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과 마지막]
현장에 온 뒤 처음 쓰는 에세이인데 공교롭게도 제목에 마지막이 들어가게 되었다. 이르다는 건 알지만 처음에 대한 걸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마지막이 떠올랐다. 음……. 나는 사람들과의 마지막이 두렵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에도 마지막의 순간이 있었고 이렇게까지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이유로 여러 사람들을 만났으며 이 과정에서 나는 무수히 많은 마지막을 맞이했다. 그렇지만 마지막이 두렵다고 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마지막에 몰아치는 그 아쉬움을 어떻게 담담하게 대면하고 달래야 할지가 궁금할 뿐이다. 울란바타르에서의 한 달 생활을 마무리하고 내려올 때도 힘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힘들었던 건 그때의 마지막이 아쉽기도 했지만 불현듯 1년 생활의 마지막이 떠오르며 지금도 이렇게 슬픈데 일 년이 마무리될 땐 어떨까……하는 그런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도 알고 아쉬움도 슬픔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아는데 나는 왜 자꾸 집착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해가 가면 갈수록 덜해지기는커녕 더해지는 것만 같다. 어른은 마지막을 잘 떠나보내는 사람이라던데 나는 아직 멀었나 보다. 나에게 아직 마지막은 너무 어렵다.
마지막을 많이 맞이하며 내 주변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는 인연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마지막에 생기는 아쉬움의 폭풍은 내면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감정이라 내가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이 다가오기 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최선을 다해 한다면 적어도 후회는 없지 않을까? 똑같이 반복되는 매일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날의 공기, 하늘의 색깔, 구름의 모양, 햇빛의 세기, 나무들의 상태, 직원분들의 표정, 점심의 맛 등 새로운 것들이 넘쳐난다. 그런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면 나중에 후회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이렇게 생각을 하다가도 한편으로는 현재에 충실하면 나중에 찾아올 그리움이 더 커지는 거 아니야?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마지막에 찾아올 아쉬움과 그리움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에 대한 후회까지 더해지겠거니 싶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둥실둥실 떠다닌다. 일단 여기까지가 현재 27세 양효선의 마지막에 대한 생각들이다.
[조림지에 집주인 아저씨가 오셨다고요?]
근무 첫 주의 마지막 날인 4월 7일 토요일에 일어난 일이다. 2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이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아마 언제 생각하더라도 계속 웃음이 날 것 같은 일이다. 토요일에 나리 언니와 게르에 앉아서 업무를 보다가 며칠 전 집주인 아저씨가 이것저것 알려주러 집을 방문하시기로 한 것이 생각났다. 혹시 까먹으실 수도 있으니 한 번 더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나리 언니가 저장된 집주인 아주머니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주머니 폰에는 우리 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은 듯했다. 여기서 1차 당황을 했다. 누구인지 자꾸 물어보셨다. 그래서 나리 언니는 나름의 최선으로 ‘한국(설렁거스)과 집(게르)’이라는 단어를 무한 반복했다. 여러 번의 반복 끝에 아주머니가 드디어 우리임을 알아채주셨다!!! 휴 ^0^ 그리고 우린 목적에 맞게 ‘저녁 7시 30분, 집’ 과 ‘6시, 일 끝난다’ 를 반복했다. 하지만 집주인 아저씨가 방문하시는 일을 아주머니는 모르시는 것 같았고 옆에 아저씨가 계신다고 바꿔주셨다. 아저씨가 뭐라고 물어보셔서 우린 앞서 반복하던 ‘6시, 일 끝난다’를 다시 반복하고 통화를 마쳤다. 그리곤 몽골어로 통화를 잘 끝냈다는 생각에 나름 뿌듯해했다.
