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몽골] J에게 – 이호준 단원

오랜만에 너에게 글을 쓴다. 바쁘게 살다가 한숨 돌리고 나서 네 목소리를 들으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는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벌써 6월이다. 너도 잘 알겠지만, 누렇게 펼쳐져 있던 곳이 금방 또 푸르게 변했다. 알고 있는데도, 다시 이렇게 보면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너도 나도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는데도, 막상 돈 벌어 먹고 사는 곳은 서울이 아니라 이상하리만큼 웃기다. 너나 나나 사람들 속에 치여서 사는 건 스타일이 아닌가 보다.

부모님은 잘 계시지? 타지에 떨어져서 일하는 너를 많이 걱정하실 것 같다. 너도 기억나는지 모르겠지만, 중학교 2학년 때였나. 내가 하드디스크 카피해준다고 그거 뜯어서 가져갔다가 고장을 낸 것 말이야. 그거 너 산지 얼마 되지도 않았었는데, 너보단 네 부모님께서 많이 속상해 하셨지. 그 때 정말 죄송했어. 왜 그렇게 그때는 컴퓨터를 가만 안두고 그렇게 괴롭혔는지 몰라.

맞다. 그리고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얘기하다가 서로 같아서 한참 웃었잖아. 그런데 더 웃기는 건 몇 달도 채 안되어 자장면 면발을 호로록 호로록 먹으면서 왜 우리는 그 여자애를 좋아했지 라고 또 웃었지.

쓸데없이 추억타령 했다. 최근에 인터넷이 되지 않아서 책을 읽고 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 좀 신기하지? 여기 몇 년 있으면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 같아. 제목이 사무실의 멍청이들인데, 그냥 예전 회사 다녔던 때가 생각나서 웃기더라고, 윽박지르는 상사, 자기 일 떠넘기는 동료, 멍 때리는 후임 이야기 등이 적혀있어. 너도 시간나면 사서 읽어봐.

이제 이 곳의 사업은 중반을 넘어섰어. 생각보다 일이 잘 안되어 힘이 든다. 하지만 내가 언제 또 이런 일을 해보겠어. 아무것도 없는 이 곳에서 무엇인가 만들고 있잖아. 잘해봐야지. 7월이 지나면 이제 여기는 겨울 준비를 해야 해.

작년 말에 이제 계란 한판이네 이러면서 서른 즈음에를 주구장창 들었던 게 생각난다. 누가 그러더라 나보고 암모나이트라고. 작년까지만 해도 조상님이었는데 더 퇴화되었어. 서른 살이 대단한 건 줄 알았는데, 별 게 없어서 요즘 말로 웃프다.

초등학교 때 10년 후 미래 20년 후 미래 이런 거 적었었잖아. 그 때 뭐라고 적었냐 너는? 나는 아마 명문 대학을 들어가 좋은 기업에 취직해서 잘 산다 이렇게 썼을 거야. 그런데 지금 나에게 명문 대학은 지하철 역 이름일 뿐이고, 일류 기업은 TV 광고에서나 보는 거지. 아무튼 나는 별 일없이 살아서 좋다. 그러니 너도 별일 없이 잘 살아라.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네. 쓸 것도 없어. 내년에는 꼭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오뎅탕에 소주 한 잔 진하게 걸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