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1-[Main Story] 에너지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제진수, 푸른아시아 기획처장

에너지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최근 에너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란과 갈등이 진행 중이다. (이 글에서는 에너지 중 전기에너지 혹은 전력에 초점을 맞춘다.) 너무 빨리 찾아온 찜통더위가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현재의 상황은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문제가 실체를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전기란 적당한 비용을 지불하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 그 때문에 전기가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지건 또 그로 인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나아가 이런 전기 생산과 소비의 체계가 지속될지 말지 알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한계에 이른 것 같다. 전력문제와 관련하여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을 꼽아보자. 전기요금 폭탄, 전력수급 비상, 제한송전, 블랙아웃, 원전비리 압수수색, 원자력마피아, 밀양송전탑사태, 756kv, 전력시장 민영화 등이다.

“원자력발전소, 핵폐기장이 꼭 필요하다면 서울 한강 옆에다 지어라. 그리고 정말로 안전하다면 정부청사나 국회의사당 옆에다 지어라”

원자력발전소나 핵폐기장 주변에 사는 국민들의 발언이다. 더 이상 푸념이 아닌 속내이다. 최근 검찰 수사로 거대한 원전비리의 속살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과 당혹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 때문인지 나는 가끔 두려운 상상을 한다. “이 좁은 국토에서 사고가 나면 나는 무얼 먼저 챙겨야하나, 유언장을 준비해야 하나?” 한편에서는 전력대란이라는 단어가 수시로 입에 오르내리고, 또 한편에서는 고압송전탑 설치에 반대하기 위해 노인들이 생계를 내팽개치고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전력 공급 차질의 책임이 마치 그들에게 있는 듯 적반하장의 논리가 이어진다.

공공연한 비밀, 차별의 구조

이런 사태의 배경에는 오랫동안 이어져온 정부 전력정책의 경직성과 폐쇄성, 전문가집단의 비밀주의와 패거리의식 그리고 국민들의 무관심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이로 인해 전력문제의 관점에서 세 가지의 차별 구도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문제 속에 해법이 들어있다.

첫째, 전기 가격 차별이다. 정부는 기업들의 생산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가정용에 비해 낮은 가격(약 75%)에 공급해왔다. 기업(약 50%)들은 가정(약 13%)에 비해 훨씬 많은 전기를 사용하면서도 값싼 전기를 사용하다보니 굳이 전기사용량을 줄이거나 고효율 기자재 혹은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 전기를 많이 쓰는 설비를 도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왜 같은 전기를 사용하면서 가정용 소비자는 더 많은 돈을 물어야 하나?

둘째, 지역 차별이다. 지역적으로 보면 전기를 많이 쓰는 곳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수도권이 약 40%)이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소를 비롯한 대부분의 발전소는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동해안과 서해안에 자리 잡고 있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멀리 떨어진 소비지역까지 보내다보니 모든 산에 송전탑이 줄지어 서게 되었다. 이는 에너지효율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밀양 송전탑사태에서 보듯이 자연환경 훼손은 물론 거주민의 거주권, 재산권, 건강권 등을 침해해왔다. 지방에 사는 국민들은 2등 국민인가?

셋째, 저개발국 차별이다. 우리나라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이며, 배출증가율에서는 세계 3위이다. 즉 지구온난화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전력문제는 어쩔 수 없이 세계적 문제가 되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로 인해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그로 인한 피해는 주로 대응력이 매우 취약한 저개발국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국제환경위기의 공범자가 되었다. 우리가 누리는 편익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가?

이 문제들의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기존의 경제시스템과 관행 그리고 사고방식을 전면적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늘 국민들이여 안심하시라, 전기는 언제나 코드만 꼽으면 제공될 것이라고 자신해왔다. 누군가 문제를 제기해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거나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대응한다. 전력난으로 발전관련 대기업의 수익만 늘어나고, 원자력발전 또한 계속 늘어나며, 쥐꼬리만 한 자연에너지 보급 비율을 유지하는 현재의 행태는 대안과 거리가 멀다. 이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시대는 지속될 수 없다. 정부와 국민이 함께 과감한 혁신을 실천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창조’가 시대의 화두가 아닌가?

해결의 출발점은 에너지 절약(수요관리)과 가격체계의 재편이고, 방향과 종착점은 에너지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즉 이제 에너지문제도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통제)해야 한다. 원전 폐기를 국민투표로 결정한 스웨덴이나 스위스, 그리고 원전 폐기를 결정하고, 시민들이 스스로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에 더 높은 요금을 기꺼이 지불하는 독일은 좋은 본보기이다. 좋은 사례는 빨리 따라가자.

시급한 과제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낮게 책정된 전기 가격을 합리적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단, 관련 정보를 최대한 공개하고, 분명한 기준을 밝힌 다음 합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원자력발전과 석탄발전에 유리하게 짜놓은 에너지 세제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또한 원전의 경우 경제성의 면에서도 더 이상 대안이 아니다. 특히 안전성은 국민의 안전, 국가안보 나아가 세계 전체에 대한 위협 요인이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지배하고 그들의 곳간만을 채우는 전기마을과 원자력마을에서 하루빨리 떠나야 한다. 불합리한 전력산업의 체계와 불공평한 전기요금구조로 인해 국민들끼리 대립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원자력발전과 화력발전의 비중을 키우면서 자연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도전을 막는 일은 없어야 한다.

새로운 에너지패러다임을 위한 상상과 도전

지난 6월 16일 미국, 덜레스 공항에 특별한 비행기가 착륙했다. 그 이름은 ‘Solar Impulse’다. 오직 태양광발전만으로 미 대륙을 횡단한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이다. 2015년에는 세계일주 비행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원자력발전에 미래를 맡기려 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보면 정말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도 대안의 실현을 위한 도전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원전 한 기 줄이기 사업’이나 소수의 개인이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조금씩 확대되고 있는 자연에너지 설치 사업은 희망의 실마리다. 수소연료전지나 암모니아에너지 등 신기술도 속속 등판을 준비 중이다.

우리가 마주한 에너지위기를 넘어설 대안이 마땅히 없으니 현실에 만족하자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다음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진정한 위기는 자원의 위기가 아니라 상상력의 빈곤이다.” 콜롬비아의 황무지를 생태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도전했던 파울로 루가리의 말이다.

자유와 권리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더구나 이제는 우리의 행동으로 인한 국제적 영향까지 생각해야한다. 새로운 상상력과 도전이 더욱 간절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