다시 순조롭게 일을 하고 룰루랄라 드디어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집주인 아저씨께 전화가 왔다. 받았다가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몰라서 주민팀장님을 바꿔드렸더니 집주인 아저씨가 우리 조림지에 오셨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민팀장님을 쳐다보며 왜요(야가드)??????????????라고 묻고 주민팀장님도 의아하신 얼굴로 모르겠어(미트귀)라고 하셨다. 그 순간… 우리가 집주인 아저씨와 통화할 때는 ‘저녁 7시 30분, 집’ 단어를 말하지 않은 게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아주머니와 전화 내용을 공유하지 않으신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공유하셨어도 모르셨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주민팀장님의 안내로 우리가 모여있는 9조림지로 검은 택시를 이끌고 오셨다. 심지어 6시보다 10분 정도 빨리 오셨다. 우린 죄송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이 상황이 웃기기도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통화 내용을 오해했다고 하셨다. 그리곤 서로 엄청 웃었다. 마침.. 이 날이 조림지에서 트랙터를 사용하고 있던 날이라 주민팀장님이 못 태워주시게 됐는데 어쩜 이렇게 딱 집에 타고 갈 차량이 생겼다 ^____^*. 그래서 직원 몇 분이랑 다 같이 행복하게 웃으며 차를 타고 퇴근했다. 타고 가면서 집주인 아저씨가 직원분들한테 우리랑 통화했던 내용을 재연해주시는데 진짜 배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하시는 말씀을 정확히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6시, 일 끝난다’ 단어가 많이 들렸고 아저씨 리액션이 엄청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내릴 때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인사를 드렸더니 괜찮다고 하셨다. 전화 한 통에 조림지까지 와주시다니… 에세이를 통해 다시 한 번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드린다. 집주인 아저씨 최고 ^.^b
[장난꾸러기 바야르 아저씨]
우리 조림지에는 처 바야르라는 장난꾸러기 아저씨가 계신다. 가만 생각해보면 아저씨는 첫날부터 장난을 치셨다. 주소록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해 촬영을 하는데 마스크를 내려달라고 했더니 계속 안된다고만 하셔서 약간 겁을 먹었었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장난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본격적인 장난의 시작은 ‘감바디차스’다. 몇 주 전부터 아저씨께서 밀고 계신 유행어 같은 거다. ‘감바디차스’가 안녕하세요의 몽골어인 ‘생 배노’와 같은 말이라고 하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진짜냐고 몇 번을 물었는데 진짜라고 하긴 하시는데 이 말을 아는 직원분들도 계시고 모르는 직원분들도 계신다!!! 도대체 ‘감바디차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래도 진짜라고 믿고 아침에 다른 분들께는 ‘새흥 아마르스노~?’라고 안부를 여쭙고 바야르 아저씨께는 ‘감바디차스’를 우렁차게 외친다. 그럼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으신다. ‘감바디차스’를 잘 익혀서인지 요즘은 또 새로운 듣는 말을 반복하신다. 이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까먹었는데… ‘감바디차스’처럼 몽골어 같지 않은 그런 말이다. 사투리인가? 흠, 궁금하다.
그리고 며칠 전에 신규직원이 두 분 오신 날이 있었다. 그날 출근부 작성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좀 있다가 ‘치 바야르’라는 사람이 올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에이~~ 이런 표정을 지으니 진짜라고, 자신은 처 바야르이고 오는 사람은 치 바야르로 조림지에 바야르가 두 명이라고 너무 억울한 표정으로 얘기하시길래 또 속았다… 저기 언덕너머에 오고 있다고 안보이냐고 그러셨는데… 언덕이 도대체 얼마나 먼 걸까…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치 바야르 아저씨는 오지 않으셨다. 아, 아직 오고 계시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돈드고비 조림지 대표 장난꾸러기 바야르 아저씨와의 재미난 일화였다.
[머리 부딪히기의 달인]
일을 할 때 얼굴에 태양을 조금이라도 덜 받기 위해 모자를 쓴다. 그런데 모자가 그렇게 익숙하지 않아서 모자를 쓰면 앞이 잘 안 보인다. 그래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온 동네방네 머리를 박고 다녔다. 게르에 들어갈 때는 물론, 나올 때도 예외는 없었고. 도대체 매번 똑같은 게르를 들어가고 나오는데 왜 매번 부딪히는 걸까…? 5조림지 철문 위에 철사 한 줄이 있는데 거기에도 박고… 적고 보니 내 머리가 많이 바빴구나 싶다. 한 날은 일을 끝내고 집에서도 부딪혔다. 우리 집은 2층 계단 밑을 지나야 화장실을 들어갈 수 있다. 2층 계단 밑부분이 비스듬히 되어있는데 좀 낮은 부분에 엄청 세게, 머리를 정말 그냥 갖다 박았다. 그리곤 깨달았다. 내 머리는 정말 단단하다는 것을… 진짜 골이 흔들린 거 같았는데 멀쩡했다^^! 집에서 심하게 부딪힌 일을 겪고 이제는 좀 조심해서 다닌다. 게르에 들어가고 나올 때 푹~~~ 숙이고 다니고, 항상 위를 잘 보고 다니려고 노력한다. 이제 그만 부딪히자~~~
[처음과 마지막]
현장에 온 뒤 처음 쓰는 에세이인데 공교롭게도 제목에 마지막이 들어가게 되었다. 이르다는 건 알지만 처음에 대한 걸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마지막이 떠올랐다. 음……. 나는 사람들과의 마지막이 두렵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에도 마지막의 순간이 있었고 이렇게까지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이유로 여러 사람들을 만났으며 이 과정에서 나는 무수히 많은 마지막을 맞이했다. 그렇지만 마지막이 두렵다고 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마지막에 몰아치는 그 아쉬움을 어떻게 담담하게 대면하고 달래야 할지가 궁금할 뿐이다. 울란바타르에서의 한 달 생활을 마무리하고 내려올 때도 힘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힘들었던 건 그때의 마지막이 아쉽기도 했지만 불현듯 1년 생활의 마지막이 떠오르며 지금도 이렇게 슬픈데 일 년이 마무리될 땐 어떨까……하는 그런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도 알고 아쉬움도 슬픔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아는데 나는 왜 자꾸 집착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해가 가면 갈수록 덜해지기는커녕 더해지는 것만 같다. 어른은 마지막을 잘 떠나보내는 사람이라던데 나는 아직 멀었나 보다. 나에게 아직 마지막은 너무 어렵다.
