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몽골] 파란하늘, 파란하늘 꿈이 – 이누리 단원
드리운 푸른 언덕에
몽골에 오기 전 내가 생각했던 몽골의 모습은 맑은 하늘과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이 한데 어우러진, 마치 윈도우 XP의 그 유명한 사진과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역에 파견되고 보니 온통 갈색 투성이에, 황사가 시시각각 몰아치는 풍경이었다. ‘뭐, 겨울이라 그렇겠지’하다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생각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땅이 푸르러지기는 했다. 하지만 땅이 푸르러진 것은 풀들이 높게 자라서가 아니라 하르간에 잎이 피었기 때문이다.
몽골 초원은 하르간에 잎이 피어 푸르게 보인다.
하르간은 다신칠링 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식물이다. 아니 찾아볼 필요도 없이 그냥 눈이 닿는 곳마다 온통 하르간 천지이다. 하르간은 우리말로 졸곰담초라고 하는데 한의학에서는 뿌리를 약재로 사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몽골에서는 하르간은 그냥 처리하기 골치 아픈 사막화 지표식물일 뿐이다. 하르간은 건조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력이 아주 강한 식물이다. 왜냐하면 하르간의 뿌리는 지하 5m까지 파고 내려가 땅의 수분을 흡수하는 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 말은 물이 풍족한 곳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한다. 따라서 하르간이 없던 곳에서 하르간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 땅이 점차 건조해지고 있다는 것이며, 즉 사막화 지역이라는 뜻이다. 또한 하르간은 깊게 파고내려가는 뿌리로 몽골의 강한 바람 속에서 지표면의 흙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하르간은 사막화를 방지하는 최후의 보루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림사업자의 입장에서 하르간은 없애야할 것이다. 땅의 수분을 너무 잘 흡수한 나머지 다른 나무들의 생장에 피해를 주기도 하고, 구덩이를 팔 때마다 걸리적거리는 하르간의 뿌리는 스트레스 그 자체이다. 또한 차량의 통행을 방해하기도 하고 가시가 많아 돌아다닐 때마다 신발 안으로 들어오는 하르간의 가시는 너무 따갑다. 그렇다고 제거할 수도 없는 것이 그 깊게 파고 내려가는 뿌리로 인해 제거하기도 쉽지 않고, 불에는 내성이 있으며, 가축들은 가시 때문에 잘 먹지도 않는다. 제거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이야기가 조금 샜지만, 아무튼 지금 몽골 초원이 푸르게 보이는 까닭은 가축들이 먹을 수 있는 풍부한 영양소가 함유된 풀들이 많이 자라서가 아니라, 사막화 지표식물인 하르간에 잎이 났기 때문이다. 하르간이 얼마나 많으면 잎이 피었다고 온 땅이 푸르러질까? 그만큼 하르간이 이 땅에 많이 있다는 것이다. 즉 몽골은 지금 사막화가 매우 심각한 나라이며, 오늘의 몽골의 푸른 초원은 착시현상이다.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고 쫓으면 말라죽는 것처럼, 겉으로 보기에만 푸른 몽골의 초원을 보고 방심했다간 몽골이 사막으로 변하는 것은 한순간일지도 모른다.
아기염소 여럿이 풀을 뜯고
조림사업장에 있으면 오가는 소떼, 염소떼, 양떼, 말떼를 수시로 만난다. 가끔은 염소와 양이 섞인 무리를 만나기도 한다. 주인이 근처에 있을 때도 있고, 동물들만 무리지어 돌아다닐 때도 있다. 이 땅 다신칠링에만 20만여 마리의 가축들이 살고 있다. 낙타도 200마리 있다는데 다행히 아직까진 만난 적이 없다. 몽골의 가축들은 머리나 등이라도 쓰다듬으려 가까이 다가서면 도망치기 바쁘다. 나보다 훨씬 큰 소나 말들이 나를 피해 도망칠 때면 우습기도 하다. 때문에 얼마 전까지 가축을 쓰다듬은 경험은 주민직원들의 귀중한 양식이 되기 위해 울타리에 묶여있던 양과, 바양노르 경비원 게르 근처에 묶여있던 양을 쓰다듬은 경험이 다였다.
그러던 얼마 전,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우물집 그늘에서 쉬고 있는 한 무리의 양과 염소들을 만났다. ‘어느 정도 다가가면 도망치겠지’하면서도 내심 도망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무심한척 가까이 다가섰는데도 앉은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대담한 놈들이었다. 오히려 가까이 다가서는 나를 빤히 바라보기까지 했다. 그렇게 1m의 거리에서 나는 더 다가서면 양과 염소들이 우르르 일어나 도망칠까봐 움직이지 못했고, 양과 염소들은 그런 내가 혹시라도 더 다가올까 봐 경계하며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찰나였다.
검은빛의 아기염소 한 마리가 조금씩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손을 뻗으면 놀랄까봐 천천히 손을 내밀자 잠깐 움찔 하면서도 한 발짝, 한 발짝 내게 다가왔다. 그리곤 내민 손을 핥기 시작했다. 이어 내 옷을 핥아대더니 내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조끼에 달려있는 메달을 물며 빤히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엄청 귀여웠다. 그래서 머리며, 작게 난 뿔 주위며, 턱 밑이며, 배 등등 여기저기 쓰다듬으며 염소 털의 까슬까슬하면서도 복슬복슬한 감촉을 만끽하며 시간을 보냈다.
