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지구촌의 이웃들(1) – 수단 다르푸르의 환경난민

오 기 출(푸른아시아 사무총장)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이 1967년부터 남쪽의 사헬 지역으로 100km를 이동해 내려왔다. 당시 사하라 사막의 남진으로 사헬 지역에 발생한 대규모 가뭄은 인류가 수천 년의 역사를 기록한 이래 처음으로 발생한 사건이었다. 사헬 지역 사람들은 유목과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닥친 가뭄으로 초원과 농토가 초토화되면서 약 20여 만 명의 사람들이 아사(餓死)하고 수백만 마리의 가축이 굶어 죽었다.
그 이후 1979년에 또다시 사하라 사막이 남진을 하면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된다. 수천 년 만에 발생한 이 사건은 그저 자연이 만들어낸 재앙이었을까? 사헬 지역에 갑자기 가뭄이 닥친 원인을 살펴보면, 이곳을 초토화시킨 가뭄은 인도양의 기후가 바뀐 것과 관련이 있었다. 즉, 인간이 만든 기후변화가 인도양의 기후를 바꾸어 사하라 남쪽인 사헬 지역으로 가야 할 열대몬순을 사라지게 했기 때문이었다. 사헬 지역에 속한 소말리아, 수단, 브룬디, 니제르,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차드, 르완다 등의 나라들에 발생한 기후변화와 사막화현상, 가뭄현상은 결국 지구촌에 어두운 초상화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기후변화가 원인인 수단 다르푸르(Darfur)의 참상

사헬 지역에 발생한 기후변화와 사막화로 인한 참상은 이후 예상치 못한 극단적인 사건으로 나타났다. 바로 오늘날 아프카니스탄의 참혹한 폭력사태와 함께 국제사회에서 ‘대규모 폭력사태, 혹은 ‘인종청소’로 비난받고 있는 수단의 ‘다르푸르’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다르푸르는 수단의 서쪽 지역으로, 면적은 프랑스보다 조금 작고 인구는 20세기 초에 100만 명도 안 되었다. 그러나 내전이 발생한 당시에는 600~700만 명으로 추정될 정도로 인구가 급속히 늘었다. 다르푸르는 빈곤율이 최고 61~72퍼센트로, 수단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이곳에서 2003년 발생한 분쟁으로 20만 명의 사람이 죽고 22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수단 정부군과 그 지원을 받는 아랍계 잔자위드(Janjaweed) 민병대였고, 피해자는 다르푸르의 아프리카 흑인 토착민이었다. ‘아랍계 피를 아프리카에 퍼뜨린다’는 슬로건 아래 잔자위드 민병대는 다르푸르 토착민을 무참하게 성폭행하고 집단학살과 방화, 추방을 하면서 잔혹한 ‘인종청소’를 한 것이다. 결국 220만 명의 토착민들은 고향과 집을 등지고 600km를 걸어 이웃 나라로 갔고, 이들은 지금도 비참한 난민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그동안 이 가난한 변방의 지역에 무슨 일이 발생했던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지역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79년 사헬 지역에 발생한 가뭄은 이어서 1983년, 1984년에 수단 다르푸르에 대기근을 발생시켜 10만 명이 죽게 된다. 수단은 매년 7월부터 9월까지 우기(雨期)인데, 1980년대 이후 우기 동안의 강우량은 그전과 비교해서 40퍼센트나 줄어들었다고 한다[북(北)다르푸르에 있는 엘파셔 기상대의 관측 자료].
그런데 정상적으로 비가 내리고 식량이 자급되던 과거에는 우기 때 북쪽의 아랍 유목민들이 다르푸르의 목초지에 자유롭게 들어왔고,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기후변화와 사막화, 가뭄이 오래되자 다르푸르의 흑인 부족은 펜스를 치고 유목민들의 진입을 막았다. 여기서 다르푸르 분쟁의 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2006년 6월 16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다르푸르에서의 기후 범인(A Climate Culprit in Darfur)’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이 기고문에서 “다르푸르 분쟁은 생태적 위기에서 시작을 했고, 생태적 위기는 부분적으로 기후변화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UN평화유지군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UN의 노력이 성공하면 200여 만 명의 난민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 반기문 사무총장의 기고문은 격렬한 비판에 시달리게 된다. 그중 일부를 살펴보면, UN이 말잔치만 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UN평화유지군을 제대로 파견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임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하르툼 수단 정부는 ‘주권 침해’라는 이유를 내세워 UN평화유지군의 수단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평화유지군이 다르푸르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연 분쟁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었을까?라는 점이다.

