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몽골] 2015년 되돌아 보기 – 이보람 단원
1월
–국내 교육이 시작됐다. 총 4주 동안 국내 교육을 받았다.
(푸른아시아 서울 본부에서 2주, KCOC 합숙교육 2주) 비록 2주였지만 난생 처음 서울 생활을 해봤다. TV에서만 보던 출퇴근 시간 지옥철도 탔다. 아, 사람이 정말 많아서 너무 무서웠다. 특히 환승하려고 이동할 때가 제일 무서웠다.
국내 교육은 정말 재미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몰랐던 세상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 다양한 사람들도 만났다. 교육을 통해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다양한 생각들을 들었고, 나도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내가 정말 원해서 하는 공부를 처음 해 본 것 같다.
그리고 푸른아시아 후원의 밤 행사에도 참여했었다. 단원들이 작은 공연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우리는 Let it be를 개사해 불렀다. 나는 심한 음치이자 박치라서 굉장히 힘들었다. 다른 단원이 내 파트를 녹음해줘서 그걸 계속 들으면서 연습했다. 시도 때도 없이 부르고 다녀서 다른 단원들이 내 부분을 다 외울 정도였다. 어쨌든 식은 땀 흘리면서 무사히 공연(?)을 마쳤고, 경품에도 당첨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2월
–본격적인 작별 인사 및 짐 싸기가
시작됐다. 선배 단원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다 챙겨 넣었는데 몽골에 와서 정말 후회했다. 대체 식판은 왜 챙겼나 싶다. 작은 식판도 아니고 급식소 식판인데, 캐리어가 터질 것 같아도 이것만은 꼭 챙겨가자!해서 억지로 넣어왔다. 그런데, 단 한번도! 정말 단 한 번도 쓰질 않았음. 아직까지 옷장에 쳐(!) 박혀있다.
대신 예쁜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는 챙겨올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입을 일 없고 신을 일 없을 거라고 작업복에 등산화랑 겨울 부츠만 챙겨왔는데 정말 후회된다. 물론 현장에선 입을 일 없다.
하지만 유비 갈 때 오랜만에 도시에 왔으니 예쁜 옷 입고 기분 전환하고 싶은데, 등산화랑 추리닝밖에 없어서 아쉬웠다.
그리고 비자 문제 때문에 출국 날이 계속 미뤄져서 원래 예정된 날보다 약 이 주정도 늦게 출국했다. 그러다 보니 작별 인사를 여러 번 하게 됐는데, 마지막에는 아직도 안 갔어?라는 말까지 듣게 됐다. 허허
이민가방, 28인치 캐리어, 기내용 캐리어, 배낭, 기타
등등…내가 왜 그랬을까
3월
–드디어 몽골에 도착! 한 달간의 현지 적응 교육이 시작됐다. 엄청 추울까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단 괜찮았다. 매일 영하권 날씨인데도 한국의 영하권 날씨보다는 덜 추운 것 같았다. 그리고 추위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더위로 고통 받아야 했다. 숙소의 난방이 너무나도 잘 돼서 한 여름처럼 더웠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 물기를 닦자마자 땀이 났고,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해야지 씻고 나서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이불은 필요도 없었고, 파트너 언니랑 나랑은 더워서 얇은 여름 원피스 잠옷까지 샀다. 바깥엔 연기 냄새가 너무 심해 창문을 자주 열어놓을 수가 없어서 더 괴로웠다. 그래도 요즘 집이 추울 때, 그 뜨거웠던(?) 숙소가 아주 가끔 생각나긴 한다.
현지적응교육 때 방문했던 점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 큰
나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생명이 죽어가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져 무서웠다.
4월
–한 달간의 교육을 끝내고 현장으로 파견됐다. 현장 견학을 하고 실무 교육도 받았지만, 출근을 앞두고 마음은 여전히 걱정되고 불안했다. 현장에 내려오고 2~3일 뒤에 출근을 했어야 했는데, 마음의 여유가 생기질 않았다. 그러다 조림 사업이 일주일 미뤄졌고, 그 일주일의 시간 동안 조림지도 둘러보고, 마을도 둘러보고 하면서 여유를 찾았다.
주민직원들은 다들 오랫동안 조림지에서 일을 하셨던 분들이라 어떤 시기에 어떤 일을 해야 되는지 잘
알고 계셨다. 현장 출근 전, 불안해 하는 우리에게 연장 단원 오빠가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정말 걱정할 것 하나도 없었다.
