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몽골] 봄이 자나 나는 패딩점퍼 입고 있자나 – 이호준 단원

봄, 봄, 봄, 화창한 봄날을 늘 기다려왔지만, 봄은 내게 눈길 하나 주지 않는다. 아니 나도 모르게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 같다. 쌩쌩 부는 바람에 패딩점퍼를 입고 출근하고, 한창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여름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듯 햇살이 따갑다. 퇴근길은 때론 너무 길어 그 옛날 패닉의 달팽이라는 노래가 절로 떠오른다. 

일은 어느새 적응이 되었다. 나무에 열심히 물을 주기도 하고, 또 저수조의 비닐을 새로 교체하는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나무에 물을 주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양동이에 물을 가득 채워 이 나무 저 나무 주다가 보면, 내가 어느 나무에 줬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어 줬는데 또 줄 때도 있고, 나무 하나 건너 띄고 다른 나무에 물을 주기도 한다. 저수조의 비닐을 교체하는 일도 나무에 물주는 것만큼 만만찮다. 특히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내가 비닐을 부여잡고 날아갈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작년 비닐을 걷어내면, 이끼 같은 것들도 있고, 벌레들도 있고, 번지수 잘못 잡고 우왕좌왕 하는 도마뱀 같은 것도 있다. 바람을 이겨내고 새 비닐로 교체를 해서 물을 받으면, 그 속에 풍덩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실제로 주민팀장님께 물어봤는데, 들어가도 된다고 했다. 더 더워지면 들어가 봐야지~

    

주민들과의 의사소통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 급하거나 큰 문제는 지부의 도움을 반드시 요청하지만, 소소한 일들은 이제 도움 없이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따라가기 바빴다면, 이제는 정말 함께 일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작정 기대기만 했던 내가, 이제는 이것저것 의견을 내보고, 주민들과 부딪히기도 하며, 서로 신뢰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혹시 푸른아시아의 단원을 생각하고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다. 두 달도 채 안되어 주민들과 웃고, 이야기하고, 일하는 자신을 만나게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달에는 도서관을 방문했다. 큰 도서관은 아니지만, 한국인의 방문에 직원들이 조금은 놀란 것 같았다. 나에게 한 첫 질문은 바로 ‘무슨 책을 읽으려고 왔어?’였다. 그래서 3-4세가 읽는 책을 달라고 했다. 글자보다는 그림이 많고, 색칠공부도 있었다. 팀장님은 이런 나를 보고 계속 웃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읽었다. 그리고 한-몽 사전을 빌려서, 팀장님과 이야기를 조금은 길게 나눌 수 있었다. 사전이 참 중요하다. 그래서 지난주에 울란바토르에 가서 사전을 구입했다. 그간 궁금했던 단어들을 찾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팀장님께서 나에게 한국이 그립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직은 그것을 생각할 단계가 아닌 것 같아 그렇지 않다고 말씀을 드렸다. 한국에서 내려놓은 모든 것들을 이 곳에 와서까지 들고 오고 싶진 않았다. 내가 열심히 이 곳 생활을 하고 내년이 되면 조금은 생각해 볼 것 같다. 군대에서 세뇌(?)된 것 중에 하나가 2년간은 부대가 우리 집이라고 생각해라였다. 이제 돈드고비라고 불리는 이 곳이 바로 우리 집이다. 비록 20여 년간 살던 곳과 많이 다르지만, 이 곳에서 나는 우리 집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