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 있는 호수와 강

 
사라지고 있는 호수와 강
 
오기출 (푸른아시아 사무총장)
 
  유목민과 사막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은 로망을 느낀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등반가인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의 마지막 여행기인 「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를 읽어본다면 더욱 그런 로망을 진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메스너가 그랬듯이 나이 들어서 한번 정도 광활한 사막을 건너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사막의 고독함을 경험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러면서 이 고독을 풀어줄 온기를 가진 존재, 언제나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유목민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분주한 도시를 떠나고 싶은 현대인들의 본능이 아닐까 한다.
나는 중국의 내몽골에 있는 모우스 사막, 쿠부치 사막, 몽골 고비사막을 한번이 아니라 적게는 네다섯 번, 특히 몽골 고비사막은 열 번 이상 횡단했다. 그러면서 많은 유목민들을 만났고, 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유목민의 생활을 이해할 기회를 가져 보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국제 NGO활동가의 호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평선만 보이고 끝없이 펼쳐진 사막 한가운데서 초속 20m~46m의 모래먼지 폭풍을 헤치며 기후변화와 사막화 문제를 조사하고 해결해보려고 그곳에 갔던 어느 보잘것없는 인간의 고군분투라고 여겨준다면 더 고맙겠지만 말이다. 하긴 모래먼지 폭풍 속에서 부려볼 호사가 있을까마는, 유목민들의 건강하고 순수한 삶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만은 공유하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사막과 초원에 나타난 기이한 현상이다. 즉, 유목민들이 그동안 경험하지도 못했고 이해할 수도 없는 문제, 그로 인해 이들의 삶이 송두리째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분주한 도시인들이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한번 정도 가보고 싶은 삶의 로망, 순수하고 여유로우며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유목민들의 삶을 순식간에 앗아가는 것은 바로 ‘사라지는 호수와 강, 사라지고 있는 물’이다.

