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자연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오 기 출(푸른아시아 사무총장)

 

 2000년,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잘 가지 않던 몽골의 북부지역으로 조사를 위해 찾아갔다. 당시 한국, 몽골, 일본의 시민운동가들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팀이 찾아간 곳은 몽골과 러시아 국경지대인 ‘투친나르스’라는 낯선 지역이었다. 국경 너머로 몇 채의 집들이 띄엄띄엄 있는 러시아의 마을이 보였는데, 그 마을은 집과 도로들이 누런 먼지에 뒤덮여 있었다, 풀과 나무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의 모습도 찾을 수 없었다. 몽골 국경지역인 ‘투친나르스’는 원래 거대한 산림지역 이었는데 1996년 대화재로 인해 불탄 나무와 두텁게 쌓인 회색의 잿더미만이 남아 있었다. 살아 있는 것은 찾아간 사람들의 코와 눈에 남은 약간의 물기라도 취하려고 달려드는 날파리때가 전부였다. 근처의 사람들이 있는 마을로 갔지만 대다수 유목민들은 풀과 물이 사라지자 떠났고, 남아 있는 몇몇 주민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몽골 유목민들 특유의 넉넉한 인심과 여유로움은 사라지고 다만 이들도 하루빨리 마을을 떠나고 싶어 했다. 돕고자 찾아온 낯선 외국인들에게 경계심과 적대감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는 곳, 생태와 생명이 파괴된 현장에는 선한 의지조차 의심과 경계의 대상이 된다는 것에 놀라왔다.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

 그 이후, 나는 당시 조사팀으로 참여한 활동가들과 함께 지구가 처한 참담한 파괴현장인 사막화지역, 기후변화현장에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생태복원을 하는 일을 선택했다. 기후변화로 파괴된 현장의 주민들과 생태복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시작한 이후에야 비로소 알았지만 말이다. 가이드와 지도도 없이 에베레스트 산을 올라가는 심정이었다. 기후변화와 사막화문제에 대해 대응하여 성공한 모델이나 지침이 당시에는 없었고, 있다고 해도 그저 현장에 나무를 심는 정도의 단순한 처방이었다.
몽골과 내몽고 등 기후변화로 사막화된 지역의 주민들은 나무 심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유목생활을 해왔고, 나무는 뽑아야 할 대상이었고 물은 신성한 대상이었다. 사막화되는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뽑아야할 나무를 심고 나무에 신성한 물을 주는 것은 그저 한심한 일에 불과했다. 거기다가 언제 떠날지 모르는 외국인들이 무엇을 한다는 것에 어찌 믿음이 가겠는가? 처절한 실패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3년 동안 우리는 기후변화와 사막화지역의 생태복원을 위해 몽골에서 열심히 나무를 심었다. 그렇지만, 생존율은 0%였다. 유목민들에게 나무와 연약한 잎은 양과 염소의 먹이로 보였을 뿐이다. 그러지 않아도 풀이 없어 먹이를 못주는 상황에서 어린 나무줄기와 잎은 그저 풀을 대신할 먹이였던 것이다.
처절한 실패, 그 이후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대책은 철수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함께 생태복원을 했던 일본팀은 일본에 불고 있었던 기후변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 덕분에 그래도 풍부한 자금을 갖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을 일본에서 데려올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2천년 초 한국은 기후변화와 사막화는 경제성장 이후 ‘손 좀 봐주면 되는’ 후순위과제였고, ‘강 건너 불’ 정도로 관심도 없었다. 일본팀에 비해 우리의 자원동원 능력은 정말 보잘 것 없었다. 당시 실패를 했다고 해도 일본팀은 담대하게 사막화지역과 기후변화에 대해 연구를 계속하고, 나무 심는 일을 진행했다. 능력이 되는 일본팀이 몹시 부러웠다.
몽골 관계자들도 우리가 당연히 능력이 없어 철수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철수하지 않았다. 이것은 중요했다. 대신, 우리가 찾아낸 원인은 나무만 심으면 다 죽는다는 사실이었다.
대신 주민들과 대화를 하고 현지 공무원들과 끈질긴 대화를 하면서 찾아낸 답은 나무가 아니라 일자리였다.
기후변화와 사막화로 황폐화되어 주민들이 생존을 위한 대책이 없었는데, 나무 심는 일을 통해 생존대책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일자리와 소득사업을 중심으로 조림을 하자고 주민들과 현지 공무원들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의 새로운 제안에 대해 주민들과 공무원들로부터 반응이 왔다. 한번 해보자는 반응이었는데, 2003년부터 우리는 주민들의 참여를 통한 사막화방지 조림을 시작하고, 지역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환경교육을 시작했다. 주민들은 사막화 지역에 나무를 심기 시작하면서 소득이 만들어지고, 일자리가 만들어 진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면서 사막화방지 조림지를 스스로 지키기 시작했다. 드디어 양과 염소의 먹이가 아니라, 살아갈 일터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지역 공무원들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민생계문제 해결에 사막화방지 조림사업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거꾸로 우리에게 제안을 해왔다. 지역정부도 예산을 제공할 것이니 함께 문제를 해결하자는 제안이었다. 주민들과 공무원들이 관찰을 해보니 푸른아시아가 다른 외국 단체처럼 머물다가 떠나는 단체가 아니라는 확신도 하고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아울러 몽골 지역경찰서에서 우리를 찾아와 범죄 발생이 줄어들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그동안 마을에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낮부터 술먹고 서로 싸우거나, 절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막화방지 조림지에 젊은 주민들이 일을 하게 되면서 이런 범죄가 대폭 줄어들기 시작했다.
기후변화와 사막화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만일, 2002년 갈림길에서 우리가 손을 들고 철수했다면 오늘날 국제NGO인 ‘푸른아시아’도 없었을 것이다. 몽골과 국제사회에서 사막화방지모델로 인정하기 시작하는 주민자립 모델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나무를 넘어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단순한 목표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지구에게 생명과 희망을

