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2-[송상훈의 식물이야기] 겨울산의 꽃 아닌 꽃

 

최근 기록적인 한파가 10일 가까이 이어지다가 다시 풀리고 있다. 이번 추위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제트기류의 약화가 그 원인이라고 한다. 북극의 한기가 밀려 내려 오지 않도록 강하게 옭아매던 제트기류가 온난화로 인해 약해지면서 북극 한기가 밀려 내려 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제주에는 1m 이상 폭설이 내려 공항과 바닷길이 묶이고, 중국 북부지방 기온은 영하 30~40도까지 급강하했으며, 미국에는 초속 80Km의 눈보라가 몰아쳤다.

34온이 사라진 지 오래라고 다들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피부로 느끼기는 이번 겨울이 처음인 듯 싶다. 작년 12월만해도 봄꽃이 개화할 듯 포근했던 날씨였기에 이 맘 쯤 만개한 목련이나 버들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내심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대신하여 차고 넘칠만큼 아름다운 꽃들이 있어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꽃은 꽃이되 꽃 아닌 겨울꽃, 눈꽃, 서리꽃(상고대), 얼음꽃이 그들이다.

눈꽃(雪花)은 나뭇가지 눈이 쌓이고 쌓여 위로 자라는 현상을 말한다. 눈 내린 겨울산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친근한 모습으로, 푸근하고 넉넉함이 느껴지는 겨울꽃이다.

 


상고대는 수상(樹霜), 수빙(樹氷), 조빙(粗氷), 무빙(霧氷)이라 부르며, 맑은 겨울밤에 기온이 영하로떨어지면 안개나 옅은 구름 등 대기 중의 수증기가 0°C 이하로 냉각되면서 나뭇가지에 부착되어 생기는 현상으로 강인하고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겨울꽃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서리꽃, 나무서리, 무송(霧松)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상고대와 서리꽃을 구별하여 서리꽃을 말 그대로 서리가 나뭇가지에 부착된 것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상고대와 눈꽃 등 겨울꽃이 가장 장관인 곳은 덕유산이다. 덕유산은 사진작가들이 가장 즐겨 찾는 겨울산이며 겨울을 배경으로 한 달력에 가장 많이 등장한다. 소백산 또한 이에 못지 않은데, 비로봉 서북쪽의 주목 군락지 유명하며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겨울 홍보영상에 메인으로 등장할 정도이다.

상고대로 장관인 곳은 무등산도 둘째 가라면 서럽다. 무등산의 상징인 서석대의 상고대는 매우 장관인데, 이렇게 장엄한 풍광은 남부의 온도와 서해의 습도가 고지에서 만나기에 가능한 것이다.

빙화(氷花)는 설화나 상고대가 녹으면서 나뭇가지 아래로 얼음이 자라므로 초봄 즈음에 볼 수 있다.

이들 말고도 겨울산에 자주 보이는 마른꽃 형상들이 있다. 벌레집(충영)이 그것이다. 벌레가 식물의 생장점에 알을 까서 정상적 성장을 방해하여 꽃처럼 변한 것이 충영이다. 벌레야 어느 나무에든 붙어 살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를 살펴 본다.

가장 흔히 보이는 것은 때죽나무의 납작진딧물 충영이다. 마치 꽃이 마른 듯이 보이기도 하고 열매처럼 보이이기도 하지만 납작진딧물집이다. 납작진딧물이 때죽나무의 원기를 모두 빨아들인 탓인지 충영이 있는 때죽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한다. 나무에 기생하는 벌레집은 때로는 약재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때죽나무 충영은 물고기를 마비시킬 정도의 독성이 있으며 물을 정화시킨다. 개다래나무의 충영은 신장질환, 중풍, 당뇨, 생식기질활, 관절염 등에 쓰이고, 붉나무의 충영은 오배자라 하여 해독, 위궤양, 대장질환, 구내염 등에 쓰이곤 한다.


신갈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등 참나무의 혹벌 충영도 자주 볼 수 있다. 혹벌은 마치 파리만한 작고 날씬한 벌인데, 혹벌 중에서도 날개 없는 혹벌이 지은 집이다. 여름에는 꽃처럼 보이다가 단풍까지 들면 매우 화려하다. 겨울도 그 흔적을 자주 볼 수 있다.

겨울산을 자주 오르는 사람이라면 몇 번을 마주쳤을 궁금한 형상이 있다. 진녹색에 비밀스런 무언가 담겼을 것 같은 묘한 이것의 정체를 혹자는 청개구리집이라고도 부르지만 청개구리와는 전혀 관계 없는 유리산누에나방(팔마구리나방)의 고치이다. 팔마구리는 조그맣다는 뜻이면서 팔팔하다는 의미도 내포하니 유리산누에나방의 움직임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고치를 가르면 빈 번데기만 있다. 주인은 이미 가출한 상태이다.

 

지금까지 겨울산에서 볼 수 있는 꽃 아닌 꽃들을 살펴 보았다. 이 기묘한 자연의 세계가 지금의 온난화 속도라면 조만간 우리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과도한 욕심과 불필요한 생산으로 인해 더는 자연이 무너지지 않기를,
이상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가 병들지 않기를 기원하며 본 회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