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송상훈의식물이야기

vol.107-[송상훈의 식물이야기] 열매 색깔이 같은 식물1

프로필_송상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고산엔 이미 단풍이 절정이고 도시도 채색이 짙어지는 중이다. 산중이건 도심의 공원이건 아파트건 한 여름 뙤약볕을 감수한 식물들은 단풍과 함께 저마다의 결실을 뽐내면서 후일을 기약하고 있다.

이번 회부터는 결실 색깔이 같은 식물을 알아보도록 한다. 열매의 색깔은 크게 검정색, 붉은색, 노란색, 흰색, 갈색, 청색, 초록색 정도로 나눌 수 있다. 보는 이와 조도 환경에 따라 검정색에는 짙푸른 청색을 포함하고 갈색에는 검붉은색을 포함되기도 할 것이기에 다분히 필자의 주관적 판단이 작용한 것임을 미리 알린다. 또한 초기 생성된 열매와 자연 낙하하기 전의 열매색이 다른데 필자는 늦가을의 열매색을 기준으로 하겠다. 독자들이 한두 번쯤 마주쳤을 식물들은 서로의 시간을 달리하므로 기억과 다소 다르더라도 이해를 당부한다.

식물의 종류가 너무 많기도 하고 필자의 능력이 초라하므로 폭을 대폭 줄여 살펴본다. 과피와 과육이 없고 오로지 씨만 맺는 겉씨식물(침엽수, 은행나무)을 제외하고 열매 맺는 속씨식물 중심으로 살핀다. 속씨식물 중에서 초본을 제외하며 궁금해 하지 않을 버드나무류는 제외한다. 열매에 날개가 있는 경우지만 씨라고 오인되는 느릅나무과와 자작나무과, 단풍나무과도 제외하고 살펴보겠다.

가장 많을 열매색은 아마도 붉은 계통일 것이고 다음이 검정, 갈색 순인데 많은 식물군이 산재하므로 선택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이와는 다른 색깔의 열매식물부터 먼저 다룰 것인데 초록부터 시작한다.

 

달콤한 초록의 기억, 다래

초록열매하면 매실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이 때 매실은 아직 익지 않은 상태다. 익은 매실은 노란색에 가깝다. 그렇다면 초록으로 열매가 익는 식물은 무엇일까?
먼저, 입에 군침을 돌게 하는 다래(다래나무과)가 떠오른다. 다래는 깊지 않은 산에서도 자주 만나는 덩굴식물이다. 칡처럼 바위와 나무를 감고 오르는데 덩굴이 매우 굵고 수피가 거칠게 벗겨진다.
산행 중에 다래나무를 만나면 으레 줄기를 흔들어 다래를 먹어 본다. 그 때마다 푸른 산대추라 여기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피어나곤 한다.

초봄 무렵 다래 줄기를 자르면 달콤한 수액이 생각 이상으로 많이 나오는데 물론 식용한다. 다래에는 세 종류가 있다. 다래, 쥐다래, 개다래다. 다래와 쥐다래는 열매가 초록으로 익고 맛이 달콤하다. 개다래는 열매는 점차 주황색으로 익는데 매우 쓰다. 여기서는 초록열매를 맺는 다래와 쥐다래 그림을 첨부한다.

꽃이 피기 전에는 잎으로 구별 가능하다. 쥐다래는 초록잎과 분홍잎, 흰 잎이 섞이며, 개다래는 초록잎과 흰 잎이 섞인다. 잎의 색변이는 수분 시기에 곤충을 유혹하기 위함이다. 꽃에도 차이가 있다. 다래꽃밥은 검정색이지만 쥐다래와 개다래꽃밥은 노란색이다.

1다래

2쥐다래

모든 다래순은 매우 맛있는 봄나물이다. 나물 색이 한나절이면 변하므로 산행 중 채취한 나물은 바람이 잘 통하도록 보관했다가 바로 무쳐 식용하거나 살짝 데쳐 잘 말려서 묵나물로 섭취한다. 다래와 쥐다래는 갈증해소에 좋고 염증치료와 간질환에 도움이 된다. 향이 좋아 술로 담궈 마셔도 좋고 청을 내려 차로 마셔도 좋다.
맛이 쓴 개다래는 부인과질환과 신장질환에 좋고 피로회복에도 좋다. 개다래 열매에 풀잠자리가 알을 까서 변형된 열매, 즉 충영(벌레집)은 특히 통풍이 유효하다고 알려져 인기 있다.

 

건강의 상징, 가래나무와 호두나무

정월 대보름의 부럼깨기 풍습은 지금도 전해진다. 부럼깨기는 잣, 밤, 호두 등 견과류를 입으로 소리 나도록 깨무는 것인데 일년 내내 부스럼에 걸리지 말라는 의미이다. 견과를 섭취하면 건강에 이롭다는 사실이 풍습에 반영된 것일 게다.

호두나무와 가래나무는 모두 가래나무과 식물이다. 호두는 세계 10대 슈퍼식품이기도 하니 가래 또한 그와 같으리라. 앞에 다래덩굴 수액을 거론했지만 가래나무(추자나무)의 수액은 특히 폐에 도움 준다 하니 호두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필자 유년기에 할아버지들 손에서 가래나무나 호두나무 종자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종자 두개를 한 손에 쥐고 굴리다 보면 악력도 커지고 지압효과가 있어 건강에 도움이 되기에 유행했던 풍습이다. 조선시대에도 정월 대보름에 임금 건강을 위해 호두를 선물했다는데 실제로 이 풍습은 뇌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연구 보고서가 있다.
최근에는 골이 깊은 호두종자와 호두보다 단단한 종자껍질이 단단한 가래종자를 교합한 특별한 호두종자를 개발하여 상상 이상의 비싼 가격으로 거래한다고 하니, 건강식품이면서 건강도구로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호두나무와 가래나무 모두 초록열매를 맺는다. 가래나무는 수고 20m 이상 높이 자라며 길쭉하면서 잔거치와 잔털이 있는 잎이 성기게 자라는 가지를 뻗어서 쉽게 구별 가능한데 주로 중남부 이북에 많지만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편이다.