 지금 지구촌은 이미 임계점을 넘은 기후변화와 사막화, 태풍, 홍수, 가뭄, 해수면상승으로 인해 식량, 물, 질병, 난민문제라는 참담한 고통을 받고 있다. 앞으로 더 큰 고통에 시달릴 것이 확실하다. 사실 지구생명이 빠르게 사라지는 상황에서 인간만이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인류에게 성과가 있다면 그 동안 성장을 위해 연약한 지구의 대기와 땅, 바다를 고갈시킨 것이다. 나는 이 참담한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 인류가 거대한 인프라를 개발하고, 거대한 문명전환을 해야 달성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지구생명을 살리려는 작은 행동에 답이 있다고 본다.

 2004년 노벨평화상을 아프리카에서 사막화방지를 위해 각지의 마을, 학교, 교회 등에 3천만그루의 나무를 심은 케냐출신 왕가리마타이 여사가 받았다.
2004년 왕가리마타이 여사가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 한 연설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대략 다음과 같다.

숲에 가면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벌새라는 새가 있다. 숲에 불이 나면 숲에 사는 모든 동물들은 도망을 가는데, 유독 이 벌새만은 도망을 가지 않는다. 작은 입으로 개울가에서 물을 가져와 불이 난 나무에 물을 뿌린다. 어떤가? 벌새의 이 행동은 참으로 보잘 것 없다고 여러분은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 보잘 것 없는 행동에 인류가 찾고 있는 답이 있다.
60억 인류 전체가 벌새처럼 보잘 것 없는 행동을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우리 각자가 한평생을 살면서 1인당 나무 10그루를 심는다면 지구온난화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이에 대한 증거와 확신을 갖고 있다. 보잘 것 없는 벌새의 행동을 따라하는 것으로도 인류는 거대한 전환을 할 수 있다.

나는 벌새의 보잘 것 없는 행동에 지구 생명과 인류의 희망이 있다고 본다.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어 보면, 평범한 한 노인의 정신적, 육체적 노력만으로, 희망이 사라지고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이 되어버린 희망이 없는 불모지를 비옥하고 풍요로운 ‘가나안’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인간에게 주어진 놀라운 힘을 지구생명 회복에 사용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