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06-[엄민용 전문기자의 <우리말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22>] ‘한글’과 관련해 잘못 알려진 몇몇 이야기
오는 10월 9일은 573돌을 맞는 한글날입니다.
세계에는 6000여 가지의 언어가 있습니다. 문자로는 역사적으로 약 90개 문자가 있었고, 현재는 28개의 문자가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 문자 가운데 만든 사람과 시기 그리고 만든 목적 등이 명확히 밝혀진 문자는 ‘훈민정음’ 하나뿐입니다.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훈민정음을 1910년대 초에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한글학자들이 ‘한글’로 부르기 시작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은 “크다”를 의미하니, 한글은 곧 ‘큰 글’이라고 하겠습니다.
세계의 언어석학들은 우리의 한글을 인류 최고의 문자로 손꼽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세계적 작가 펄 벅도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자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추어올렸습니다.
하지만 한글과 관련한 과장된 거짓 정보도 적지 않습니다. 한글이 자랑스러운 문자인 것은 확실하지만, 정확한 사실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글은 과장된 부분을 빼내어도 전 세계인이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꼽는 데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글날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언론보도 중 하나가 “한글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정도로 세계가 인정한 최고의 문자”라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유네스코는 1997년에 우리의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을 뿐입니다. 아울러 이는 고문서로서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지 훈민정음의 우수성 때문은 아닙니다. 유네스코는 특정 언어나 문자를 세계문화유산 또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하지 않습니다.
또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간접 증명하는 일화로 ‘유네스코의 세종대왕 문해상’ 시상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발도상국 모어(母語)의 발전·보급에 크게 기여한 개인·단체·기구 2명(곳)에게 매년(9월 8일 문해의 날) 주어지는 상이죠.
그러나 유네스코가 수여하는 문해상에는 세종대왕 문해상뿐 아니라 공자 문해상도 있습니다. 게다가 세종대왕 문해상은 우리나라 외교통상부의 지원으로 제정됐습니다.
한글을 자랑하면서 ‘한글로 쓰지 못하는 소리가 없다’는 주장도 사실과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입니다. 외국어를 전공한 분들이라면 금방 아시겠지만, 우리 한글로는 적지 못하는 외국어 발음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 때문에 현대에 맞게 새로운 자음을 만들자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f, v, z, r, l, th’ 등의 외국어 발음을 새로운 자모로 표기토록 하자는 것입니다.
이 밖에 “한글은 이념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는 위대한 문자”라면서 ‘북한에도 한글날이 있다’고 하는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일단 북한에는 ‘한글날’이 없습니다. ‘한글’의 ‘한’은 얼핏 대한민국의 ‘한(韓)’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글이 마치 ‘한국의 글자’처럼 느껴지지요. 그래서 북한에서는 ‘한글’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대신 ‘훈민정음’ 또는 ‘조선글’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우리의 ‘한글날’을 저들은 ‘훈민정음 창제일’이나 ‘조선글 기념일’이라고 합니다. 날짜도 다릅니다. 우리는 10월 9일(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이지만, 저들은 1월 15일(훈민정음을 창제한 날)을 기념일로 삼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요. 또 ‘정다솜’ ‘이하늘’ 등처럼 한자가 아니라 순우리말로 지은 이름을 두고 ‘한글 이름’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은데요. ‘한글 이름’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고요. 앞의 예처럼 순우리말로 지은 이름은 ‘순우리말 이름’이라고 해야 합니다. 제 한자 이름 ‘嚴敏鎔’을 ‘엄민용’으로 써 놓은 것이 한글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