3가래나무

호두나무는 수고 15m 정도이며 가래나무와는 달리 거치 없고 털도 없는 약간 넓은 잎을 갖고 있는데 이란 원산의 재배종이어서 주로 따듯한 남부지역 민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가래나무는 가지처럼 뻗는 한 개의 깃꼴겹잎에 7~16쌍의 작은 잎이 있지만 호두나무 2~7쌍 정도의 작은 잎이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 작은 잎 크기로만 보면 호두나무 잎이 훨씬 크고 넓다. 이 두 나무의 잎을 손으로 만지면 향긋한 냄새가 난다.

4호두나무

모두 암꽃과 수꽃이 같은 나무에서 따로 핀다. 가래나무 암꽃을 붉고 화려하지만 호두나무 암꽃은 보잘것없다. 열매로 보면 둥근 호두는 마주 달리면서 털이 없이 깔끔한데 비해 계란형 가래는 덕지덕지 달리면서 털이 있다. 둘은 모두 모양만 다를 뿐 열매의 향과 맛이 같다. 씨앗을 쪼개면 드러나는 배젖이 우리가 즐겨먹는 고소한 견과인 셈이다.

수피와 과피, 씨앗 모두 신장과 폐, 뇌, 심혈관에 좋고 세균 박멸효과가 좋다. 뿌리와 씨, 수피 모두 약재로 사용한다. 씨앗이 단단해서였을까? 뼈를 강하게 한다고 알려졌으며 상처 회복에도 탁월하다.

 

독특한 향과 맛을 끌어올리는 차나무

신라 흥덕왕 때 당나라 사신인 김대겸이 도입한 이래 천년이 넘도록 우리네 사랑을 받아 온 차나무(차나무과)는 교목과 개량종 관목 39종에 이르며 생명력이 매우 강한 상록식물이다. 동남아처럼 따듯한 지역에서는 수고 8m 이상으로 자라지만 동북아에서는 3m 내외로 성장한다. 보성, 하동, 제주도의 대규모 차재배지에서 보는 개체는 수확을 쉽게 하기 위해 높이를 낮게 관리하지만 이들도 자연 상태로 둔다면 훨씬 높이 자란다.

차나무는 뿌리를 표토와 심토 그리고 암반층까지 수직으로 깊이 내려 독특한 향과 맛을 끌어올린다. 차나무 잎의 크기에 따라 대엽(중국종, 인도 아삼종, 미얀마종), 소엽종(중국종)이 있으며 대엽은 홍차, 소엽은 녹차 등 생산품을 달리한다. 값도 비싸고 맛도 좋은 보이차(흑차)는 대엽과 소엽 모두 사용한다는데 필자는 차에 대해 무지하다.

다도에 심취한 사람들이 소비하는 그 많은 차가 어떻게 생산 가능할까? 다른 나무와 달리 1년에 10~15번까지 새잎을 내는 차나무 특성을 알면 궁금증이 가신다.

차 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 우전, 세작(작설), 중작, 대작, 엽차로 구분하는 정도는 알고 있지만 정작 열매를 본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차나무 열매도 녹색 또는 녹황색으로 익는다. 열매는 둥글거나 사람주나무 열매 비슷하게 생겼다. 둥근 열매에는 갈색 종자 1나가 들어 있고 사람주나무 비슷한 생김새의 열매에는 종자 3개가 들어 있다.
보통의 식물은 꽃이 피고 지면서 같은 해에 열매를 맺지만 차나무는 늦가을 개화 한 다음해에 결실이 익으면서 껍질이 터진다. 그러니 차나무에서 꽃과 익은 열매를 동시에 보았다면 열매는 전해 핀 꽃의 산실이다.

5차나무

차나무는 같은 차나무과의 동백, 애기동백과 생김새가 비슷하다. 이들은 모두 서리가 내린 이후 꽃을 피운다.
동백꽃은 반쯤 개화하면서 꽃잎이 겹치고 수술들은 서로 붙어 견고한 원통형처럼 보이며 향기가 없다. 애기동백은 만개하여 꽃잎이 퍼지고 수술도 실타래 풀 듯 퍼지며 향기가 강하다. 이에 비해 차나무꽃은 둘을 섞은 느낌인데, 꽃잎은 반쯤 개화하고 수술은 퍼지며 약한 향기가 있다. 차나무는 꽃으로만 보면 노각나무꽃과 가장 흡사하다.
꽃이 질 때 동백과 차나무는 꽃이 통째로 떨어져 처연하다. 애기동백은 꽃잎이 날리듯 떨어져 벚꽃 진듯한 느낌이다.
잎에도 차이가 있다. 동백잎은 거치가 가장 잘다. 애기동백 거치도 동백보다 크지만 잘은 편이다. 이에 비해 차나무 거치는 날카롭고 분명하다. 잎 크기로 보면 차나무가 가장 작다.

초록열매를 맺는 식물은 매우 적은 편이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보는 황매화도 작은 초록열매를 맺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음 회에는 청색과 보라색 열매의 주인공들을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