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그 느낌의 여러 조각들]
마지막이라 그런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떠올랐다.
1_오지 않을 것 같던 마지막이 다가왔다. 나에게 마지막은 여전히, 아니,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 후에는 오히려 이상한 부작용으로 떠나는 날이 다가오는 이런 때 가끔씩,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 없다는 강박에 휩싸인다. 그래서인지 어떤 일도, 심지어 오래 해오던 작업들도 진득하게 할 수가 없거나 손에 잡히지 않고 머릿속은 복잡복잡 시끌시끌, 마음은 둥둥 떠다니고 싱숭생숭하기만 하다. 한국에서의 삶이 기대되고 기다려지면서도 몽골에서의 생활이 아쉽고 놓기 싫기도 하다. 이런 양면적인 감정들도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혼란스럽다. 어떤 일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어떤 걸 시작할 때쯤 늘 느껴지는 느낌. 아쉬움과 두려움의 한편 잔잔히 퍼지는 설렘.?
2_짐을 정리하다 우연히 파견 초기에 많이 들었던 노래가 흘러나왔고 눈앞에 그때가 그려졌다. 그리곤 아 이랬었지, 저랬었지 하며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씁쓸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괜히 울컥하기도 했다. 11개월 동안 여기서 지내면서 정말 좋지 않은 날들이 없었다. 모든 날이 좋았다. 힘든 날이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조림지에서 힘들었던 날은 마트에서 새로 나온 과자를 발견하고 좋아했던 것처럼 그 일과 전혀 관계없는, 엉뚱한 지점에서 위로를 받았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았고. 그래서 정말 좋지 않은 날들이 없었다. 어떤 부분에서 좋지 않았다면 좋았던 부분도 반드시 있었으니까.
3_우리 집 내 방 책상 옆에는 달력이 한 장씩 붙어있다. 거기에는 일상들이 간단하게 적혀있다. 첫 출근했던 날, 주민직원분들 생일, 모래바람이 분 날, 눈이 온 날, 비가 내린 날, 휴가 날, 별이 잘 보였던 날, 처음 나무 심은 날 등등. 이건 아마 모든 짐 정리를 마치고 제일 마지막에 뗄 수 있을 것 같다. 음… 그냥 왠지 이걸 떼면 끝이 단숨에 다가와버릴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
?
4_문득 푸른아시아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때가 기억난다. 졸업 전 마지막 기말시험을 앞두고 서류 합격 전화를 받았다. 조금 늦게 연락을 받았던 터라 이미 떨어진 줄 알고 다른 곳 인턴으로 지원, 합격했었다. 하지만 출근을 이틀 앞두고 갑자기 취소 통보를 받았다. 그래서 졸업하고 그냥 김해에 내려가서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푸른아시아에서 연락이 왔었다. 신기한 일이다. 만약 인턴 취소가 되지 않았다면 오지 못했을 몽골.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다. 그땐 좀 속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행이고 고맙게도 느껴진다. 어떤 것이든 한쪽으로만 단정 지을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사는 건 정말 탐험 같다. 재밌다.?
5_여기에 와서 바질을 키웠다. 하나의 씨로 키운 바질이 몇 배에 달하는 씨를 다시 내주었다. 씨를 수확하는 데 기분이 묘했다. 그저 물을 주고 해가 잘 들어오는 곳에 놔두기만 했을 뿐인데 바질은 내게 기쁨만을 주었다. 자그마한 싹을 틔웠을 땐 귀여워서 행복했고 그 싹이 무럭무럭 자랄 땐 바라만 봐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바질을 두고 떠나려니 이런저런 걱정이 되었다. 씨를 심을 땐 마냥 신나고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어떠한 ‘생명체’가 ‘나의 것’이 되니 괜히 부담 되고 신경도 많이 쓰였다. 생명을 대하는 것과 소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6_ 차강사르가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했다. 고요했던 동네가 개학으로 활기를 띤다. 나의 생활은 끝을 향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생활은 또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각자에게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 마트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 1번 학교 축구장과 농구장에서 두꺼운 외투를 벗어두고 운동하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때 들었던 생각이다.
함께 지낸 나리 언니, 조림지 주민직원분들, 조림지 나무들, 해와 바람, 달과 별, 눈과 비, 몽골의 모든 것, 푸른아시아 직원분들 등등 모두들 덕분에 정말 모든 방면에서 ‘잘’ 지내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다들 많이많이 웃으며 즐겁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고 싶지만 적절한 게 떠오르지 않네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마지막, 그 느낌의 여러 조각들]
마지막이라 그런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떠올랐다.
