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몽골] 뭔가가 시작되고 뭔가가 끝나는 날, 차강사르 – 에르덴 김서현 단원
-사진: 집에 장식해둔 차강사르(Feat.나기간사님,하롤아하)-
머리가 컸다-는 것을 정의하려면 여러 수식들이 붙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단편적으로만 보아왔던 접점이 없는 양 극단의 것들이 실상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러각도로 인지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해단식 중 내가 받은 나기간사님 편지에는 말장난과 같은 말이 들어있었다.
[뭔가가 시작되고 뭔가가 끝난다.
시작은 대체로 알겠는데 끝은 대체로 모른다.
끝났구나, 했는데 또 시작되기도 하고
끝이 아니구나, 했는데 그게 끝일 수도 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 그게 정말 끝이었구나 알게 될 때도 있다.]
차강사르는 몽골의 설날이다. 명절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심적 풍요가 넘치는 날이다. 몽골에선 이 날에 서로의 집을 방문하며 방문객에게는 그 풍요로움을 증명하듯 많은 것들을 가득가득 안겨준다. 이번 차강사르엔 나기간사님 고향_하르호른에 가서 대접을 받았다. 끝없는 보쯔와 반시, 샐러드, 아롤, 보드카의 순환으로 위를 한껏 늘리고 돌아왔다. 돌아오니 차강사르는 지나있고 나는 주민직원들 집에 방문 못한 채였다.
안 가자니 나는 너무 정이 없고, 가자니 차강사르는 지나있고 하여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 전기가 끊겼다. 앙카팀장님이랑 하롤아하가 너네 집 춥다며 우리집에서 차 마시자고 데리러 오셨다. 그것도 감동인데, 차강사르와 다를 것 없이 대해주셨다. 코담배 나누고, 보쯔 쪄주시고, 맥주 나눠마시고. 심지어 내가 오늘 에르덴 왔는데 UB가기 싫다고 하니, 앙카팀장님이 다른게르에서 잘테니 차가나, 게렐레, 그리고 올라나 아줌마랑 자라며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내일은 우리집에 와서 보쯔 먹으라며 하롤아하가 덧붙였다. 전기가 나가서 추웠지만 마음이 뜨끈뜨끈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짧고도 길었다. 하늘 위 박혀있는 별자리들을 보며 내가 이 일년 헛살진 않았구나 싶었고, 서로 술 마시며 앞으로 4-5년간 계속 이 번호 쓸테니 한국가면 연락해야한다는 팀장님과 하롤아저씨의 말을 곱씹으며 진짜 이제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강사르 선물이라 받은 것은 남성용 향수였지만-아마 모르지 싶었다.- 뒤가 지저분한 이 향에 그냥 코를 훌쩍였다. 그리고 추워서 어서 집으로 들어갔다.
비록 내 단원생활 일년은 끝나가지만, 나에게 남은 인연이라는 것은 아직 끝이 아니더라. 나모나라는 이름도 올 해 우찡, 할리오나, 타미라 처럼 과거를 추억하는 이름으로 불리겠지만, 추억의 대상이 되는 게 마냥 쓰리기만 한 것도 아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 정말 그게 끝이었구나 하겠지만, 어쨋건 무언가는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