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현아. 형이다.
벌써 우리가 파견된 지 두 달이 훌쩍 지났구나. 그곳은 어떻니? 많이 덥진 않니? 하는 일에는 보람을 느끼고 있니? 같이 일하는 분들은 어떻니? 잘 해 주시니?
어제 한 친구가 중도귀국했어. 같이 합숙교육을 할 때, 예전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이야기를 하며 눈이 반짝 거리던 친구였었기에, 그 소식이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 원인은 단체와의 소통이었지. 일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어. 그 친구는 너무나 외롭게 방치되었던 거야.
요즈음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들으면, 비단 그 친구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부상을 당했는데 배려 받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고, 의욕 넘치게 시작한 기획을 묵살 당하는 친구도 있었고, 단체 자체가 없어질 위기에 처해서 길을 잃은 친구도 있었거든.
‘다행히’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너무 미안하지만,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저번 주는 몽골의 식목일이었는데, 주민팀장님과 내가 식목일 행사를 주관했었어. 정확히는 주민팀장님이 다 하셨지. 거기에 내가 조그마한 부가기획안을 써서 제출했더니 그것도 잘 수리가 되어서 다음 주에는 식목행사에 참여해준 단체들을 다 찾아가서 만나보며 인사를 드리고 선물을 드릴거야. 단순히 일회성으로 끝나는 행사가 아닌 지속적인 교류로 이어지는 소통의 확장이 그 기획안의 중심이었거든.
문득 생각해보면, 마을 주민들이 식목행사에 초청되었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도 초청받아 온 것이 아닐까? 우리 조림지가 마을 주민들을 식목의 장으로 초청했던 것처럼, 어떤 면에서 각 단체들도 우리를 봉사의 장으로 초청한 것 아닐까? 여러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푸르고 푸르렀던 우리의 의욕들이 점점 상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그리고 난 그게 너무나 아쉬워. 실은 우리 아직 많이 미숙하잖아. 아는 것도 없잖아. 그런 우리와 누구든 차근차근 함께 걸어가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황들이 실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파. ‘어쩔 수 없다.’ ‘그래왔다.’ 라는 이야기로 우리의 부푼 꿈들은 무시된 지 오래고, 노동력으로써만 우리가 기능하길 종용하고 있는 것만 같아. 냉정히 말해서 우리는 공짜잖아.
말한다고 해서 변할까? 그렇지 않을 거야. 지금까지 침전되어온 일의 양상, 혹은 부패한 방향성, 그 모든 것들이 우리가 있을 1년의 시간 안에 바뀌는 것이 과연 쉬울까? 아니, 절대 그렇지 않을 거야. 조직은 차라리 우리의 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힘과 노력을 차라리 조금이라도 사업을 이뤄가는 데에 쓸 거야. 그게 더 효율적이고 결과가 확실하게 보이는 길이니까. (그렇지 않은 조직이라면 이런 고민 자체를 할 필요가 없었겠지.)
말한다고 해서 변할까? 분명히 변할 거야. 네 때가 아니라 그 다음 때에. 혹은 그 다음 다음 언젠가는 말야. 옳지 못한 재판관이라도 끈질기게 상소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지겨워서라도 결국 들을 수밖에 없듯이, 우리 또한 계속 목소리를 낸다면 그들도 언젠가는 들을 거야. 나는 오늘 우리가 그 한 번의 상소가 되면 좋겠어. 당장 내 때에 무언가 변해서 나에게 혜택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우리 다음 사람이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게 둘 수는 없는 거잖아.