+ 파견 전, 불안의 이유는 언어인 것 같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어려움이 생겼을 때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계속 됐다. 그런데 언어가 가장 큰 어려움은 맞지만, 가장 걱정해야 될 것은
아닌 것 같다. 부끄럽지만 지금 10개월의 몽골 생활 동안, 내 언어실력은 크게 향상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생활하고 있는 이유는,
1. 조림지 직원들은 아주 많이 부족한 몽골어 실력을 가진 단원들을 매년 새로 만남. 그러다 보니 우리가 아무리 X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신다. 제대로 된 문장 말할 수 있는 게 몇 개 없는데도 대화가 된다.
2. 눈치가 생김: 살다 보면 저절로 눈치가 생긴다. 허허
3. 정말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언제나 한 줄기 빛이 되어주시는 간사님의 통역♥
5월~9월
-5월부터는 관수 작업이 시작됐다. 날씨가 쌀쌀해지기 전까지는 관수 작업이 계속 된다. 이 때부터는 별 다른 새로운 일 없이 평범한 일상이 반복된다. 특히 돈드고비 같은 경우는 에코투어도 (거의)없고, 방문자도 많이 없어서 자칫하면 일상이 무료해져 슬럼프가 찾아올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무료해지거나, 슬럼프가 찾아오지 않은 대신 반복적이고 평범한 일상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들이 생기고, 초심을 잊을 때도 있고, 시간이 있음에도 공부를 많이 안 했다. 나 자신에게 채찍이 필요했는데, 자괴감에 빠져 일상이 우울해질까봐 그냥 외면해 버렸다. 이 부분이 후회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나가버린 일인걸 허허
10월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10월이 찾아왔다. 이 때는 조림 사업이 마무리가 되는 시기이다. 10월부터는 정말 추울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는 따뜻했다. 조림지 나무들이 아직 작은 편이라 단풍은 기대도 안 했었다. 그런데, 작은 나무들인데도 단풍이 드니 참 예뻤다. 해가 짧아져 퇴근 시간 때쯤엔 노을이 지기 시작했는데, 저물어 가는 태양 빛에 비친 조림지는 정말 아름다웠다.
너무나 아쉽기도 했다. 내년에는 이 아름다운 조림지를 못 볼 거라 생각하니 아쉽고, 직원 분들도 사업 마무리가 되면 자주 못 뵐 테니 아쉽고. 그냥 왠지 마음이 싱숭생숭 했다.
사업이 끝나던 날, 다 같이 쫑파티를 했다. 노래방에 가서 정말 신나게 음주가무를 즐겼다. 그리고 직원 분들이 우리에게 선물도 주셨다. 여름 휴가 때 언니는 고비 사막으로 휴가를 가고 나는 국경도시인 셀렝게로 휴가를 갔었다. 그래서 언니에게는 언니가 안 가본 셀렝게 사진을, 나에게는
고비 쪽 사진을 주셨다. 정말 감동ㅠㅠ♥
쫑파티 후 찍은 단체 사진
정말 감사하고 감사한 분들
11월-12월
겨울이 시작됐다. 11월 중순쯤 내리 눈이 아직도 안 녹아서 온 세상이 하얗다. 눈이 많이 내려서 나무들에게도 좋고, 내년에 풀도 많이 자랄 것 같아 좋을거라 생각했는데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가 보다. 경비아저씨께서 올해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가축들이 먹을 풀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러면 건초를 구입해서 먹여야 하는데, 돈이 많이 드나 보다. 아무쪼록 사람도, 동물도 이 추운 겨울 무사히 났으면 좋겠다.
겨울 동안은 현장에서 주민 사업을 기획해서 진행한다. 나는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실을 하는데 오후에는 학생들과, 밤에는 어른들과 함께 한다. 학생들과 하는 수업은 특히나 더 재미있다. 노래를 좋아해서 한국 동요를 매주 알려주는데, 열심히 따라 부르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다.
몽골에는 학교가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뉜다. 몰랐었는데 나랑 같이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오후반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학교를 조퇴하고 내 수업을 들으러 온다고 한다. 뜨악; 이번 주에 수업을 가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서 오전으로 시간을 옮겨야 될 것 같다.
왼쪽, 사랑스러운 아이들.
나중에 이 아이들이 컸을 때,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오른쪽, 조림지 가는 길이 새하얗게 변했다.
허허벌판에서 푸른 초원으로 그리고 이젠 하얀 설원으로.
막상 적어놓고 보니, 별로 한 일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이번 일년은 꽉 찬 느낌이다. 정말 소중하고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짜도 정해졌고, 이곳에서의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처럼 무사히 몽골 생활 잘 마무리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늘 건강하세요.
–이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