다르푸르 난민은 전쟁난민이 아니라 환경난민이다

사실상 수단의 다르푸르 분쟁은 기후변화와 사막화로 인한 물부족, 생태 악화와 초지 소멸, 농경지 퇴화에서 발생했고, 지금도 200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이웃 나라와 국경을 떠돌고 있다. 이들은 분명히 환경난민이고 기후난민들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UN평화유지군을 보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현재 다르푸르는 급속한 사막화로 인해 물부족, 식량부족, 농업과 목축업의 낮은 생산성, 열악한 통치와 분쟁 해결 메커니즘의 붕괴, 생태와 경제 상황을 악화시키는 인구의 급증으로 극단적인 빈곤의 덫에 갇혀 있다.
그런데 다르푸르 난민들을 ‘전쟁으로 인한 난민’으로 정의하고 UN평화유지군을 파견한다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그보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이들을 기후난민, 환경난민으로 정의한다면 해결방안을 찾아나갈 수 있다. 정부와 잔자위드 민병대, 국민회복전선(NRF) 등 다르푸르 반군조직을 포함한 다르푸르 평화협정 당사자들이 장기적인 평화유지의 열쇠로 강조한 것은 ‘빈곤 해결을 위한 발전’이다. 즉, 위기의 원인에 따라 저수시설, 수자원 시설 복구, 빗물을 모으는 간단한 방법의 대량 보급, 개량종 곡물 보급, 유목용 초지 확보, 일기예보 등 조기가뭄 경보시스템 도입, 땔감과 식수 배급 등이 평화유지의 방책이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환경난민들

국제법에 따르면, ‘난민(難民)’이란 인종, 종교, 민족,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인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환경난민’이란 환경 악화로 생활의 기반을 잃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환경난민은 인종, 종교, 민족,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박해받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제사회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환경난민의 문제를 더욱 악순환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환경난민의 문제가 드러난 이후 30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환경난민이 국제사회에서 난민으로 공식화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기후변화를 일으킨 선진국들의 책임회피가 그 핵심으로 보인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반기문 사무총장이 다르푸르 분쟁의 원인을 생태 악화와 기후변화 문제라고 지적했을 때, 미국의 공화당 대통령후보 지명전에 나온 프레드 톰슨(Fred Thompson) 전(前) 상원의원은 타운홀닷컴(Townhall.com)에 기고한 칼럼에서 반 총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톰슨은 반 총장이 기후변화를 비난하는 이유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만약 반기문 총장이 수단 정부를 지원하는 이슬람 국가를 비난하면 UN의 다수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이슬람 세력을 적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다르푸르에서의 학살에 책임이 있는 이슬람을 비난할 수 없는 반 총장은 편리하게 미국을 비난했고, 그래서 톰슨은 유감이라는 것이다.
톰슨이 대변하는 것은 아프리카 지역 기후변화의 책임이 미국에 있는 한, 기후변화에 의해 다르푸르에서의 학살과 난민이 발생했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다르푸르 분쟁의 원인을 ‘인종’과 ‘민족’ 문제로 보면서 진실을 은폐하려는 이유이다. 톰슨과 같은 사람들이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도 다르푸르 분쟁은 생태 악화와 기후변화가 그 원인이고, 물과 초지와 경작지를 둘러싼 분쟁이다. 문제는 가난한 다르푸르 토착민들과 북부 유목민들은 기후변화를 직접적으로 일으킨 책임이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기후변화를 일으킨 선진국, 그리고 산업화된 국가들이 환경난민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전쟁난민들은 전쟁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 그렇지만 환경난민, 기후난민은 환경의 악화로 삶의 기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돌아갈 집이 없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지금 지구에는 이런 환경난민이 2010년 들어 5천만 명이나 발생한다고 한다. 게다가 현재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촌의 28억의 인구가 환경난민이 될 수 있는 위험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되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다. 산업화된 사회에서 우리가 풍요롭고 편리한 생활을 누리면서 생겨난 기후변화 문제가 지구의 다른 편에서는 이처럼 척박한 삶으로 내몰리는 환경난민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 할 것이다. 먼 곳의 이야기 같지만, 지구촌의 환경난민 문제는 선진국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