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08-[송상훈의 식물이야기] 열매 색깔이 같은 식물2
대다수 식물의 열매는 초록에서 시작하여 검정이나 붉은색으로 익는다. 그 과정에 노란색이나 청색 등 변이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초록으로 익는 열매는 매우 적음을 지난 회에서 살펴보았다. 이번 회에서는 청색과 보라색으로 익는 열매 식물들을 알아보겠다. 초록열매를 맺는 식물이 몇 안 되듯이 청색열매나 보라열매를 맺는 식물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진청색 열매 서양블루베리(정금나무), 검정색 열매 토종블루베리(정금나무)
건강에 매우 유익한 성분을 갖춘 블루베리는 누구나 한번쯤 맛보았을 것이다. 보통 블루베리라하면 진달래과 산앵도나무속(Vaccinium) 정금나무 열매를 말한다. 가을에 열매가 익으면서 붉은 단풍잎을 한껏 드리우는 정금나무는 토종과 외래종이 있다. ??우리가 식품으로 쉽게 접하는 블루베리는 대체로 북아메리카 원산의 서양 정금나무 열매인데 분홍색에서 점차 진청색으로 익는다.
서양 정금나무 잎은 거치가 없는 듯 보이며 잔털이 많다. 꽃은 같은 진달래과인 단풍철쭉(등대꽃), 산앵두나무 흰꽃, 들쭉나무 흰꽃, 모세나무와 비슷하게 흰색이다.
청색으로 익는 열매는 아니지만 토종 정금나무도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토종 정금나무 열매는 당연히 토종 불루베리로 불린다. 그러나 토종 블루베리는 이 외에도 여럿이다. 보통 토종 정금나무, 들쭉나무, 모새나무를 많이 거론하는데 토종 정금나무와 모새나무 열매는 진청색이라기보다는 검정색에 가깝게 익는다. 열매의 생김새는 다 고만고만하다.
점차 아로니아(장미과. 블랙초크베리Black Chokeberry)처럼 검정색으로 익는 토종 정금나무의 꽃은 들쭉나무의 붉은꽃, 산앵두나무의 붉은꽃 비슷하게 황갈색이다.
줄기와 잎 앞면에는 거친 털이 흩어져 있다. 잎에는 자잘한 거치가 있고 잎자루는 짧다. 꽃이 묵은 가지 끝에 몇 개 피는 산앵두나무와 달리 새가지 끝에 줄지어 피는 특징이 있다.
대체로 온화한 기후인 남쪽지방에서 서해의 안면도까지 분포해 자생한다.
보통의 식물들은 PH6.5~7.5의 중성토양에서 잘 자라지만 정금나무를 비롯한 진달래과 식물들은 PH4~5의 산성토양에서 잘 자란다. 참고로 산성 범위는 PH0~6.5이고 알칼리성 범위는 7.5~14이다. 정금나무는 잔뿌리 식물이기에 단단한 토양에서는 번식이 어렵다. 산성토양이면서 흙이 부슬부슬한 사질토양이 최적 환경이다.
같은 나무라 해도 야생의 혹독한 환경을 견디면서 자라는 정금나무의 약성이 훨씬 좋다는 보고가 있다. 2010년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야생 블루베리는 크렌베리와 블랙베리, 라스베리 등 20여 종의 다른 열매와 비교할 때 100g당 항산화 지수가 가장 높았다. 야생 블루베리의 대표적인 장점은 풍부한 안토시아닌과 폴리페놀에 있으며, 이는 염증을 방지하고 암을 예방하는 항산화 작용을 하며 안구 안정에도 깊이 관여한다.
최근의 국내 연구에 따르면 토종 정금나무가 서양 정금나무보다 더 유용한 성분이 높다 한다. 정리하면 외래종보다는 토종이, 그 중에서도 야생종이 가장 좋은 열매를 맺는다.
진청색열매 토종블루베리 들쭉나무, 검정색 열매 토종블루베리 모새나무
진달래과의 들쭉나무도 열매가 푸르게 익는다. 여기서는 토종 블루베리로 통칭되는, 그러나 열매는 검정으로 익는 모새나무까지 함께 살펴보자.
들쭉나무는 한대지방에 자생하는 높이 1m 관목이다. 주로 북한에 자생하지만 설악산 높은 봉우리에서도 발견된다.
갈색가지에 어긋나는 무거치의 둥글고 작은 잎을 갖고 있는데 잎이 작아서 마치 회양나무를 늘려논 듯한 느낌이다. 잎 뒷면은 흰편이고, 꽃은 정금나무처럼 종모양이며 희거나 붉은 편이고 6월에 피고 9월에 열매 맺는다.
