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2-[Special Story] 푸른아시아의 ‘그냥 회원’

전미영, (사)푸른아시아 회원

나는 푸른 아시아의 ‘그냥 회원’이다. 내가 이렇게 자칭하는 것은 특별할 것도 특별해질 요량도 아니고, 부족한 스스로를 일컫기에 가장 적당한 것 같아서다.

푸른아시아의 그냥 회원이 된 것은 2006년 말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환경재해에 처한 몽골의 실상을 담은 ‘몽골의 사막화 실태와 조림사업 동영상’을 보고 나서다.
이 동영상은 ‘자민우드’라는 사막화가 진행되는 마을의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모래더미가 마을을 가로지른 철도를 뒤덮고 그 모래를 주민들이 쓸어내는 모습, 집으로 날아드는 모래를 막기 위해 모래막이 담장을 설치하는 모습, 시내 중심의 모래를 치우느라 청소용 차량이 하루에 몇 번씩 다니는 모습은 상상도 못했던 광경이었다.
나는 사막은 사막, 사람이 사는 곳은 사람이 사는 곳, 이렇게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 사는 곳이 사막화가 진행되어 사막이 되고 → 또 그 사막에서 날아드는 황사가 → 또 다른 마을을 폐쇄시키고 → 급기야 새로운 사막을 만들어 버리는 몽골 마을의 모습은 외출 자제와 마스크 쓰기, 창문 닫기, 손씻기만 하면 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 길로 나는 푸른아시아의 일에 동참해야겠다는 마음이 불끈 일어 회원이 되었고, 사막화의 현장으로 떠나는 ‘바양노르 조림투어’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가본 몽골은 파란 하늘에 흰구름 두둥실 떠 있고, 저 푸른 초원의 그림 같은 ‘게르’가 하나, 둘… 멀리서 본 몽골의 아름다운 풍광은 멀리서만 유효했다. 바닥의 모래들은 언제고 바람이 일면 하늘 높이 날아갈 수 있게 아주 곱게 부서져 바짝 말라 있었다. 풀은 드문드문 나 있었고, 무엇을 찾다 죽어갔는지 동물의 마른 뼈가 이곳저곳에 보였다. 의기충천하여 조림투어에 참여한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조림지에서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몽골과학대 환경동아리 학생들과 지역주민, 그리고 바양노르 초등학교 학생들이 함께 참여였다. 하지만 몽골 사람들에게는 ‘나무를 심는다’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푸른아시아에서 조림하는 일을 그들이 이해하고 동참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왜 이곳까지 와서 나무를 심는지, 그것이 왜 필요한 일인지, 마을회관에 모여 나무심기의 필요성을 먼저 알려야 했다.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일’임을 알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나무심기 작업은 예술행위 같았다.

몽골에서의 첫 6일 동안, 힘은 들어도 뜻 깊고 의미 있는 시간들은 나 스스로에게 많은 자각과 격려가 되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 와서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살려내려는 마음에 감동한 몽골인들의 눈빛도 마음에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이 일이 얼마나 계속되어야 변화가 일어날지,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해 겨울, 푸른아시아의 연말 행사인 ‘후원의 밤’에 참여하였다. 10년 동안 ‘푸른아시아’라는 NGO를 가꾸고 지켜온 오기출 사무총장님의 인사말이 있었다. 10년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온 사람은 어떤 말을 할까, 기대를 하고 있었다.
” 10년이 되었습니다. 10년을 뒤돌아보니 죽을 둥 살 둥 지낸 것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참으로 짧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말이었다. ‘어찌 저리 폼 안 나게 말을 할까?’ 생각을 하고 말았는데, 그 말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주변에서 이해하는 사람이 적을 때 무엇인가를 해내는 사람이 견뎌야 하는 힘겨움이 전해졌다. 그런 ‘해봐야 표도 안 날 일에 왜 매달리느냐’는 식의 시선을 감내하며 힘겹게 버티고 이겨내야 하는 환경NGO의 고단함이 보였다.
나는 직접 보고, 또 어느 정도 지구환경재해의 심각성을 이해했으니 나라도 굳은 마음으로 ‘이 일이 꼭 필요하다’는 데 박수를 보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다음해 봄, 나는 조림투어에 또 참여하게 되었다. 몽골의 사막화 방지와 몽골인들의 자발적 빈곤퇴치를 위해 노력하는 푸른아시아에 힘을 실어주고 싶어서 말이다.

누구나 환경보호는 마땅히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필요성을 절감한다. 하지만 ‘지금부터’ ‘내가’ 꼭 하지 않아도 누군가 하겠거니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몽골의 식림활동에 드는 참가비를 그냥 기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고 말하는 분도 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돈 있는 나라에서 돈만 가져다준다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하고자 함이 생길까 싶다. 그저 돈 많이 주면 고맙겠다는 생각밖에 안 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관심 있는 행동과 실천이 계속된다면 현지 주민들의 인식이 바뀌고 훌륭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 다음해에도 나는 조림투어에 참여했다. 푸른아시아가 진정 옳은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이 오래도록 지속되어야 한다는 나의 신뢰를 전하고 싶었다.
올해도 나는 몽골로 날아간다. 몽골에서 자라고 있는 내가 심어놓은 나무들에게 인사도 하고, 경제적 자립에 고무되어 가는 몽골인들과 형제처럼 손잡아보고, 그리고 이 푸른 지구를 살려내는 일에 동참한 이들과 함께 우리가 우리의 집으로 돌아와 환경보호를 위해 무엇을 자제하고 무엇을 지키며 무엇에 힘쓰며 살아가야 할지 마음 다잡고 오기 위해서 말이다.


갈 때마다 새롭게 마음을 뭉쳤던 멋진 사람들, 나와 함께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고 물을 길어 날랐던 짝꿍들…. 대학생 엘백, 초등학생 샤겔, 이후출판사 편집장님, 이들과 함께 다 자란 바양노르 숲에서 잔치라도 벌이는 것이 ‘푸른아시아 그냥 회원’인 나의 야심만만한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