마지막을 많이 맞이하며 내 주변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는 인연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마지막에 생기는 아쉬움의 폭풍은 내면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감정이라 내가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이 다가오기 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최선을 다해 한다면 적어도 후회는 없지 않을까? 똑같이 반복되는 매일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날의 공기, 하늘의 색깔, 구름의 모양, 햇빛의 세기, 나무들의 상태, 직원분들의 표정, 점심의 맛 등 새로운 것들이 넘쳐난다. 그런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면 나중에 후회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이렇게 생각을 하다가도 한편으로는 현재에 충실하면 나중에 찾아올 그리움이 더 커지는 거 아니야?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마지막에 찾아올 아쉬움과 그리움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에 대한 후회까지 더해지겠거니 싶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둥실둥실 떠다닌다. 일단 여기까지가 현재 27세 양효선의 마지막에 대한 생각들이다.
[조림지에 집주인 아저씨가 오셨다고요?]
근무 첫 주의 마지막 날인 4월 7일 토요일에 일어난 일이다. 2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이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아마 언제 생각하더라도 계속 웃음이 날 것 같은 일이다. 토요일에 나리 언니와 게르에 앉아서 업무를 보다가 며칠 전 집주인 아저씨가 이것저것 알려주러 집을 방문하시기로 한 것이 생각났다. 혹시 까먹으실 수도 있으니 한 번 더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나리 언니가 저장된 집주인 아주머니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주머니 폰에는 우리 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은 듯했다. 여기서 1차 당황을 했다. 누구인지 자꾸 물어보셨다. 그래서 나리 언니는 나름의 최선으로 ‘한국(설렁거스)과 집(게르)’이라는 단어를 무한 반복했다. 여러 번의 반복 끝에 아주머니가 드디어 우리임을 알아채주셨다!!! 휴 ^0^ 그리고 우린 목적에 맞게 ‘저녁 7시 30분, 집’ 과 ‘6시, 일 끝난다’ 를 반복했다. 하지만 집주인 아저씨가 방문하시는 일을 아주머니는 모르시는 것 같았고 옆에 아저씨가 계신다고 바꿔주셨다. 아저씨가 뭐라고 물어보셔서 우린 앞서 반복하던 ‘6시, 일 끝난다’를 다시 반복하고 통화를 마쳤다. 그리곤 몽골어로 통화를 잘 끝냈다는 생각에 나름 뿌듯해했다.