들쭉은 우리에게 술로 친근해진 이름이다. 남북 교류가 트이던 2000년 초 무렵 북한 제품이 소개되던 때 술꾼들의 입에 오르내린 술이 바로 들쭉술이다. 백두산에서 자생하는 들쭉나무 열매를 주원료로 하며 귀한 손님에게만 대접한다는 들쭉술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의 건배주이기도 했다. 약성은 정금나무와 다르지 않다.
모새나무는 남쪽 섬에 주로 자생하며 높이 3m 정도 자라는 진달래과 식물이다. 아열대성 식물이므로 일본과 중국남부, 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 등에 분포되어 자생하는데 석회가 없는 산성토양을 좋아한다.
어긋나며 거치 있는 혁질잎이 길쭉해서 다른 블루베리류와 구별이 쉽다. 줄기는 점차 붉어지며 껍질이 너덜너덜 벗겨진다. 역시 상기 나무들과 비슷한 꽃이 6월쯤 피고 9월쯤 열매 맺는다.
이름은 부드러운 흰모래 또는 흰쌀을 의미하는 ‘모새’에 나무를 의미하는 제주 방언 ‘낭’에서 유래하였는데 흰꽃이 상상을 자극했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토종 블루베리 외에도 더 많은 토종 블루베리가 있다. 역시 진달래과인 산매자나무, 산앵도나무, 지포나무, 월귤(땅들쭉, 월귤나무, 땃들쭉), 애기월귤(애기땅들쭉), 넌출월귤(덩굴월귤, 덩굴땅들쭉) 등도 모두 블루베리라 이름하여도 무방하다.
사나운 생김새지만 열매는 유용한 뿔남천, 고비잎뿔남천
요즘 도로변 화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 남천(남천촉 南天燭. 남천죽 南天竹, 매자나무과)이다. 중국 원산의 상록식물인데, 약간 두툼하면서 거치가 없는 좁고 끝이 뾰족한 타원형의 잎이 특징이다. 죽이라는 이름처럼 어린 줄기는 대나무 줄기 비슷한 느낌을 준다.
여름에 흰꽃이 피고 열매는 붉어지는데 눈에 잘 띄기에 관상용으로 많이 식재한다. 식물 전체를 약재로 활용하는데 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으면서 붉은 단풍을 선사한다.
그러나 여기 소개할 주인공은 붉은 진청색 열매를 갖는 매자나무과의 뿔남천과 고비잎뿔남천이다. 남천도 굵은 줄기에 코르크가 발달하지만 뿔남천과 고비잎뿔남천은 코르크 발달이 더 분명하다.
특히 고비잎뿔남천은 코르크가 매우 뚜렷하고 크고 높게 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수목원에 가야 볼 수 있는 귀한 몸이다.
고비잎뿔남천이 대만과 중국 원산이라는 정보가 있지만 둘 모두 남아프리카에서 윈난성, 쓰촨성, 미얀마 북동부, 대만으로 귀화한 식물로 본다.
이들은 매우 사납게 가시 돋은 잎을 갖고 있는데 잎이 마치 감탕나무과의 구골나무나 호랑가시나무처럼 각이 져서 뿔이란 이름이 붙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추운 계절에 매자나무꽃 비슷한 노란꽃을 피우는데 특히 고비잎뿔남천의 화서는 크고 탐스럽다.
이들 열매가 블루베리와 닮았는가? 비슷하다. 최대 1cm 정도에 이르는 열매 또한 훌륭한 식품이다.
이들 식물 외에 서양자두도 진청색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이제 보라색 열매 식물을 알아보자. 초본으로 보자면 비진도콩의 열매인 꼬투리와 가지(가지과)에서 보라색 열매를 볼 수 있고, 개량된 피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열매는 아니지만 뿌리와 잎을 개량한 십자화과의 채소류 식물에서도 보라색을 만날 수 있는데 무, 당근, 배추, 브로콜리가 그렇다. 백합과 양파도 자색양파로 개량되어 식탁에 오른다. 그러나 목본의 보라색 열매는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자색포도가 제법 비슷한 색깔을 띠지만 여기서는 더 선명한 열매 몇 종을 살펴보겠다.
무서운 이름, 아름다운 열매, 작살나무
산과 들, 도로변, 공원 어디에서나 자주 마주치는 식물이 작살나무다. 이 나무 열매는 잎이 떨어진 겨울에도 그 찬란한 색감을 뽐내는데 이처럼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열매가 또 있을까 싶다.
작살나무에도 종류가 있는데 작살나무, 좀작살나무, 털작살나무(새비나무), 왕작살나무가 있다. 공원과 도로변에서 마주치는 개체는 대부분 좀작살나무다. 각 개체간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작살나무는 한자로는 자주(紫珠), 즉 자주색 구술나무라 한다. 학명은 Callicarpa japonica Thunb.인데 Callicarpa는 그리스어로 ‘아름답다’는 뜻의 ‘callos’와 ‘열매’라는 뜻의 ‘carpos’의 합성어다. 역시 눈에 띄는 열매가 이름의 연원이 되었다.
