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경의 바양노르에서..] 누구의 미래를 누가 꿈꾸는가

 

1012 누구의 미래를 누가 꿈꾸는가

 

 

 

 

나는 급진적인 것에 경계심이 있는 편이라 혁명이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혁명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그 긍정적인 함의를 깎아 내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리고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몽골에서 조림 사업을 통해 자립 모델을 개척하겠다는 그 기본 발상 자체는 유목에 뿌리를 둔 사람들을 농경에 적응토록 한다는 일종의 파격적인 혁명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고도 생각한다. 현장에서 경험하는 푸른 아시아 혁명의 실체는 혁명이라 불릴 만큼 그렇게 거대하고 급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일상으로 전환된 아주 소소한 그 그림자쯤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림자가 작을수록 해는 중천에 떠있듯 변화가 지금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면, 그 변화가 크고 또렷이 확인되는 것은 해가 거의 지는, 변화의 끝 무렵이 아닐까.

 

지역 자립 모델 수립이라는 과제는 결국 여느 자립이 그렇듯 안정적인 자체 수익을 전제한다. 그래서 나무를 심고 가꾸는 와중에도 현장에서는 끊임없이 수익을 창출해낼 소득원에 대한 고민이 그림자처럼 뒤따른다. 바양노르 사업장은 기본적으로 유실수를 중심으로 이러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으며, 더불어 영농 작물이나 묘목 등 역시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나는 수익을 낸다거나 하는 상업적인 머리가 좋지도 않고 관심도 적은 탓에 그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수준의 고민만을 하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 필요성이나 중요성은 나름의 피부로 느끼고 있다.

 

지부장님, 박사님, 동료 간사님들과 차츰차츰 향후 사업장에 대한 그림을 그리면서 든 한 가지 생각은 우리가 꿈을 고민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정작 주민들이 배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물론 그 모든 논의의 중심에 그 가장 핵심 주체인 우리 바양노르 주민들이 서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후에 시도하고자 하는 계획들 역시 주민들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는 마당에 그들이 배제되었다는 주장은 어쩌면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가능성 있는 기획안들을 구상하고 논의하는 단계에서는 적어도 그들이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적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의견 교환을 비롯한 한국의 푸른 아시아와 현장 주민들의 소통 문제는 일정부분 파견 간사의 몫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이러한 부분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소통하고자 애를 쓰지만 분명 외국인 매니저로서는 한계가 있다. 조금 더 적극적인 루트를 열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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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의 혁명,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용어가 있다. 정확한 문맥과 이 용어를 만든 사람이 기억 나지 않아 임의로 적용하기에는 일정 부분 무리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나의 lexicon에서 재해석되기로는 혁명이라는 것의 주체가 그 대상인 서민 즉 아래인가, 그 대상을 통솔하는 지도자 혹은 인가를 분리시킨 개념이다. 그리고 위로부터의 혁명의 즉흥적인 예로 나는 (물론 유신은 개혁이라는 의미이고 그 주체가 엄밀하게 최고 기득권층이라기에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메이지 유신이 떠올랐다. 비교적 가장 빠르고 쉽게, 그리고 깔끔하게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방법일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리라. 소위 주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기득권들의 숙고를 거친 변화가 더욱 똑똑한 것이리라는 것에 큰 이견은 없지만, 왠지 위로부터의 혁명이라는 말에서는 국제 개발이라는 단어에 묻어나는 위압감이 느껴진다. 언젠가 끄적거렸듯 강자의 약자를 향한 자선, 동정, 위선,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의 잇속을 채우려는 허울좋은 명목이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리라. 반면,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면 (어쩌면 이 역시 아래의 서민들이 중상층에 놀아났다는 관점이 일리가 있다면 엄밀히 말해 아래로부터는 아닐 수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프랑스 혁명이 생각이 났다. 정말 혁명적 변화를 필요로 하는 대상들의 바람, 열정이 그들의 방식으로 실현이기에 그 진실성과 순수성이 보장된다 볼 수 있을까. 또한 피지배층의 기득권층을 향한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이미 그것은 결과와 무관하게 과정 자체가 이미 변화의 실현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용어 자체는 이를 미화하는 것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아래로부터의 혁명 역시 허점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프랑스 혁명의 일면 선동된 대중 심리의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그 폭력적이고 맹목적인 변화 역시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혁명은 위와 아래 결국에는 모두를 위한 개선일 것이다. 근시안적으로야 이익이 내 것 네 것 나뉠지 모르겠지만, 멀리 본다면 결국 한 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 역시 설 기반을 잃는 일이 아닌가.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우리 공동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환경 변화를 직면하고 있는 한국의 우리와 몽골의 우리를 포괄하며 몽골의 그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기에 우리 한국인들의 이 바양노르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우리 주민들 역시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더욱 직접적인 주체이다. 소위 조금 더 선진국인 (물론 이 역시 외국 NGO라는 특성 상 정확하게 위로부터라고 보기에 일면 부적절하지만 역시나 상대적으로 그러한) 한국인들이 내어놓는 미래를 고려한 이 청사진은 어쩌면 비록 조금 무지하고 덜 똑똑하더라도 현장에서 피부로 경험하는 이들의 필요에 의해 시도되는 것들보다는 효력이 떨어질 지 모른다. 결국에는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해나가야 할 일인 것이다. 조금 돌아간다 한들 그것이 연습이라면 그것은 돌아가기보다 질러가는 것일 수 있지 않을까.

 

연초 심었던 500kg의 감자가 2톤 가까이의 수확을 냈다. 한창 감자를 캐서 정리하던 중, 내가 주민들에게 물었다. 감자가 이렇게 많이 났는데 지역에서 소비가 가능하냐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그러자 주민들은 제각각 학교며 유치원, 병원을 대며 이곳에 팔면 된다 했다. 몇은 전화기를 들고 가격 협상을 하기도 했다. 연초 미리 계약을 해두면 내년부터는 확실히 일정양은 판매가 가능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나왔다. 또 다른 사람들은 트럭을 타고 주변 지역을 돌며 거리 판매를 하면 잘 팔린 거란다. 한편 주민 중 하나인 다와수릉 아주머니는 바양노르와 울란바토르에 푸른 아시아 가게를 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했다. 나름 지속성과 가능성을 고려한 견해. 스스로 고민하는 흔적이 엿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한 켠이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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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분리하여 학습하는 훈련을 해왔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고, 노인과 청년이 있다. 학문도 문과와 이과가 있으며, 과학 한 분야도 물리, 화학 등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분리는 개개를 더욱 잘 알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세상을 알고자 함일 것이다. 결국 학문은 서로 통하게 마련이고 분리만큼이나 통합도 중요하다. ‘위로부터의 혁명아래로부터의 혁명이란 굳이 나누어야 할 개념일까. 박경리 선생님이 언젠가 신문 기사에서 좌파와 우파로 나누는 것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라며 본인은 새로운 제 3의 길을 제창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끼워 맞추기에 조금 차이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혁명의 개념 역시 위와 아래가 하나가 되는 제 3의 길은 없을까. 역시나 너무 이상적인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역시 꿈은 이상적인 법이니까. 이야기가 커지면서 조금 거창해지긴 했지만 우리가 꿈을 그려보는 단계에서도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글의, 나의 본론이다. 덧붙여 개인적으로 우리의 혁명은 조금쯤은 덜 급진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빠른 변화일수록 그 열매는 빨리 맛볼 수 있겠지만 변화의 간극으로 인한 부작용이 필연적으로 커지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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