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0-[송상훈의 식물이야기] 단풍을 대표하는 수종들
올해도 단풍이 한해를 마감하듯 안녕을 고하고 있다. 중부 이북은 상당 부분 낙엽이 가랑지고 있지만 아직도 붉게 물든 단풍에 가슴 벅차하는 사람들로 산들은 북적인다.
오보영 시인은 「가을단풍」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더 이상 / 속 깊숙이 감춰둘 수 없어서 / 더 이상 / 혼자서만 간직할 수 없어서 // 세상 향해 고운 빛깔 / 뿜어내었다 // 반겨주는 이들 위해 / 활짝 웃었다 / 갈바람에 시린 가슴 / 달래주려고 // 파란 하늘 병풍에다 / 수를 놓았다
이처럼 단풍에 대한 아름다운 시구가 넘쳐나지만 그 과학적 사실은 식물의 배설이다. 계절을 나며 품고 있던 노폐물과 몇몇 성분이 섞인 물주머니(액포)들을 떨어질 잎에 담게 되는데, 액포 내 수분을 줄이는 과정에서 광합성이 멈추면서 엽록소에 가려있던 안토시아닌(anthocyanin. 붉은색), 카로틴(carotene. 황적색), 크산토필(xanthophyll. 노란색), 타닌(tannin. 회갈색) 등이 비로서 드러나게 되는 것이 단풍이다. 잎의 떨굼, 즉 낙엽은 체내 수분은 줄이면서 농도는 높여 혹한에서 얼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치열한 생존전략이다.
단풍이야 형형색색으로 모두 아름답지만 이번 회에서는 붉은색을 대표하는 단풍 주역들 몇 종을 알아 보도록 한다.
가장 대표적인 수종은 단풍나무과이다. 단풍나무는 잎 한몸에서 작은 잎(열편)이 5~7개, 당단풍나무(섬단풍나무 통합)는 9~14개로 갈라진다.
단풍나무는 재질이 치밀하고 단단해서 피아노, 테니스라켓, 볼링핀, 체육관 바닥재에 많이 쓰인다. 산에서 주로 만나는 당단풍나무 역시 재질이 치밀해서 악기, 조각, 건축에 주로 쓰인다.
언뜻 단풍나무가 아닌듯한데도 화려한 붉은색을 뽐내는 수종이 있다. 복장나무와 복자기(나도박달)가 그렇다. 이들은 모두 단풍나무과인데 하나의 잎에서 열편이 갈라지는 단풍나무 잎과 달리 세개의 겹잎을 가졌다. 복장나무는 잔톱니가 잎 전체에 있는데 복자기는 굵은 톱니 몇개가 잎에 드문드문 있다.
복자기는 수피가 너덜너덜 벗겨지는데, 그 모습이 박달나무 비슷해서 나도박달이란 이명이 갖게 되었다. 고궁이나 공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나무이며 재질이 단단하고 묵직하여 고급가구에 쓰인다.
복장나무는 고산지대에 자생하지만 공원에도 식재하며 단단하고 무늬가 아름다워 가구와 선박에 많이 쓰인다.
단풍나무과 열매는 부메랑을 닮아서 떨어지면 프로펠라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멀리 퍼져 나간다. 보다 정확히는 단풍나무 열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발명품이 프로펠라라고 한다.
이 밖에 고로쇠(단풍나무과)의 단풍도 아름다운데 특징은 잎 갈라짐이 오리발처럼 어중간하다. 캐나다단풍나무의 수액을 채취하여 메이플시럽을 만들 듯이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여 음용하기도 하는데 뼈에 이로운 나무라는 골리수(骨利樹)가 변한 이름이다.
산에 가면 자주 만나는 새붉은 단풍의 상당수는 붉나무(옻나무과)다. 붉다는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니 짐작할 만한데 옻나무과이지만 옻이 오르지 않는 순한 녀석이다. 가지에 날개가 있어 쉽게 구별되며 벌레집은 오배자라 하는데 술을 담그기도 하고 염료로 사용하기도 하며 폐와 장에 좋고 해독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가로변에 많이 심는 화살나무(노박덩굴과) 또한 화려하게 붉어지는데 특징은 줄기에 있는 코르크 같은 날개가 마치 화살깃 처럼 보이므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화살나무의 새순은 홑나물 또는 혼닢이라 부르는데 고급 나물이다.
이상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단풍의 주역들을 살펴 보았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눈에 가득 단풍을 담아 보심이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