이 식물의 특징은 원줄기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두 개씩 정확히 마주 보고 갈라지며 그 중앙으로 다른 가지가 나온다는 점이다. 그 모양이 물고기 잡는 도구인 작살처럼 보여서 우리 이름은 작살나무다. 한편 작살나무 열매가 모두 자주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열매가 하얀 흰작살나무도 있다.
초여름에 잎겨드랑이에서 연한 자주색의 자잘한 꽃들이 피는데 그 결실은 경이롭다. 전체적인 수형은 개나리나 미선나무처럼 비슷하게 줄기가 덩굴처럼 늘어진다.
잎은 장타원형인데 밑부분이 더 좁으며 잔 거치가 있고 잎 뒷면이 까칠해서 개나리와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열매와 줄기, 꽃 모두 예로부터 부인과질환과 신장질환에 사용했다.
꽃잎이 없는 꽃의 결실 무화과
서아시아 원산인 무화과나무(뽕나무과)는 꽃이 피지 않는데 열매를 맺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꽃 없이 열매를 맺는 식물은 없다. 겉씨식물(침엽수. 은행나무)의 경우 꽃은 아니지만 꽃의 역할을 하는 암구화수와 수구화수가 있어서 종자를 맺고 번식하지만 엄밀히 말해 씨앗이지 열매는 아니다.
열매란 씨앗을 과피로 감싸고 있는 것을 말하므로 속씨식물에만 해당되는 용어다. 열매에는 참열매와 헛열매가 있다. 보통 밑씨를 둘러싸고 있는 씨방이 오롯히 발달해 형성되면, 보다 정확히는 씨방벽이 과피로 발달하면 참열매라 하고, 꽃받침이나 꽃턱, 꽃대가 발달해 형성되면 헛열매라 한다. 꽃턱은 꽃받침과 암술과 수술과 꽃잎을 받치는 부분이며 꽃자루를 포함하기도 한다.
참열매는 복숭아, 살구, 매실, 토마토, 수박, 호박, 가지, 오이, 감, 귤, 밤, 포도 등을 말한다. 우리가 선호하는 사과와 배는 꽃턱이 발달한 헛열매다. 특히 딸기의 경우 깨처럼 박혀있는 씨앗처럼 보이는 것들이 참열매이며 나머지는 꽃턱인 헛열매다. 무화과도 딸기와 다르지 않다. 석류는 암꽃의 꽃받침이 발달한 헛열매고 파인애플은 꽃대가 발달한 헛열매다.
이와는 다른 분류로, 홑열매와 겹열매가 있다. 홑열매는 1개의 씨방에서 생긴 열매를 말하고, 겹열매는 여러 개 꽃이 성숙하여 하나로 뭉친 듯 보이는 열매를 말한다. 우리가 자주 보는 상당수 과일이 홑열매에 해당하지만 오디, 무화과는 겹열매이다.
무화과나무 열매에 대해 더 상술하면, 천선과, 모람, 우담화처럼 꽃잎이 없는 안갖춘꽃이고 암꽃 수꽃이 따로 피는 단성화다. 꽃이 필 무렵 꽃받침과 꽃턱을 포함한 꽃자루가 자루처럼 비대해져 수많은 작은꽃들이 주머니 속으로 말려든다. 수분은 말벌을 통해 이루어지고 자잘한 꽃이 피지만 꽃턱과 꽃자루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즉 꽃턱과 꽃자루가 꽃을 품은 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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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는 청색에서 점점 붉어지다가 보라색으로 익는다. 무화과가 익을 무렵이면 사람보다 더 부지런히 개미들이 줄을 짓는다. 달콤한 과일과 그 향기에 취해 줄지어 무화과 속을 드나든다. 비록 곤충이 먼저 방문하지만 신석기 유적에서 무화과 흔적이 발견될 정도로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의 주요 식량이기도 하다.
혈압과 소화불량, 부인과질환, 변비에 효과 있다.
무화과나무 잎은 사람 손 비슷하게 생겼는데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을 가리던 인류 최초의 의복이기도 하다. 가지를 자루면 나오는 유액은 살충효과 있어 재래식 화장실에 사용하기도 하지만 몸에 돋은 사마귀 밑에 상처를 내고 떨어뜨리는데 활용하기도 했다. 이런 비슷한 살충효과는 청미래덩굴(망개), 망개나무, 송악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밖에 최근 우리 식단에 자주 오르는 백향과(Passion Fruit 패션후르트. 시계꽃 열매)도 자주색으로 익는다. 실물은 보지 못했지만 스타애플이라 불리는 카이미토 푸르트(Caimito fruit)라는 열대과일도 그렇다.
‘열매 색깔이 같은 식물’은 다음 회에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