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터전을 잡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고 – 바양노르 사업장 박상환 간사
“>
박상환, 바양노르 사업장 파견 간사
9월에서 10월로 넘어가는 바양노르의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때 이른 눈발에 신기해하면서 동시에 황당해하기도 하고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에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었다. 날이 풀리고 성난 바람이 온화해지면 어딘가로 떠났던 제비들이 돌아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바양노르의 현장 간사들과 주민들은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척박한 땅에 줄을 지어 구덩이를 파고 퇴비를 뿌리고 나무를 심고 흙을 다지고 물을 주었다. 이른 아침이면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하얀 서리가 서렸다. 동쪽 산 너머에서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에 서리가 반짝반짝 거렸다. 그 차갑고도 투명한,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보며 조림지로 나섰고 나날이 새로운 모습의 경이로운 노을을 선보이는 저녁하늘에 감탄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몸은 고되었으나 숙소로 돌아와 보내는 노곤한 시간이 아늑했다. 난로가 열기를 뿜어내면 게르 안은 따뜻했다. 장작 타는 냄새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9월부터 새로운 묘목 18,000여 그루를 11월 전 까지 조림지에 심는 일은 마치 전쟁과도 같았다. 11월이 되면 영하권 날씨가 이어지면서 땅이 얼기 때문에 땅을 파기도, 나무를 심기도, 물을 주기도 힘들어지기 때문에 그 전에 서둘러 정해진 목표를 완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 날의 날씨 상태를 알 수가 없었기에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에 모두 힘을 모아 열심히 일을 했다. 20여명의 삽을 든 사람들이 땀을 흘리고 지나간 자리에 깊숙한 구덩이가 단번에 생겼고 구덩이 마다 뜨거운 한낮의 햇살에 바싹 잘 마른 양똥을 퇴비 삼아 한 움큼 던져주고 묘목을 곧게 세운 다음, 다시 흙을 덮어 양발로 밟아 잘 다져주었다.
수년간 바양노르에서 푸른 아시아와 함께 일을 해왔던 주민들은 모든 일에 익숙했다. 뿌리를 상하게 하지 않고 나무를 굴취하는 일부터 흙으로 덮고 땅을 다지는 일까지–몸에 익은 그 익숙함이 참 좋았다.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자신들의 척박한 땅 위에 나무를 심는 일을 몸으로 익히고 자연스럽게 행할 줄 아는 당신들의 모습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갖춘 구덩이 위로 손가락 마디 굵기의 묘목들이 하나 둘씩 솟아올랐다. 원래 나고 자란 땅에서 뿌리 채 뽑혀서 새로운 낯선 땅에 다시금 뿌리를 박고 살아가야 하는 녀석들의 불안감을 상상해보았다. 그러나 점점 차가워지는 바람에 흔들리는 녀석들의 여린 가지에서는 그 어떤 불안감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저마다의 흐름에 맞춰 유유히 흔들릴 뿐이었다. 깊게 판 우물집에서 힘차게 끌어올린 물을 어린 나무들에게 처음으로 주었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큼지막한 호수에서 콸콸 나오는 물을 구덩이 하나하나에 듬뿍 듬뿍 담아 주었다. 여린 뿌리를 통해 물을 흠뻑 빨아들이고서 제 몸 구석구석으로 전달하는 나무의 거대한 힘이 느껴지는 듯 했다. 새빨갛고 뜨거운 피가 끊임없이 순환하는,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 새의 핏줄이 떠올랐다. 경이로웠다. 눈앞에 황량한 대지 위에 새로이 터전을 잡은 18,000 그루의 나무들의 펼쳐졌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다시 여름이 오고 또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면 이곳은 푸르른 숲이 될 터였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아름다운 소리를 낼 터였다. 새들이 둥지를 틀고, 수풀이 우거지고, 꽃이 필 터였다. 생명이 터전을 잡는 모습은, 그 과정은 언제나 아름답다.
예전에 TV에서 ‘올 여름 포도가 풍년!’ 이라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올해 유난히 포도가 달고 싱싱한 이유가 무엇인지 리포터가 묻자 새카맣게 그을린 피부의 농부 아저씨가 쑥스러움과 자부심이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이야기 했던 게 기억이 난다.
“네, 올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는데 그걸 견뎌내었기 때문에 더욱 달고 맛나게 된 것 같습니다” 라고. 한국과는 차원이 다른 가혹한 겨울을 맞이하면서 들판 위에서 추위와 바람과 눈발을 견뎌야 하는 여린 가지의 녀석들이 생각난다. 그것은 걱정이나 불안함 보다는 희망과 기대로 가득 차 있다.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은 녀석들이 얼마나 강하게 굳세게 자라날 것인지. 생각만해도 두근두근 거린다. 내년에도 녀석들과 함께 할 나 자신에게도 그 희망과 기대를 조금 걸어보았다. 몽골의 겨울을 잘 이겨낸 내 자신도 조금은 성장할 수 있기를. 더욱 강해지기를. 달고 싱싱한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