다시 순조롭게 일을 하고 룰루랄라 드디어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집주인 아저씨께 전화가 왔다. 받았다가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몰라서 주민팀장님을 바꿔드렸더니 집주인 아저씨가 우리 조림지에 오셨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민팀장님을 쳐다보며 왜요(야가드)??????????????라고 묻고 주민팀장님도 의아하신 얼굴로 모르겠어(미트귀)라고 하셨다. 그 순간… 우리가 집주인 아저씨와 통화할 때는 ‘저녁 7시 30분, 집’ 단어를 말하지 않은 게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아주머니와 전화 내용을 공유하지 않으신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공유하셨어도 모르셨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주민팀장님의 안내로 우리가 모여있는 9조림지로 검은 택시를 이끌고 오셨다. 심지어 6시보다 10분 정도 빨리 오셨다. 우린 죄송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이 상황이 웃기기도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통화 내용을 오해했다고 하셨다. 그리곤 서로 엄청 웃었다. 마침.. 이 날이 조림지에서 트랙터를 사용하고 있던 날이라 주민팀장님이 못 태워주시게 됐는데 어쩜 이렇게 딱 집에 타고 갈 차량이 생겼다 ^____^*. 그래서 직원 몇 분이랑 다 같이 행복하게 웃으며 차를 타고 퇴근했다. 타고 가면서 집주인 아저씨가 직원분들한테 우리랑 통화했던 내용을 재연해주시는데 진짜 배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하시는 말씀을 정확히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6시, 일 끝난다’ 단어가 많이 들렸고 아저씨 리액션이 엄청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내릴 때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인사를 드렸더니 괜찮다고 하셨다. 전화 한 통에 조림지까지 와주시다니… 에세이를 통해 다시 한 번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드린다. 집주인 아저씨 최고 ^.^b
[장난꾸러기 바야르 아저씨]
우리 조림지에는 처 바야르라는 장난꾸러기 아저씨가 계신다. 가만 생각해보면 아저씨는 첫날부터 장난을 치셨다. 주소록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해 촬영을 하는데 마스크를 내려달라고 했더니 계속 안된다고만 하셔서 약간 겁을 먹었었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장난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본격적인 장난의 시작은 ‘감바디차스’다. 몇 주 전부터 아저씨께서 밀고 계신 유행어 같은 거다. ‘감바디차스’가 안녕하세요의 몽골어인 ‘생 배노’와 같은 말이라고 하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진짜냐고 몇 번을 물었는데 진짜라고 하긴 하시는데 이 말을 아는 직원분들도 계시고 모르는 직원분들도 계신다!!! 도대체 ‘감바디차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래도 진짜라고 믿고 아침에 다른 분들께는 ‘새흥 아마르스노~?’라고 안부를 여쭙고 바야르 아저씨께는 ‘감바디차스’를 우렁차게 외친다. 그럼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으신다. ‘감바디차스’를 잘 익혀서인지 요즘은 또 새로운 듣는 말을 반복하신다. 이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까먹었는데… ‘감바디차스’처럼 몽골어 같지 않은 그런 말이다. 사투리인가? 흠, 궁금하다.
그리고 며칠 전에 신규직원이 두 분 오신 날이 있었다. 그날 출근부 작성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좀 있다가 ‘치 바야르’라는 사람이 올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에이~~ 이런 표정을 지으니 진짜라고, 자신은 처 바야르이고 오는 사람은 치 바야르로 조림지에 바야르가 두 명이라고 너무 억울한 표정으로 얘기하시길래 또 속았다… 저기 언덕너머에 오고 있다고 안보이냐고 그러셨는데… 언덕이 도대체 얼마나 먼 걸까…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치 바야르 아저씨는 오지 않으셨다. 아, 아직 오고 계시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돈드고비 조림지 대표 장난꾸러기 바야르 아저씨와의 재미난 일화였다.
[머리 부딪히기의 달인]
일을 할 때 얼굴에 태양을 조금이라도 덜 받기 위해 모자를 쓴다. 그런데 모자가 그렇게 익숙하지 않아서 모자를 쓰면 앞이 잘 안 보인다. 그래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온 동네방네 머리를 박고 다녔다. 게르에 들어갈 때는 물론, 나올 때도 예외는 없었고. 도대체 매번 똑같은 게르를 들어가고 나오는데 왜 매번 부딪히는 걸까…? 5조림지 철문 위에 철사 한 줄이 있는데 거기에도 박고… 적고 보니 내 머리가 많이 바빴구나 싶다. 한 날은 일을 끝내고 집에서도 부딪혔다. 우리 집은 2층 계단 밑을 지나야 화장실을 들어갈 수 있다. 2층 계단 밑부분이 비스듬히 되어있는데 좀 낮은 부분에 엄청 세게, 머리를 정말 그냥 갖다 박았다. 그리곤 깨달았다. 내 머리는 정말 단단하다는 것을… 진짜 골이 흔들린 거 같았는데 멀쩡했다^^! 집에서 심하게 부딪힌 일을 겪고 이제는 좀 조심해서 다닌다. 게르에 들어가고 나올 때 푹~~~ 숙이고 다니고, 항상 위를 잘 보고 다니려고 노력한다. 이제 그만 부딪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