  2007년 2월 하순, 영하 20도를 육박하는 추위 속에 몽골 남부에 있는 어믄고비(남고비)를 방문하여 서북 방향으로 고비 사막을 횡단할 때의 일이다. 나는 어믄고비의 수도 달란자드가드를 지나 이 지역에서 가장 큰 호수인 ‘울란 호수’를 조사하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 같이 동행했던 몽골 지리생태연구소의 하울렌벡 박사는 자동차로 대여섯 시간이 걸리는 ‘울란 호수’까지 가면서 기후변화로 인해 몽골의 호수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바빴다.
“몽골은 호수로 대표되는 습지들이 많은 곳입니다. 특히 습지들을 중심으로 다양하고 풍부한 생태들이 발달했습니다. 이러한 습지를 중심으로 포유류, 조류, 양서류, 파충류들이 인간과 가축과 함께 수만 년을 살아왔지요. 호수와 습지들이 없었다면 유목생활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울러 텃새들과 철새들이 둥지를 틀 만한 갈대숲이나 초원도 없을 거고요.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호수를 비롯해 습지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광산개발로 인해 지하수 수위가 낮아지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죠.”라고 하울렌 박사가 전달해주었다.
문제는 하울렌벡 박사가 울란 호수에 도착했다고 하면서도, 호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헷갈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호수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지도를 가져와서 GPS로 위치를 확인했다. GPS로 확인해보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울란 호수의 가장자리가 아니라 한가운데였다. 비로소 우리는 울란 호수에 이미 들어와 있고, 호수가 바짝 말라버려 물이 한 방울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몽골 고비 사막에서 초원과 호수가 만나는 ‘경계선’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경계선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초원 아래 만들어진 다양한 지표수들이 샘이 되어 수만 년 동안 호수를 만들었고, 이 호수가 광활한 습지를 만들었던 것이다.
하울렌벡 박사가 소개한 울란 호수 마을 이장인 바후트 씨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이야기했다.
“울란 호수가 5년 전부터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호수가 최근까지 있었다는 흔적, 그리고 말라서 갈라진 땅만 보일 뿐입니다. 과거에 이 호수 주변에는 사람들의 키보다 더 높은 갈대숲들이 지천으로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졌어요. 이 갈대숲에는 다양한 철새들이 둥지를 틀고 살았고, 이 지역의 사람들과 가축들은 이 호수에 의존해 살아왔습니다.”
바후트 씨는 과거에 호수였던 이곳에 갈대가 무성했을 때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평균 수심 5m인 울란 호수는 그 면적이 325㎢로, 거의 서울시의 절반 크기이다. 호수가 사라지기 시작한 지 5년이 지난 지금은 그곳에 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고, 주변에는 동물이나 새뿐만 아니라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바후트 이장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호수에 물이 있을 때만 해도 호수 주변 풀들의 키가 70~80cm 정도 되었고, 관목류의 나무들도 많이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풀도 자라지 않고 물도 없어요. 원래 이 호수 근처에는 유목민 3,000여 명이 호수에 의존해 살았는데 현재는 200명만 남아 있습니다. 특히 물이 없으니 가축들이 굶어 죽고 사람들이 떠날 수밖에요. 그나마 남은 사람들도 이젠 이곳을 떠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몽골 지도를 보면 울란 호수는 여전히 푸르게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현장은 바짝 말라 생명이 살 수 없는 황폐한 땅이 되었다. 그만큼 주변의 생명과 삶도 사라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명심해야 할 교훈도 적지 않다. 습지가 사라지고 물이 사라지면 생명이 살 수 없고, 생명이 살 수 없다면 인간도 살 수 없다는 교훈을 울란 호수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8년에 몽골 자연환경관광부는 매우 의미심장한 자료를 발표했다. 몽골에서 지난 20년 동안 1,181개의 호수와 852개의 강, 2,277개의 샘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울란 호수처럼 습지 호수들이 1,181개나 사라졌다는 사실은 매우 참담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바로 유목민들의 절망이다. 유목민들은 호수, 강, 샘에 의존해서 마을을 만들고 가축을 키우면서 적어도 1만 년 이상 살아왔다. 이들은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조상 대대로 초원문화를 만들었고 그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 유목민이 사는 곳에 찾아가 며칠 동안 함께 지내보면 이들의 넉넉하고 여유롭고 순박한 인심을 진하게 느끼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게르(몽골 유목민들의 이동 주택)에 찾아온 사람이면 누구든 음식을 제공하고 잠자리를 제공한다.
2010년 6월, 나는 기후변화와 광산개발로 호수와 샘이 사라지고 유목민들이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동몽골의 ‘알탄블락 박’(박은 우리의 ‘면’소재지에 해당)을 방문해서 유목민들과 하루를 지낸 적이 있다. 알탄블락 박에는 10가구 정도의 유목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외국인이 왔다는 소문이 금방 퍼져 10가구의 주민들이 모두 내가 있는 게르에 찾아왔다. 이들은 평생 유목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외국인은 처음 만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목민들은 양고기, 치즈, 요구르트를 나누어 주면서 함께 이야기하고 밤에는 자신들의 침대를 내어주었다. 낯선 이방인에 대한 환대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누구든 방문한 손님들에게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누면서 살아왔고, 이를 당연시한다.
‘알탄블락 박’에는 원래 50여 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샘이 사라지고 초원이 사라지자 40가구는 이미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를 묻자, 유목민들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알탄블락 박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투무르 씨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들이 키우는 가축들이 올해 봄에 모두 굶어 죽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그들은 혹시 도시에 가면 먹고살 길이 있을지 모른다며 울란바타르로 갔어요.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이 사람들이 울란바타르의 불법 난민촌에 들어가 수도와 전기도 없이 살아가고 있고, 쓰레기장을 뒤져 고철과 비닐을 주워 겨우 연명한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울란 호수를 떠난 2,800명의 유목민들도 참담한 삶을 연명하고 있을 것이다. 사라진 1,181개의 호수를 떠난 수많은 유목민들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제는 이들 유목민이 자신들의 삶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환경악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 이유를 모르면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리생태연구소 하울렌벡 박사는 “몽골은 현재 중국, 일본, 한국, 대만, 미국 등 주변국들이 만들어낸 지구온난화와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광산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온난화가 만들어낸 고온 건조 현상과 사막화로 인해 초원 아래를 흐르는 지표수들이 빠르게 증발해서 사라지고 있어요. 이로 인해 호수로 들어가는 지표수들이 사라지고 있는 거죠. 특히 광산개발은 강으로 흘러가는 지하수를 고갈시켜 강들을 사라지게 합니다.”라며 참담한 사태의 원인을 진단했다.

  현재 몽골의 유목민들은 1만 년 이상 초원에서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후변화로 인해 지금까지 살아온 그들의 땅에서 강제 퇴출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환경난민, 사막화 난민’으로 부르고 있다. 유목민들의 삶을 덮친 기후변화는 이들에게 매우 낯선 환경난민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산업화한 나라들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풍요롭고 편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몽골의 유목민들은 우리가 만들어낸 기후변화에 의해 난민이 되어 절망의 수렁에 빠져 있다. 복잡하고 번다한 도시의 삶을 벗어나 사막을 건너면서 유목민들과 만나 자신을 구원하고 싶은 현대인들의 로망은 앞으로 영영 실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에너지에 굶주린 우리들의 삶을 바꾸지 않는 한 말이다. 아울러 환경난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아주 보잘것없다는 점에서 비극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