깨어나며 경칩을 전후하여 물이 많은 저지대의 논에 집단으로 저마다 2000개 정도의 알을 산란한다.
남자 잠수부를 뜻하는 머구리는 본래 개구리의 순 우리말인데, 논에서 밤새 왕왕 울어대던 머구리가 북방산개구리이다. 이들은 야생성이므로 낮에는 보기 어렵다.
북방산개구리는 빈궁기 때 인간의 위장을 달래주던 대표적 생물이었다. 매년 엄청난 북방산개구리가 인간의 위장에서 분해되었지만 당시에도 개체수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논밭이 사라져 산란처를 잃고, 인간의 배려 없는 개발로 산에 오르려다 도로에서 즉사하며, 굴착기 등 중장비를 이용한 대량 포획이 일반화되면서 점차 줄어들더니 최근 기후변화로 인하여 현격히 줄어들었다. 개구리의 급감은 단지 개구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생태계 사슬이 무너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간에게 부담될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기후변화 알림이로 지정된 계곡산개구리도 북방산개구리와 비슷해 보이지만 체구가 더 작고 날씬하며 눈 앞에도 암갈색 무늬가 있고 주둥이는 덜 날렵하다. 계곡산개구리는 북방산개구리와 달리 유속이 빠른 계곡물의 바위에 산란한다.
지금까지 환경부와 산림청에서 공통으로 지정한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을 살펴 보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자료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민감한 3개종을 모니터링 한 결과 개구리산란은 4일, 박새산란은 19일, 신갈나무 개엽은 11일 빨라졌다. 최근 들어 전체적으로 계절적 변화가 이전보다 빨라지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환경성과지수(Environmental Performance Index) 발표가 있었다. 2년 단위로 9~10개 부문에서 각국의 환경개선 정도를 개량화하여 순위를 발표하는데 우리나라는 2014년에 178개 나라 중 43위였으나 2016년에는 180개 나라 중 80위로 떨어졌다. 미세먼지 노출 위험이 매우 높고 이것이 직접 건강을 위협한다는 게 주요하게 작용했고, 생물다양성과 서식지(Biodiversity and Habitat) 보호에 미흡하다는 것도 한 몫 했다.
OECD 2016년 ‘더 나은 삶 지수‘에서는 2012년 24위였던 우리나라는 38개 국 중 28위로 하락했다. 환경 37위(환경 중에서도 대기오염 꼴찌인 38위), 공동체 37위, 일과 삶의 균형 36위, 건강 35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인간활동으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이 점점 증가하면서 지구 기온이 높아지는 가운데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하여 우리가 관심 갖고 감시하며 보호해야 할 영역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내심 마음이 무겁고 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