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몽골] 5월의 단상들 – 돈드고비 이보람 단원
1. 나무를 심었다. 올해 돈드고비에 식재 계획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1300주 정도 보식을 하게 됐다. 보식을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당연히 구덩이 파기다. 돈드고비는 땅이 엄청 거칠다. 다른 지역은 한 구덩이에 한 명씩 삽으로만 판다는데, 여기는 2인 1조로 짝(남녀)을 이뤄 럼이라는 불리는 엄청 무거운 쇠꼬챙이로 땅을 깬(?) 다음 삽으로 흙을 퍼낸다.(삽은 거들 뿐)
보식 구덩이는 이미 한 번 팠던 구덩이를 다시 파는 것이기에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이 작업 역시 2인 1조로 진행됐고, 럼이 필요했다.(삽은 또 거들 뿐) 구덩이 작업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거친 땅에 처음 나무를 심었을까 싶었다. 그리고 새삼 거친 이 땅에서 뿌리내려 잘 자라나고 있는 우리 조림지 나무들이 기특해 보였다.
구덩이 작업을 다 끝내고 드디어 나무를 심었다. 작은 묘목이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뿌리내릴 준비를 마쳤다. 갑자기 기분이 울컥했다. 그 때의 울컥한 이유를 글로 표현해내기가 어렵다. 춥고 건조하고 거친 땅에 생명의 기운이 더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울컥했던 것 같다. 이 작은 묘목이 깊게 뿌리내려 거친 사막의 땅에 꼭 숲이 생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를 울컥하게 만든 버드나무
2.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TV프로그램에서 어떤 연예인이 했던 말인데, 요즘 내가 종종 중얼거리는 말이기도 하다. 몽골에 오기 전까지 나는 별로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다. 불행할 이유는 없었지만, 행복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행복하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도 내가 행복을 느끼는 이유가 됐다.
타국에 나와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도, 친구들도 건강하다. 밥도 잘 먹고 군것질도 많이 하고 있다.(새우깡이 엄청 먹고 싶긴 하지만, 행복을 방해하진 않는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개들이 조림지 근처에 엄청나게 많이 살고 있지만, 직원 분께서 출퇴근을 함께 해주신다. 세영이 언니와 매일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즐겁게 웃고 있다. 맑고 넓은 하늘 아래, 계절이 변하고 생명이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들을 매일 실컷 볼 수 있다. 그리고 등등. 행복할 이유가 아주 많다.
갑자기 왜 이렇게 행복해졌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치열하고 답답한 생활에서 잠시 떠나와서,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긴 것 같다. 지금의 이 행복이 몽골이 내게 준 선물이라 생각하며 귀한 시간 잘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