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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06-[유전자 에이전트 김용범의<식물의 경쟁1>] 몽촌토성을 거닐며

김용범 프로필1

몽촌토성 1번 출구를 나와 올림픽 기념탑을 넘어서면 호수가 나온다. 몽촌 토성 해자 일부가 남아 호수처럼 되어 있다. 호수에 노란 꽃이 피는 어리어리 어리연을 뒤로 하고 왼쪽으로 가면 토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성 위에 올라가면 펼쳐지는 초원 그리고 성곽 주변에 있는 소나무 등이 있다.

소나무 잎을 보며 잎의 개수를 헤아려 본다. 리기다 소나무는 3개, 우리나라 소나무는 2개의 침엽을 가지고 있다. 잣나무는 5개다.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의 잎은 겉에 왁스층이 발달했다. 왁스는 지방 성분이 강해서 물과 상극이다.

작은 물방울을 새로 나온 침엽 위에 놓으면 거의 동그랗게 된다. 중력과 잎과의 접촉면 때문에 아랫부분이 살짝 찌그러지기는 한다. 그러나 물이 서로 당기는 장력과 왁스층의 물을 밀어내는 성질이 침엽 위의 작은 구슬을 만든다.

이때 물방울과 잎 사이에 만들어지는 각도를 접촉각이라 한다. 왁스층이 잘 유지되어 있으면 동그라지면서 접촉각이 커진다. 잎의 상태가 좋다고 판단한다. 왁스층이 벗겨지면 물방울은 옆으로 얇게 퍼진다. 동그란 구슬 형태는 사라진다. 대신 볼록렌즈같은 형태가 된다. 물이 이런 형태가 되면 접촉각은 90도 이하의 예각이 된다. 침엽이 세파에 시달려 오래되었거나 자라는 대기 환경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침엽의 왁스층이 비바람이나 대기오염물질에 의해 벗겨지기 때문이다.

실험실에서 숲의 대기 오염의 상태를 이렇게 확인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현장에서는 이렇게 확인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쉽고 간단히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소나무에 잎이 얼마나 달려있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대기 오염은 침엽수 잎의 탈락도 촉진한다. 청정한 지역의 침엽수는 최대 3년까지 나무에 달려있다. 올해 나온 잎, 작년에 나온 잎 그리고 재작년에 나온 잎 이렇게 3년간 나온 잎들이 한 가지에 붙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이런 지역은 청정하다는 뜻이다. 대부분은 작년에 나온 잎과 올해 나온 잎만 있다.

대기 오염이 심한 지역으로 가면 달라진다. 소나무 가지는 대체로 한 마디가 1년 동안 자란다. 가지의 마디를 살펴보면 쉽게 몇 년간 자랐는지 확인할 수 있다. 각 마디에 잎에 비교적 골고루 분포하는데 오염이 심한 지역에서는 금년에 나온 잎조차 별로 없다. 따라서 소나무 가지를 보면 그 지역의 대기 오염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 정성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오염이 심하다면 잎은 더 많이 떨어질 것이고 식물은 광합성을 할 수 없어 죽어버리게 된다. 몽촌토성은 1년생 잎은 달려 있지만 2년생 잎이 상당히 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양질의 대기 상태는 아니란 의미다.

소나무 잎을 확인하며 몽촌토성 성곽을 걷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롯데빌딩과 주변 건물이 숲처럼 눈에 들어온다. 현대식 건물의 숲이란 바다에 살짝 떠 있는 작은 섬 몽촌토성이다. 이 토성에 서면 언제나 떠오르는 것이 있다. 말발굽과 흙먼지 그리고 함성 소리다.

올림픽 광경이 아니다. 1500년도 더 전에 있었을 광경이다. 3만의 군대가 백제 위례성을 쳐들어 왔다. 개로왕은 장수왕의 공격을 받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죽음 앞에 선 개로왕의 심정은 어땠을까? 승리한 장수 또는 장수왕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올림픽에서 패배한 선수와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마음과 같았을까?

누군가는 경쟁에서 이겨 승리했고 누군가는 패배했다. 누군가는 기쁘고 누군가는 슬프다. 전쟁도 경쟁의 한 형태니 고구려는 승리의 기쁨에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 생각해 보면 두 나라 모두 우리 선조다. 선조들이 그렇게 서로 죽이지 못해 싸운 것이다. 경쟁 때문이다.

경쟁이 무엇인가? 무엇이길래 우리는 경쟁해야 할까? 경쟁의 사전적 정의는 “같은 목적에 대하여 서로 이기거나 앞서려고 다툼”이다. 생물은 개체 또는 개체군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서로 이기거나 앞서려고 한다. 때론 상대방이 자라지 못하게 막기도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자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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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택종 작가

이택종 작가는 강릉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꿈과 낭만 속에서 자랐다. 지난 25년간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았다. 그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삽화 및 만화작업을 했다. 현재는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웹진 ‘e행복한 통일’에 월간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사람의 경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자원이 많은 땅을 지키려고 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농업사회에서 특히 이랬다. 자신 능력으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암수를 쓰기도 하고 상대방을 헐뜯기도 한다. 이기기 위해 비열한 방법도 쓴다. 한 마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 든다. 그리고 이런 다툼에서 승리한 자가 많은 자원을 획득한다. 지난 수천 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가 이렇게 살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역사적 현장이 바로 몽촌토성이다. 고구려와 백제의 대표적 경쟁 장소다. 이 장소에 오면 난 슬픔을 느낀다. 수많은 사람의 전쟁으로 죽었을 것이기에 슬프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슬픈 것은 경쟁의 결과로 사람이 기쁨과 환희, 그리고 원한과 복수와 같은 서로 다른 감정을 가진다는 것이 더 비극적이다. 고구려와 백제는 지금 우리에겐 모두 선조 아닌가?

선조들의 기쁨과 슬픔 중 어느 쪽에 편을 들어야 할까? 비극이라는 표현 말고 달리 할 말이 잘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런 비극적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이후 백제는 웅진으로 수도를 옮긴다. 고구려와 백제의 경쟁으로 얻어진 비극이다.

우리는 경쟁을 피할 수 없다고 믿는다. 수천 년간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경쟁은 무조건 해야 하며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경쟁이 그런 것일까? 경쟁을 안 할 수는 없을까? 경쟁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해야 하는가?

역사는 심한 경쟁 속에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언제나 숲에 들어가면 싱그럽다. 식물들 사이에 경쟁은 느껴지지 않는다. 굳이 있다면 대기 앞에서 말한 오염된 환경에서 적응하는 정도가 전부인 것 같다. 그러나 그들도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사람들의 전쟁과도 같다. 서로 죽고 죽인다. 식물이 서로 사람의 전쟁 같은 경쟁을 한다고? 믿기지 않으나 사실이다. 이제 그들의 경쟁 세계로 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