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경이와 나 그리고 모두에게 보내는 편지 – 만달고비 사업장 이동광 간사

 

이동광,?만달고비 조림사업장 파견 간사

초등학교때, 5학년정도 되었으려나. 운동회날이었는데, 그날 내가 달리기를 아마 했을 것이다. 나 혼자 준비하고 또 뛰고 했던 걸 생각하니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계주나 그런 건 아마 아니었을 듯 싶다. 출발소리를 듣고 모래가 가득한 운동장을 뛰고 있다가 내가 넘어졌는데, 그때 천천히 일어나서 옷에 먼지도 털고 천천히 걸어갔었다. 엄마가 아들의 운동회를 보시겠다고 오셨는데, 그때 내 모습을 보시고 동광아, 그럼 안돼. 최선을 다해야지하셨던 기억이 난다. 스스로가 부끄러운 마음에 그 다음부터는 못하는 달리기를 해서 어쨋든 도착지점까지 왔었다. 그리고나서도 개운치않은 마음과 왠지 많은 학부모나 친구들이 나만 보는 것같은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들었다. 물론, 미안함은 온전히 내 어머니의 것이었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준비소리나 소리가 약간 두려웠다. 시작과 함께 달려야 한다거나 뒤쳐지는게 싫었다. 아마 속으로 넘어지면 어떻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것이다. 몸은 그렇게 마음을 따라서 넘어졌을 것이다. 일종의 핑계가 필요했기때문에, 그러니까 넘어졌으니까당연히 늦게 들어온다거나, ‘실수니까라면서 스스로 위안하거나 친구들에게 그래도 아쉬운 존재로 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 그때는 아마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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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르덴의 파견간사 인경이의 10월 에세이를 보았다. 그러다 문뜩 생각이 난 내 이야기이다. 물론, 내 이야기는 비겁함에 대한 것이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그리고 간혹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너무 빨리 달리거나, 앞서 달리려고만 한다, 막상 자신이 그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였거나 어떤 일의 성취를 하지 못하였을 경우 또는 남겨져있다거나 손에 장난감이 아닌 모래가 쥐어졌을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다. 모두 올라가는 법을 배우지만, 정작 내려오는 법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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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림작업의 열기에 취해 나는 두달을 쉬지 않았다. 취기만으로 설명할수는 없을 돌발상황속에서도 마치 홀린 듯, 힘들어도 아침에 일어났다. 춥거나 바람이 부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달고 복수간사와 둘이서 천천히 조림장으로 걸어가 어느날에는 구덩이를 또 다른 날에는 나무를 심고 물을 주던 그런 날이 있었다. 작업은 어느새 익숙해지고, 관수작업이라는 싸이클에 맞추어 하루가 단지 일주일속 월화수로 환치되면서 어쩐지 느긋해지기도 했다. 모든 조림사업이 완료되고, 겨울프로그램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그리고 또 계획이 진행되면서 혹은 진행되지 않음으로해서 나와 우리 간사 모두는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마, 우리 모두는 시간을 간결하게 쪼개 쓰는 법을 배웠지만, 더 많은 시간속에서 붕, 하고 떠 버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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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림작업이 완료된 시점과 이제 곧 시작될 겨울프로그램의 그 어딘가에서 나는 겨울프로그램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푸른아시아는 환경단체이면서 곧 국제개발에 참여하는 NGO이다. 조림사업이 환경의 한 부분이라면, 국제협력이라는 측면에서 겨울프로그램은 보다 장기적 관점과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남는 시간의 활용이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의 시간으로써 겨울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물론, 국제개발협력이라는 큰 주제를 단시간안에 짜임새있게 만들고 실행에 옮기기에는 상당한 노력과 또 도움이 필요했다. 서로 상반된 견해나 본부 및 지부에서의 도움이 요청된다. 물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일이지만 말이다.???????? 겨울프로그램에 대한 고민과 함께 자신을 다시 돌아볼 시간을 보냈다. 하루가 아침 그리고 조림장, 저녁 그리고 다시 아침으로 돌아오는 싸이클 대신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그리고 생각하고 활동할 수 있는 하루하루가 되면서, 그동안 소위 필드라고 하는 현장에서의 활동에 집중되었던 것을 책을 통해 다른 시각과 좀더 다른 접근법을 두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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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이 종종 나에게 말하기를 3’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단다. 이유라면 그때는 수능이라는 또 대학이라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기에 힘들어도 버티고, 또 생각해보니 그때가 훨씬 좋았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하지만, 언제고 인생에서 고3으로 머물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마, 내려오는 방법을 모른다는 건, 결국 자신이 확고한 목표나 목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초등학교 5학년때 그 달리기대회에서 누군가 나에게 이것은 그저 아이들이 모여서 달리기 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면, 난 편안하게 달렸을 것이다. 경쟁이라는 구조에 어린 아이들을 묻어놓고 1등이 아니면, 그 나머지는 철저하게 굴욕감을 느끼게 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더 즐겁게 살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종결에 와서는 인생은 언제고 자신 앞으로 끌어당겨와서 대면할 일이라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나의 판단이 너의 판단보다 우선에 있다는 사고를 오롯이 받아들이고 나서 관용은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힘들게 인정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마, 쭈꾸리가 되거나 자신의 외소함을 마음으로 생각할때에는 쓰임받지못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기독교적 소명보다 자신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의 원죄로서의 자아가 아닌 로서의 자신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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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물론 아무럽게 산다. 대신 잘사고 아름답게 살고싶은 생각이 있다. 비교는 불행을 낳는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말이 너무 거칠게 들릴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내가 불행하면 남에게 사랑이나 관심, 그리고 그 외의 모든것을 줄 수 없다. 몰리면 안된다. 모두, 아름답게 살자. 인경이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