메달을 문 아기염소. 엄청 귀엽다.
몽골에 오기 전, 몽골의 유목민들이 키우는 가축의 대다수는 말일 것이라 생각했다. 궁기병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제국을 세웠던 만큼, 유목민에게 말은 친구이자 이동수단이고, 식량이자 옷감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유목민들은 말 뿐만 아니라 양, 염소, 소, 낙타도 키웠다. 심지어 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양이고, 그 다음이 염소였다. 특별히 내다 팔 것이 없는 유목민들에게 양털과 캐시미어는 돈이 된다. 때문에 유목민들이 양과 염소를 많이 키우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말과 소와는 달리 양과 염소는 식물의 뿌리까지 싹싹 파먹는다는 데에 있다. 양과 염소가 식물의 뿌리까지 파먹으니 토양의 소실과 건조화가 일어나 사막화가 촉진되는 것이다.
또한 사막화로 가축들은 먹을 것이 없어지니 살이 찌지 못하고, 겨울의 대추위가 닥쳐오면 결국 버티지 못해 수백만, 어쩔 때는 수천만 단위의 가축들이 몰살당하고 있다. 그러면 유목민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다시 많은 수의 가축들을 교배시켜 새끼를 얻고, 다시 가축 한 마리당 먹을 풀의 양은 줄고… 몽골의 축산업은 악순환으로 들어선 것이다. 아담스미스가 개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공공의 이익 또한 증가한다고 했던가? 지금 몽골에선 개개인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공공의 이익은 오히려 감소하는 시장의 실패가 일어나는 것이다. 때문에 몽골의 지자체와 정부에선 효율적인 방목을 위한 제도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유목민들에게 규제가 필요해진다면, 그 삶의 양식을 유목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행정구역의 재편으로 인해 그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을 때부터, 혹은 시장경제의 영향으로 소유와 화폐가 그들의 삶에 중요하게 자리매김하면서부터, 그것도 아니면 그들이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들의 삶은 유목이라 부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그것이 비효율적인 행정구역이든, 자본주의의 영향이든, 사막화의 영향이든, 더 이상 몽골은 유목에 적합한 땅이 아닐지도 모른다.
빗방울이 뚝뚝뚝뚝 떨어지는 날에는
동요 ‘아기염소’에서 비는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위기로 전환시키는 소재로 활용된다. 어린 시절 이 노래의 ‘빗방울이 뚝뚝뚝뚝’ 하는 부분에서는 어두움과 소란스러움, 천둥번개가 몰아치는 장면이 연상되곤 했다. 아기염소들이 엄마와 아빠를 찾는 심정이 이해가 됐으며, 따라서 비는 나쁜 것,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뒷부분의 ‘해가 반짝’하는 부분에서 안도와 평화, 다시 즐거움이 연상되었고, 해는 좋은 것, 따뜻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몽골에선 반대이다. 빗방울이 뚝뚝뚝뚝 떨어지는 날은 기쁘고, 나무들이 건조한 몽골 땅에서 잘 버틸 수 있는 생명의 근원이며, 반가운 손님이다. 게다가 날도 시원하게 해주니 비가 많이 오면 관수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되니 좋고, 조금 오면 시원한 환경에서 작업하니 좋은, 비는 많이 오든 적게 오든 좋은 것이다. 심지어 몽골에서는 비가 오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뜻이라고 한다. 반면 해가 반짝하면 더워 죽겠다. 좀 구름에 가려주었으면 좋겠고, 해 뜨는 시간이 짧아졌으면 좋겠다. 몽골에서 해는 생명의 근원이 아니라 소중한 물을 마르게 하고 나무들을 모조리 말라죽게 만드는 지옥불 같은 느낌이다. 따스한 온기보다는 뜨거운 불덩이의 느낌이랄까?
올해 몽골은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겨울에는 눈이 하도 안와 겨울철 하얗다던 몽골의 초원은 흙빛이었고, 봄철에는 비가 시도 때도 없이 와 작업 중단일 잦을 수 있으니 이를 대비한 상황극도 벌였건만, 비로인한 작업 중단은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안 그래도 말라가는 몽골의 강과 호수는 올해 더 심각하게 메마를 것이고, 지하수 표면 또한 낮아질 테니 지금 있는 우물들도 언제까지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제 몽골은 기온이 높아져가는 것뿐만 아니라 강수량 감소에 대한 걱정도 해야 하는 것이다.
올해 한국 또한 비슷한 상황이라고 한다. 지금 한국은 대가뭄이 와 저수지가 메말라 농사가 잘 안되고, 식료품의 가격은 급격히 상승하며 가계의 엥겔지수 또한 동반상승하는 상황이다. 지금이야 워낙 메르스 뉴스가 커 가뭄이 대서특필되고 있지는 않지만, 몇 년 전 배추파동 비스무리하게,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렇듯, 가뭄이 들이닥친 한국이 그러할진대, 몇 년째 사막화가 진행 중인 몽골의 상황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비가 안온다고 걱정이 돼서 글을 쓰고 있는데 비가 막 온다. 덕분에 오늘은 작업 중단이다. 봄철이 아니라 여름에 비가 오다 말다 그러니 이상하지만 비가 와서 다행이다. 비록 주말에 대체근무가 있을지라도…(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