힘들겠지만 기억해봐. 처음 네가 이 길을 결단했을 그 때를. 난 네가 그 때의 순수함을 잃지 말아줬으면 해. 냉소적으로 변하지 말고 순수하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주었으면 해. 그 순수함에게서 고개를 돌려 포기하는 그 순간 우리도 우리가 아파했던 그 상황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거야. (옳지 못한 처우를 받으면서까지 그 자리를 지키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그것이 옳지 않다면, 그곳을 나감으로써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거니까.) 나는 당장 네가 그만두고 안 두고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네 마음을 지켜달라는 거야. 어떤 상황이 닥쳐도, 관계 중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네 그 순수한 마음은 마땅히 지켜질 가치가 있어. 이렇게 말하는 내 자신도 너무 작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이 치켜들어야 하는 우리의 깃발은 아마 다른 것이 아닌 우리의 그 숭고한 순수함이 아닐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밖에서는 물장난이 한창이야. 잠시 배수관이 터져서 생긴 시간의 틈새에서 사람들이 서로 물을 뿌리며 깔깔대고 있어.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하얀 햇살, 걸을 때마다 사락거리며 일어나는 노란 흙, 움터오는 초록빛 나무와 풀들, 그 안에 웃음소리가 가득하고 있어. 잠시 이 순간이 지나가면 또 우리는 땀을 흘리며 일을 할 거야. 하지만, 환히 빛난 이 순간은 우리의 마음속에 심겨 뿌리를 내리겠지.
두 달 동안의 시간 동안, 네게도 분명 그런 날이 하루라도 있었을 거야. 네 마음속에 심긴 그 추억이 분명 있을 거야. 그것을 기억함으로 추억에게 한번 물을 줘 보는 게 어때. 힘들 때마다 돌이켜 생각하며 추억에게 계속 물을 주는 거야. 그러면 어느새 자란 그 추억은 뿌리에 스스로 물을 머금어, 말라져만 가던 네 마음을 비옥하게 만들어서, 조금 더 큰 숲으로 움터가게 하겠지. 그렇게 1년 모두 마치고 나면 우리의 마음속에 숲을 하나씩 품고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아마 우리는 서로의 숲을 자랑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거야.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내가 알거나 알지 못하는, 모든 동현이들아. 우리 그렇게 살아내자. 우리의 순수한 그 마음이 끝내 움트게 하자. 생각보다 싱그러운 그 향기들은 분명 너를 새롭게 하고, 네 단체를 변하게 하고,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킬 테니까. 조금만 더 힘내. 아니, 끝까지 힘내. 그리고 꼭 우리 웃으며 다시 만나자.
#몽골에서 #어떻게든 #우리에게위로를
동현아. 형이다.
벌써 우리가 파견된 지 두 달이 훌쩍 지났구나. 그곳은 어떻니? 많이 덥진 않니? 하는 일에는 보람을 느끼고 있니? 같이 일하는 분들은 어떻니? 잘 해 주시니?
어제 한 친구가 중도귀국했어. 같이 합숙교육을 할 때, 예전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이야기를 하며 눈이 반짝 거리던 친구였었기에, 그 소식이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 원인은 단체와의 소통이었지. 일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어. 그 친구는 너무나 외롭게 방치되었던 거야.
요즈음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들으면, 비단 그 친구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부상을 당했는데 배려 받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고, 의욕 넘치게 시작한 기획을 묵살 당하는 친구도 있었고, 단체 자체가 없어질 위기에 처해서 길을 잃은 친구도 있었거든.
‘다행히’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너무 미안하지만,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저번 주는 몽골의 식목일이었는데, 주민팀장님과 내가 식목일 행사를 주관했었어. 정확히는 주민팀장님이 다 하셨지. 거기에 내가 조그마한 부가기획안을 써서 제출했더니 그것도 잘 수리가 되어서 다음 주에는 식목행사에 참여해준 단체들을 다 찾아가서 만나보며 인사를 드리고 선물을 드릴거야. 단순히 일회성으로 끝나는 행사가 아닌 지속적인 교류로 이어지는 소통의 확장이 그 기획안의 중심이었거든.
문득 생각해보면, 마을 주민들이 식목행사에 초청되었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도 초청받아 온 것이 아닐까? 우리 조림지가 마을 주민들을 식목의 장으로 초청했던 것처럼, 어떤 면에서 각 단체들도 우리를 봉사의 장으로 초청한 것 아닐까? 여러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푸르고 푸르렀던 우리의 의욕들이 점점 상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그리고 난 그게 너무나 아쉬워. 실은 우리 아직 많이 미숙하잖아. 아는 것도 없잖아. 그런 우리와 누구든 차근차근 함께 걸어가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황들이 실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파. ‘어쩔 수 없다.’ ‘그래왔다.’ 라는 이야기로 우리의 부푼 꿈들은 무시된 지 오래고, 노동력으로써만 우리가 기능하길 종용하고 있는 것만 같아. 냉정히 말해서 우리는 공짜잖아.
