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8-[푸른아시아가 만난 사람] 홍훈기 Tex4u inc. 대표

푸른아시아 회원님의 특징은 한번 맺은 인연이 오래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푸른아시아를 돕는 회원님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푸른아시아가 찾아나서기로 했습니다. 무작위 순입니다. 이 글을 읽는 회원님들께서도 ‘내가 아는 푸른아시아 지킴이’들을 추천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회원님의 정성에 감사드리는 장을 마련해서 참 기쁘고 뿌듯합니다. 함께 이 즐거움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2004년, 2005년 무렵이었죠. 예전부터 사진촬영이 취미여서 사진을 더러 찍고 블로그란 걸 만들어 사진을 올리기도 했죠. 그러다가 네이버에 사진을 올리기도 했는데 ‘금주의 사진’ 상도 타고 취미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보현이란 분이 댓글을 다는데 글이 정감이 넘치고 참 따뜻한 거예요. 누굴까 궁금했죠. 생면부지의 사람인데… 그래서 그 분의 블로그를 찾아가보니 NGO 활동가였어요. 느낌이 참 올곧고 따뜻한 분이었어요. 그래서 한번 만나자고 했죠.”

홍훈기 대표의 푸른아시아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보현’이란 사람은 지금의 푸른아시아 오기출 사무총장이었다. 

정감 넘치는 댓글에 이끌려 첫 만남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마음이 찰떡궁합처럼 맞았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오 사무총장은 자신이 하는 일을 소개하는데 황사니, 사막화니, 기후변화니 하는 일들을 설명했다. 그 당시만 해도 황사니, 사막화니, 기후변화니 이런 말들을 하면 정말이지 먼 나라 이야기고 남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홍 대표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관심있게 들어주었다. 홍 대표는 개인적으로 황사를 제일 싫어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황사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있었고 관심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안 대대로 호흡기질환을 갖고 있었던 탓이었다.

“안 그래도 황사가 싫은데다 어떻게 막아야 하나 하던 차에 보현이 사막화방지 일을 한다고 하자 아무런 고민없이 돕겠다고 나섰죠. 일단 저 혼자 일하고 있으니 저부터 10만원 후원을 하고 나중에 직원을 뽑으면 한 사람당 10만원씩 기부하겠다고 했죠.”

그렇게 시작한 것이 어연 10년이 넘는다. 직원이 많았을 땐 4명이었으므로 40만원을 냈는데 현재는 한 명이 줄어 3명이지만 후원금을 줄이지 않고 계속 40만원씩 후원하고 있다.

직원이 3명, 4명 하는 걸 보니 큰 기업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전공(경제학)과 달리 섬유업계에 취업했어요. 나염, 스카프, 넥타이 등을 만드는 직장이었는데 2001년 그만 두고 동료와 창업을 했죠. ‘텍스어스’. 동료가 정한 회사 이름의 뜻은 ‘모든 오더를 다 우리에게 다오’란다. 첫 오더를 받고 좋아했는데 미국에서 9.11테러가 발생했습니다. 모든 주문이 끊어지고 결국 망했죠.”


창업 앞서 주변지인들에게 “정직한 회사”
 손편지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유상종한다고 했던가. 홍 대표도 이야기를 듣다보니 오 사무총장과 체질(?)이 비슷한 것 같았다.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회사를 접기 전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무 비전 없이 사업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걸 하면서 인류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있는가’ 자문을 하는데 대답할 게 없다는 걸 깨달았죠. 아무런 개념 없이 시작한 게 잘못이구나 하는 걸 깨닫고 새로 회사를 창립할 땐 이념과 개념을 세우자.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딸 아이의 교육보험을 해약하니 380만원 쥐게 되었다. 2004년 8월 홀로 창업한 홍 대표는 회사 이름을 ‘텍스포유상사(tex4u inc.)’라고 정했다. ‘당신을 위한 원단회사’라는 뜻이란다. 그리고 창업이념도 만들었다. 이를 주변 지인들에게 요즘은 흔치 않은 손편지를 써서 보냈다. 공개약속을 한 셈이다.

첫째 정직한 회사를 만들겠습니다.

둘째 섬기고 나누는 회사를 만들겠습니다.

셋째 복의 근원이 되는 회사를 만들겠습니다.

내가 먼저 바른 뜻을 세우고 좋은 일을 하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겨났다.

“우스개소리 같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그 당시는 누군가 나를 도와줄 것 같았고 자신감이 충만했습니다. 저희는 100% 수출만 하는 회사입니다. 외국 바이어가 주 고객이죠. 실제로 바이어가 찾아와서 주문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의 사무실엔 외국인 사진이 서너개 걸려있다. 누군가 궁금했다. 물어보니 뉴욕과 시드니의 에이전트(바이어), 한쪽엔 이들을 소개시켜 준 프랑스 친구였다. 주 고객이지만 귀한 친구 소개하듯 하는데서 그와 에이전트의 신뢰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


“푸른아시아 덕분에 바이어 요구조건 충족”
아무리 탄탄한 회사도 어려울 때가 있는 법이다. 그는 그래도 중단하지 않고 기부를 계속해 왔다. 그런 홍 대표가 올해 초 아주 보람되고 뿌듯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올해 4월 쯤이었어요. 뉴욕의 큰 바이어에게서 거래 제안이 왔죠. 평소 너무나 거래를 하고 싶은 바이어여서 꼭 성공시키고 싶었죠. 그런데 이 분 제안이 상상밖이었요. 당신네 회사가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회사라는 것과 환경인증기업임을 증명해 달라는 것이었죠. 그 외 다른 조건도 많았지만 다른 건 업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난감했습니다. 그때 푸른아시아가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오 사무총장에게 도움을 요청, 관련 서류를 만들어 제출했는데 뉴욕 바이어가 ‘오케이’ 했죠. 유엔기후변화협약, 유엔사막화방지협약의 공인 NGO인 푸른아시아에서 만들어준 서류가 신뢰를 준 것이죠. 정말 기분좋았습니다.”

홍 대표는 주변 지인들에게도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대부분 ‘먼 나라 이야기’로 받아들여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먹고 사는 게 더 팍팍해서 그런가 싶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 홍 대표도 본인의 사업을 걱정해야 할 판이지만 그 와중에도 푸른아시아가 힘들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환경문제라는 게 그렇잖아요. 결과가 더디게 나오니 빨리 뭘 보여줄 수도 없고…”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애정이 묻어나는 말을 듣다보면 그는 단순한 기부자가 아니라 진정한 환경지킴이인 것을 알게 된다.

기부자를 만나러 갔다가 환경지킴이를 보고 돌아오는 합정동의 가을하늘은 그의 바람대로 맑고 높았다.


이동형 푸른아시아 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