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경의 바양노르에서..] 우흐린 누드 열매를 따다가
0720 우흐린 누드 열매를 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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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는 우흐린 누드라는 나무가 있다. 그 뜻은 소의 눈. 단풍잎처럼 생긴 연둣빛 잎사귀가 인상적인, 몽골인들의 눈에 소의 눈처럼 보였을 완두콩 정도 크기의 까만 열매를 틔워내는, 무성한 가지가 나무이기보다 풀 같은 인상을 주는 유실수인데 우리 주민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녀석이다. 물을 줄 때에도, 식수 장소를 고민할 때에도 사람들은 이 녀석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곤 했다. 설탕과 함께 먹거나 과실주를 담아 먹으면 맛이 그렇게 좋다나. 한창 열매를 맺을 시기가 조금쯤 지나가고 있는 오늘, 나는 오후 반나절을 쪼그리고 앉아 이 녀석의 열매를 땄다.
뒤통수를 찌르는 몽골의 뜨거운 햇살과 후텁지근한 공기, 나지막한 나무 줄기의 이쪽 저쪽을 살펴보기 위해 한껏 웅크린 자세는 금새 나를 피로하게 만들었다. 작업을 하느라 우흐린 누드 밭을 오며 갈 때면 우리 주민들은 종종 이 녀석을 즐겨 따먹곤 한다. 하지만 까맣게 익은 손톱만한 열매를 처음 맛본 후, 나는 생각했었다. 굳이 몸을 구부리는 수고를 무릅써가며 먹고 싶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야, 라고. 얼굴 크기만한 수박이, 그리고 손바닥 크기만한 사과가 배가 널린 달콤한 한국의 과일에 비하기에 이 작고 풀 맛 나는 녀석들은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쯤 초라하고 한심하다. 언젠가 ‘버러니 우문 셔러 버허니 우문 히레’ (번역하자면 비 앞에 모래, 늑대 앞에 새) 라는 몽골 속담을 배운 후에 들었던 감상이 다시 한번 마음을 스친다. 그들의 환경이, 요 조그만 우흐린 누드 열매에 열광하는 그들의 상황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문득 마음 한 켠으로 새로운 감상이 스쳤다. 이런 게 진짜 행복이 아닐까 하는, 그것은 안쓰럽다기보다 어쩌면 부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라고.
어떤 나무에서는 까맣게 익은 녀석들이 한 움큼 열려있고, 어떤 나무에서는 열매가 하나도 달려있지 않다. 그런가 하면 초록빛 설익은 알맹이들도 찾아볼 수 있다. 손 모양의 잎사귀가 그 위를 가려 언뜻 찾아내기 쉽지 않지만, 쪼그리고 앉아 손을 움직이는 수고를 감내하면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두통이 일만큼 따가운 햇살 아래 하나 하나 나무들을 훑어내는 일은 전반적으로 몸을 지치게 것이기는 하지만 잘 익은 녀석들을 잔뜩 열어낸 나무들을 발견했을 때면 탄성이 일만큼 기쁨이 인다. 이는 흡사 우리가 매일 살아내야 일상과도 같다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일은 조금쯤 지루하고 힘겹지만 우연히 발견하는 소소한 행복들은 그런 것들을 상쇄시킬 만큼 의미가 되곤 한다. 무엇보다 이런 작은 기쁨들은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어떤 날은 무미건조하게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훗날 기쁨이 될 씨앗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달콤한 행복감이 생각지 못하게도 무더기로 찾아오기도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이 보잘 것 없는 소소한 행복을 볼 수 있는 만끽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열어두어야 하는 것이다. 진정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은 이 조그마한 우흐린 누드 열매를 따는 일인 셈이다.
작업이 끝나자 사람들은 열매를 많이 땄냐 물으며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굳이 변명하자면, 열매가 많이 맺히는 시기가 지나고 있기 때문에) 한 줌 정도 열매 밖에 따지 못한 나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하지만 반쯤 장난스레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2시간 반을 쉬지 않고 딴 게 요 만큼이라고. 터져 나오는 웃음 소리. 그래, 이런 순간들이 행복의 순간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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