1_오지 않을 것 같던 마지막이 다가왔다. 나에게 마지막은 여전히, 아니,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 후에는 오히려 이상한 부작용으로 떠나는 날이 다가오는 이런 때 가끔씩,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 없다는 강박에 휩싸인다. 그래서인지 어떤 일도, 심지어 오래 해오던 작업들도 진득하게 할 수가 없거나 손에 잡히지 않고 머릿속은 복잡복잡 시끌시끌, 마음은 둥둥 떠다니고 싱숭생숭하기만 하다. 한국에서의 삶이 기대되고 기다려지면서도 몽골에서의 생활이 아쉽고 놓기 싫기도 하다. 이런 양면적인 감정들도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혼란스럽다. 어떤 일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어떤 걸 시작할 때쯤 늘 느껴지는 느낌. 아쉬움과 두려움의 한편 잔잔히 퍼지는 설렘.?
2_짐을 정리하다 우연히 파견 초기에 많이 들었던 노래가 흘러나왔고 눈앞에 그때가 그려졌다. 그리곤 아 이랬었지, 저랬었지 하며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씁쓸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괜히 울컥하기도 했다. 11개월 동안 여기서 지내면서 정말 좋지 않은 날들이 없었다. 모든 날이 좋았다. 힘든 날이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조림지에서 힘들었던 날은 마트에서 새로 나온 과자를 발견하고 좋아했던 것처럼 그 일과 전혀 관계없는, 엉뚱한 지점에서 위로를 받았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았고. 그래서 정말 좋지 않은 날들이 없었다. 어떤 부분에서 좋지 않았다면 좋았던 부분도 반드시 있었으니까.
3_우리 집 내 방 책상 옆에는 달력이 한 장씩 붙어있다. 거기에는 일상들이 간단하게 적혀있다. 첫 출근했던 날, 주민직원분들 생일, 모래바람이 분 날, 눈이 온 날, 비가 내린 날, 휴가 날, 별이 잘 보였던 날, 처음 나무 심은 날 등등. 이건 아마 모든 짐 정리를 마치고 제일 마지막에 뗄 수 있을 것 같다. 음… 그냥 왠지 이걸 떼면 끝이 단숨에 다가와버릴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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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_문득 푸른아시아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때가 기억난다. 졸업 전 마지막 기말시험을 앞두고 서류 합격 전화를 받았다. 조금 늦게 연락을 받았던 터라 이미 떨어진 줄 알고 다른 곳 인턴으로 지원, 합격했었다. 하지만 출근을 이틀 앞두고 갑자기 취소 통보를 받았다. 그래서 졸업하고 그냥 김해에 내려가서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푸른아시아에서 연락이 왔었다. 신기한 일이다. 만약 인턴 취소가 되지 않았다면 오지 못했을 몽골.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다. 그땐 좀 속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행이고 고맙게도 느껴진다. 어떤 것이든 한쪽으로만 단정 지을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사는 건 정말 탐험 같다. 재밌다.?
5_여기에 와서 바질을 키웠다. 하나의 씨로 키운 바질이 몇 배에 달하는 씨를 다시 내주었다. 씨를 수확하는 데 기분이 묘했다. 그저 물을 주고 해가 잘 들어오는 곳에 놔두기만 했을 뿐인데 바질은 내게 기쁨만을 주었다. 자그마한 싹을 틔웠을 땐 귀여워서 행복했고 그 싹이 무럭무럭 자랄 땐 바라만 봐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바질을 두고 떠나려니 이런저런 걱정이 되었다. 씨를 심을 땐 마냥 신나고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어떠한 ‘생명체’가 ‘나의 것’이 되니 괜히 부담 되고 신경도 많이 쓰였다. 생명을 대하는 것과 소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6_ 차강사르가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했다. 고요했던 동네가 개학으로 활기를 띤다. 나의 생활은 끝을 향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생활은 또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각자에게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 마트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 1번 학교 축구장과 농구장에서 두꺼운 외투를 벗어두고 운동하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때 들었던 생각이다.
함께 지낸 나리 언니, 조림지 주민직원분들, 조림지 나무들, 해와 바람, 달과 별, 눈과 비, 몽골의 모든 것, 푸른아시아 직원분들 등등 모두들 덕분에 정말 모든 방면에서 ‘잘’ 지내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다들 많이많이 웃으며 즐겁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고 싶지만 적절한 게 떠오르지 않네요. 정말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