말한다고 해서 변할까? 그렇지 않을 거야. 지금까지 침전되어온 일의 양상, 혹은 부패한 방향성, 그 모든 것들이 우리가 있을 1년의 시간 안에 바뀌는 것이 과연 쉬울까? 아니, 절대 그렇지 않을 거야. 조직은 차라리 우리의 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힘과 노력을 차라리 조금이라도 사업을 이뤄가는 데에 쓸 거야. 그게 더 효율적이고 결과가 확실하게 보이는 길이니까. (그렇지 않은 조직이라면 이런 고민 자체를 할 필요가 없었겠지.)
말한다고 해서 변할까? 분명히 변할 거야. 네 때가 아니라 그 다음 때에. 혹은 그 다음 다음 언젠가는 말야. 옳지 못한 재판관이라도 끈질기게 상소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지겨워서라도 결국 들을 수밖에 없듯이, 우리 또한 계속 목소리를 낸다면 그들도 언젠가는 들을 거야. 나는 오늘 우리가 그 한 번의 상소가 되면 좋겠어. 당장 내 때에 무언가 변해서 나에게 혜택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우리 다음 사람이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게 둘 수는 없는 거잖아.
힘들겠지만 기억해봐. 처음 네가 이 길을 결단했을 그 때를. 난 네가 그 때의 순수함을 잃지 말아줬으면 해. 냉소적으로 변하지 말고 순수하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주었으면 해. 그 순수함에게서 고개를 돌려 포기하는 그 순간 우리도 우리가 아파했던 그 상황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거야. (옳지 못한 처우를 받으면서까지 그 자리를 지키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그것이 옳지 않다면, 그곳을 나감으로써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거니까.) 나는 당장 네가 그만두고 안 두고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네 마음을 지켜달라는 거야. 어떤 상황이 닥쳐도, 관계 중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네 그 순수한 마음은 마땅히 지켜질 가치가 있어. 이렇게 말하는 내 자신도 너무 작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이 치켜들어야 하는 우리의 깃발은 아마 다른 것이 아닌 우리의 그 숭고한 순수함이 아닐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밖에서는 물장난이 한창이야. 잠시 배수관이 터져서 생긴 시간의 틈새에서 사람들이 서로 물을 뿌리며 깔깔대고 있어.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하얀 햇살, 걸을 때마다 사락거리며 일어나는 노란 흙, 움터오는 초록빛 나무와 풀들, 그 안에 웃음소리가 가득하고 있어. 잠시 이 순간이 지나가면 또 우리는 땀을 흘리며 일을 할 거야. 하지만, 환히 빛난 이 순간은 우리의 마음속에 심겨 뿌리를 내리겠지.
두 달 동안의 시간 동안, 네게도 분명 그런 날이 하루라도 있었을 거야. 네 마음속에 심긴 그 추억이 분명 있을 거야. 그것을 기억함으로 추억에게 한번 물을 줘 보는 게 어때. 힘들 때마다 돌이켜 생각하며 추억에게 계속 물을 주는 거야. 그러면 어느새 자란 그 추억은 뿌리에 스스로 물을 머금어, 말라져만 가던 네 마음을 비옥하게 만들어서, 조금 더 큰 숲으로 움터가게 하겠지. 그렇게 1년 모두 마치고 나면 우리의 마음속에 숲을 하나씩 품고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아마 우리는 서로의 숲을 자랑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거야.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내가 알거나 알지 못하는, 모든 동현이들아. 우리 그렇게 살아내자. 우리의 순수한 그 마음이 끝내 움트게 하자. 생각보다 싱그러운 그 향기들은 분명 너를 새롭게 하고, 네 단체를 변하게 하고,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킬 테니까. 조금만 더 힘내. 아니, 끝까지 힘내. 그리고 꼭 우리 웃으며 다시 만나자.
#몽골에서 #어떻게든 #우리에게위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