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경의 바양노르에서..] 우흐린 누드 열매를 따다가 II
0721 우흐린 누드 열매를 따다가 II
상식이라는 말이 있다. 일반적인 지식, 혹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공통적인 생각 정도로 정의 내릴 수 있을 테다. 이러한 상식의 맥락에서 건강이라는 개념의 의미는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일단 체력적인 면에서의 몸의 건강 혹은 병이 없는 정상적(물론 이 개념 역시 정의하기 나름일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동의하지만, 상식적인 개념에서 정상적인) 상태를 일컫는다 볼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마음의 건강이라 일컫는 것 역시 대동소이하다. 육체적인 의미가 되었건 정신적인 것이 되었건 건강이라는 말은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이다. 스트레스 혹은 위기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그리고 일상을 무리 없이 살아낼 수 있는 힘.
그런가 하면 우리네 공간에서는 몸이 건강한 사람이 마음도 건강하다는 상식이 있다. 십중팔구 사람들이 ‘웰빙’이라는 단어에 열광하는 것은 이러한 상식 위에서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일정한 이미지의 건강한 신체 조건이 존재한다. 큰 키, 적당히 근육 잡힌 몸매, 혈색이 도는 피부 등. 아마도 아름다움이라는 개념 역시 건강이라는 개념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듯하다. (물론, 요즘 들어 혈색 없는 흰 피부라던가 극적으로 마른 몸매 등의 유행이 있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차이는 있을 테다) 우흐린 누드 열매를 따다가 문득 이러한 상식에 의문이 들었다. 과연 건강하다는 것, 건강한 삶을 산다는 것이 ‘병이 없는,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는, 보기 좋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무릎 정도도 채 오지 않는 나지막한 우흐린 누드 나무를 하나 하나 뒤져 그 열매를 따다 보면, 먹음직한 (먹음직하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과일을 상상해서는 안 된다) 열매가 무성히 맺힌 나무는 볼품없이 작고 듬성듬성한, 잎사귀들의 한 켠이 갈색으로 마른 녀석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보기 좋게 키가 크고 초록 잎사귀들을 무성하게 틔워낸 나무들에서는 영 수확이 시원치 않다. 이러한 사실이 내게 조금쯤 충격적일 만큼 꽤나 의외로 다가왔던 이유는 아마도 흔히 ‘태교’라는 행위로 대표되는 상식 탓이었다. 건강한 엄마에게서 건강한 아기가 태어난다는 아주 상식적인 원리에 이 나무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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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얼마 전 사막화 지표 식물 중의 하나인 하르간을 가리키며 하신 윤 지부장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어떤 녀석들은 조금 작은 완두콩 콩깍지와도 같은 씨앗을 한껏 내어놓았고, 어떤 녀석들은 씨앗이란 없다는 듯 새파란 잎사귀들만을 내어 보이기에 어째서 그럴까. 지부장님은 생존에 위기 의식을 갖는 녀석들이 종족 보존 본능에 충실히 활동하는 것이라 해설해주셨다. 그러고 보면, 시련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는 말처럼 위기 혹은 스트레스라는 위협들 역시 의외로 그 의의가 충분히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흐린 누드에 있어 건강하다는 것은 어떤 쪽일까. 물이 적은 몽골 특유의 위기에도 튼튼한 줄기와 잎을 키워낸 녀석 쪽? 혹은 그러한 스트레스 상황에 빈약해진 몸으로 잔뜩 건강한 열매를 맺어낸 녀석 쪽? 언제나 그렇듯 판단은 특정한 관점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고 유실수를 통해 주민들의 소득원을 창출하려는 우리의 눈에는 후자 쪽이 건강하다 느껴진다. 하지만 나무 스스로의 입장에서는 과연 어느 쪽이 유리한 답일지는 글쎄, 영영 알 수 없을 미궁 속의 답일 테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내 눈에는 역시 후자가 반짝 반짝한 정답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 비실비실한 녀석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희망이 아닐까 하는 감상이 들어서이다. 세상에는 그 녀석들처럼 고난을 살아가면서도 건강한 열매를 내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건강함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자신만이 건강한’ 우흐린 누드가 되는 길이 아닌, 열매를 먹는 동물들이 그로부터 힘을 얻고 그 후에는 그 씨앗을 통해 또 하나의 우흐린 누드를 생산해 내는 길을 택한 이들. 마더 데레사를 위시로 한 세상의 칭송을 받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되리라. 그리고 그리 대단치는 않지만 바양노르를 지키는 우리들 역시 후자의 길을 선택한 쪽이다. 매일같이 노다가 판과 다를 바 없는 현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면 팔목이나 발목이 삐고 여기 저기 상처가 나고 온 피부가 얼룩 덜룩 타기 일쑤고, 이런 저런 상황들을 겪다 보면 까칠해질 대로 까칠해진 마음에 종종 쌈닭처럼 되어버리곤 하는 등 신체적 정신적 결함 투성이가 되어버린 것 같아 속상해지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시도하는 일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작은 우흐린 누드 열매를 생산해내는 일이다. 비록 이곳 몽골 사람들이, 이곳을 투어 하러 찾아온 이들이 우리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해도 우리는 나름의 꿈을 품고 있는걸. 우리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는 거야 라며 푸념과 장난기가 섞인 웃음 소리를 늘어놓는 서 간사님의 말처럼 종종 한 켠이 바싹 타버린 잎사귀가 되는 기분에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 나름 대로의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거니까,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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