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덴에서 – 강진아 ] 푸른아시아 파견단원 생활을 마치며
1년 동안의 푸른아시아 파견단원 생활을 마치며
안개처럼 희뿌연 공기층이 자욱한 도시, 머리를 지끈하게 만드는 매연 냄새, 콧속의 빠삭거림. 그 낯선 향내와 마주하며 몽골에 왔었다.
낯선 곳에 있는 나는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신도 났었지. 푸른아시아 몽골 단원으로 파견되어 나무도 심고 몽골문화도 배울 생각에 그리고 지구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가슴 떨렸다.
함께 에르덴 사업장의 매니저를 맡은 김진희 간사님과 몇 날 며칠 동안 머리를 맞대고서, 드넓은 몽골 초원에 자리한 106ha의 꿈의 공간을 고민했다. 10년 간의 장기적인 조림계획을 구상하며 이곳이 훗날 어떻게 푸르게 변할지를 상상하고 그리는 작업은 어렵고도 즐거운 일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초원에 우리의 숙소, 게르, 나무, 꽃, 저수조, 비닐하우스, 문, 길, 화장실을 그려 넣었다. 힘든 일도 많지만 우리가 계획한 공간에서 꿈이 하나하나씩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저절로 입꼬리가 방긋 하고 올라갔다. 핫핑크 색으로 화장실을 색칠하겠다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몽골이라는 나라는 엄청나게 변수가 작용하는 곳이다. 게다가 ‘현장’이라는 곳의 특성은 더욱더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행복하고 화가 나고 속상하고 고마웠다.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다채로운 생활을 언제 또 경험할까 싶다.
주민교육을 통해 선발된 몽골 인부들과 함께 눈발이 휘날리는 날, 칼바람이 부는 날, 황사가 몰아치는 날, 비가 내리는 날, 모든 것을 녹일 듯한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날 할 것 없이 작업을 했다. 줄을 띄워 나무 심을 자리들을 그리고, 곡괭이와 삽으로 돌 같이 딱딱한 땅에 수많은 구덩이를 파고, 6톤의 물을 받을 수 있는 저수조를 파고, 나무를 심고, 관수를 하고, 감자를 포함한 야채를 심고, 삽목을 하고, 꽃을 심었다. 땅에서 주운 나뭇가지나 돌을 가지고 최대한 구덩이들이 나란하도록 그려 화가가 되었고, 무거운 곡괭이와 삽을 가지고 폭과 깊이가 60cm 이상이 되도록 예쁘게 구덩이를 파서 인간 포크레인이 되었고, 한 방울의 물도 소중하게 사용하려고 저수조 바닥을 비스듬히 파며 조각가가 되었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나무를 잘 심어서 엄마가 되었고, 농작물과 꽃을 심는 농부가 되었다. 에르덴 사업장 식구들 모두가 그렇게 만능 엔터테이너의 역할을 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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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이 많은 몽골에서 나무를 심는 일이란, 아직까지는 그다지 일반적이거나 상식적인 일로 치부되지 않는다. 소, 말, 양, 염소들이 풀을 뜯어 먹으며 돌아다녀야 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울타리가 있고 동물들이 탐내는 맛있는 어린 잎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가시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울타리를 용케 비집고 들어와 나무를 향해 돌진하는 염소와 양들을 쫓아내려 그 넓은 조림장을 뛰어다니곤 했다. 묘목이 자라고 있는 비닐하우스에 침투했다가 김진희 간사님의 발에 걷어 차였던 양인지 염소인지는 지금도 잘 살아있는지?
기운 빠지는 일들로 실망하기도 하지만 벌레가 먹은 나뭇잎을 보고 마음 아파하고, 쑥쑥 자라지 않는 나무를 보며 아쉬워하는 인부들을 보면 참 마음이 좋아진다. 구덩이가 아닌 저수조를 파내고 쌓아 놓은 흙더미에 가식(假植)을 했던 묘목에서 새 가지가 나고 새 잎이 나는 것을 본 인부들이 손을 머리 위로 들며 ‘ 이 나무가 이 만큼 자라면 여기서 기도를 하자(성황당처럼)!’라고 하며 모두들 즐겁게 웃은 적이 있다. 진심으로 에르덴 사업장의 조림장에 심은 모든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이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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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에르덴 사업장에는 온 세상이 하얀 것마냥 눈이 내렸다. 겨울 동안 내려서 쌓인 눈은 올 봄에 조금씩 녹아서 나무들에게 소중한 한 모금의 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푸른 숲이 될 것이다. 꿈은 이루어질 테니까.
또다시 겨울이 왔고 아침저녁으로 도시는 희뿌옇다. 우리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면 이곳에 선명한 하늘과 밝은 몽골인들의 미소가 찾아올 것이다. 이제는 낯설지 않은, 오히려 익숙한 향내를 뒤로 하고 나는 한국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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