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경의 바양노르에서..] 疏通, 트이고 통하다.
0908 疏通, 트이고 통하다.
몽골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마당 뒤 켠, 그 예전에는 마구간으로 썼을 법한 울타리 위에 다리를 달랑달랑 거리며 걸터앉아 구경하는 석양. 특히 어제 저녁엔 모네가 칠해놓은 듯한 파스텔 톤 구름과 파스텔 하늘 사이로 붉은 태양이 살금살금 집으로 들어가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넋을 놓을 만큼, 혼을 잃을 만큼……. 가만히 그곳을 응시하며 이어폰을 통해 귓가로 흐르는 노랫소리에 고개를 까딱까딱 흥얼거리는 저녁 시간만큼은 정말이지 그 자체로 온전하다. 한국에서는 아마도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여유로운 순간이란 걸, 분명 언젠가 많이 그리워할 순간이란 것을 잘 알기에 나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차가운 공기 속을 지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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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몽골의 밤이다. 까만 밤 사이를 뚫고 시야를 매혹하는 별들은 어찌나 많은지, 간혹 떨어지는 별똥별을 기다리는 마음은 또 어찌나 여유롭고 충만한지,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자잘하고 미운 감정들이 씻겨 내려간다.
얼마 전, 두 간사님(잠시 동안 에르덴의 강 간사님이 이곳을 방문해 소중한 시간을 함께 했더랬다)들과 그 밤하늘 아래 나란히 누워 그 별들을 마주했다. 그 밤, 각기 조금씩 다른 현장에서의 생활고에 마음이 닳았던 우리들을 위로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마당으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와, 눈 앞에 가만히 반짝이는 별 무더기 (난 그날 생애 처음으로 은하수를 목격했다), 그리고 곁을 지키는 서로의 숨결.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행복하다’라고 소리 내어 이야기했다. 울고 싶었던 내 마음이, 더 이상 움직이고 싶지 않았던 무거운 몸이 조금은 잠잠해지고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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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종종 소위 대화라고 하는, ‘말’이라는 매개를 통한 ‘이야기’와 ‘경청’이라는 행위로 구체화되곤 한다. 하지만 때로 대화는 말을 필요로 하지 않음을 나는 경험하곤 한다. 소통이라는 한자를 풀자면 ‘트이고 통하다’, 트이고 통함이 가능한 것은 꼭 말을 통해서만은 아니다. 말을 통한 소통은 (용기와 적극성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열정적이고, (가능한 한 직접적인 전달이 가능하므로) 효율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의도를 실현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인위적이고 (자신으로 향한 공감에의 호소이기에) 공격적일 수 있다. 나란 사람이 종종 ‘말’을 나누다 소통하기보다 외려 벽을 만드는 것은 아마도 십중팔구 이러한 부작용 탓이다. 나는 소통에 필수적인 것은 오히려 ‘귀 기울임’과 ‘연결성의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작품에서 울프가 끊임없이 보여주려 한 너와 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인식, 혹은 서로 다른 공간 속에 갇혀 있지만 유리창을 통해 시선을 주고 받을 수 있고 동시대의 경험들을 공유하며 가질 수 있는 동질감, 공감이라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닐까. 어느 노래 가사처럼 너는 내가 될 수 없기에 내 맘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공감이란 내가 느끼는 것을 네가 꼭 같이 느끼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나의 감정이 너와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그래서 네가 느끼는 것들이 내게도 의미를 가짐을 경험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감은 기본적으로 ‘들음’에 의존한다. ‘너’의 눈빛, 분위기, 마음에 귀 기울이는 것.
힘이 빠져 넘어진 순간 혹은 마음이 먹먹하게 멈춰버린 순간 내가 필요한 것은 내게 진심으로 귀 기울여줄 단 한 사람이다. 내게 있어 ‘위로’란, ‘소통’이란, ‘나눔’이나 ‘우정’이란 결국 이러한 공감인 셈이다.
언젠가 여성 문학 시간에 다루었던 한 단편 소설의 작가는 (캐서린 맨스필드였던 것 같다) 이렇게 내가 이상화한 ‘소통’의 허를 찔러 충격을 선사했었다. 우리의 밤과도 같은 그런 까만 밤 달빛 아래 핀 배꽃을 바라보던 여자 주인공은 그 순간을 함께 한 다른 여성과 일종의 ‘소통’을 경험하며 황홀해하지만, 실제 그녀의 곁을 지켰던 이는 단편적으로나마 그녀의 삶을 공허하게 만든 장본인, 남편의 정부였다. 제멋대로의 추측일는지 모르지만, 그 주인공은 아마도 현실이 아닌 것에 위로 받았던 것이다. 그녀가 경험한 공감 혹은 소통은 한낱 그녀를 농락한 허상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환상에 불과할 그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그 밤은 현실이었노라고 나는 노래하고 싶다. 적어도 그 순간 우리가 좀 더 힘을 낼 수 있기를, 지혜롭게 이 시간들을 지나 보낼 수 있기를 바랬던 나의 마음은 진심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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