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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06-[송상훈의 식물이야기] 동글이잎 식물4

프로필_송상훈

이번 회에서는 교목과 관목 중 비교적 잎이 둥근 식물들을 몇 살펴보자.

가난과 화합과 부패 기억, 박태기나무

도심의 공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관목식물로 박태기나무(콩과)를 들 수 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 식물의 이름은 밥알을 뜻하는 밥태기에서 유래했다. 높이 4m까지 자라며 잎보다 먼저 꽃이 잎눈 근처에서 피는데 꽃자루 짧은 꽃이 모여 피기에 그 모습이 마치 밥알과 흡사해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꽃을 보며 밥알을 연상시켜야 했던 과거의 가난이 투영된 이름이라 이해할 수 있다.

가난했던 지난 시절의 기억들을 담은 식물이 여럿 있다. 박태기 외에도 며느리밥풀꽃이 그렇고, 쌀밥을 생각나게 한다는 이팝나무가 그러하며, 좁쌀을 튀긴 듯하다는 조팝나무도 그렇다. 사람의 허기가 작명의 기초가 된 이 식물들 외에도 동물의 끼니를 연상시키는 식물 이름도 있다. 개구리밥, 꿩의밥, 괭이밥, 까치밥나무, 까마귀밥나무 등이 그렇다. 그 외에도 조밥나물, 장구밥나무 등 밥과 관련된 여러 식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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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태기든 밥풀때기든 밥티든 박태기든 어찌 불러도 좋을 이 식물이 화사한 봄날 피워 올리는 진분홍꽃은 매우 화려하다. 그렇다고 꽃을 먹지는 마시라. 향이 좋고 단맛이 나지만 약간의 독성이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화려한 꽃이 지면 둥근잎이 나오는데, 왠지 어설프고 약간 부은 듯 허약한 느낌이어서 한번만 보아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보통 콩과식물들의 잎이 3출엽이나 깃꼴겹잎임을 생각하면 좀 엉뚱한 모양의 잎이기도 하다. 언뜻 보면 계수나무를 확대한 듯 보이는 박태기나무잎은 계수나무와 달리 거치가 없고 잎맥도 흐릿하다.

중국에서 이 나무는 화합을 상징한다. 옛날 3형제가 함께 살다가 서로 분가하여 재산을 나누게 되었는데 한그루 박태기나무까지 쪼개서 나누려 하자 나무가 순간 고사하였다 한다. 이를 본 형제들이 크게 깨달아 분가하려던 생각을 접자 다시 나무는 살아났고 서로 힘을 합하자 벼슬길로 열렸다 한다.

중국에서 넘어와 이젠 우리에게는 토종화 된 이 나무를 유럽에서는 유다나무(Judas tree)라 부른다. 그 시절 박태기나무는 유럽의 언덕에 많았고 높이 12m까지 높이 자랐으니 우리가 보는 지금의 박태기나무와는 차이가 있을 것인데, 예수를 배신한 유다가 자살한 나무여서 그리 명명되었다. 원래 흰꽃을 피웠다는데 유다가 자신의 가지에 목을 매고 죽자 나무 또한 너무 수치스러워서 가지도 꽃도 붉어졌다는 전설이 파생되었다. 그래서인지 유다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유럽 박태기나무는 부패와 타락의 상징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배고픔을 연상시킨 나무가 중국에서는 화합의 상징이고, 유럽에서는 부끄러움과 부패의 상징이었다니 기분이 묘하다. 이스라엘에서는 보호종이기도 하다.

아까시나무에서 알 수 있듯이 콩과 식물들은 지나치게 산성화된 토양이 아니라면 비교적 잘 자라는데 박태기나무도 그렇다. 한방에서는 식물 전체를 약으로 쓰는데, 청혈, 해독에 좋고 부인과질환에도 좋다고 한다.

 

잎맥의 골이 깊고 잎 둥근 분단나무

식물은 모습은 흡사해서 한눈에 구별되지 않음이 보통이다. 지금 소개하는 분단나무(인동과)도 유사종과 구분이 어려운 식물이다. 분단나무는 도서의 산기슭에 주로 자생한다. 곤충을 현혹하지만 생식기능이 없는 헛꽃인 유성화와 생식기능이 있는 유성화가 같이 핀다. 무성화는 꽃잎이 크고 화려하지만 유성화는 자잘하고 볼품없으며 무성화에 둘러싸인다. 유성화가 헛꽃이긴 하지만 총포(꽃받침)를 꽃처럼 보이게 하는 산딸나무나 나뭇잎을 꽃처럼 보이게 하는 개다래처럼 가짜꽃은 아니다. 그저 생식기능이 사라진 꽃이다.

분단나무의 무성화는 꽃잎 5장은 모두 크기가 같다. 이와 헛갈리는 라나스덜꿩나무(털설구화. 미국덜꿩나무. 상록덜꿩나무)나 별당나무의 무성화는 꽃잎 5장 중 1장이 작다. 분단나무는 우리 고유종이지만 라나스덜꿩나무와 별당나무는 외래종인 설구화의 원예종과 변이종이다. 라나스덜꿩나무와 별당나무는 개체의 크기 외에는 별다른 구별점을 찾기 어렵다.

한편, 조금 어려운 이야기지만 분단나무와 설구화도 같은 종이다. 분단(粉團)과 설구(雪球)는 같은 의미이다. 다만 주요 서식지가 다르고 약간의 차이가 있어 이름을 달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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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분단나무와 설구화류의 차이가 무성화 꽃잎에 있음을 보았지만 잎에도 차이가 있다. 분단나무는 잎 아랫부분이 오목하게 패이고 잎의 측맥이 잎가장자리에서 갈리는 경향이 있지만 라나스덜꿩나무와 별당나무는 오목하게 패이지 않고 측맥의 갈라짐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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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인동과 큰나무의 효능은 덜꿩나무와 비슷하다. 관절통과 근육통, 피부소양증과 습진과 부종에 효과있다. 피부미백에도 효과 있다고 알려졌다.

무성화와 유성화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우리가 잘 아는 수국(범위귀과)과 자주 보아왔을 불두화(인동과)는 무성화만 핀다. 그러니 스스로 번식하지 못한다.

산수국(범의귀과), 나무수국(범위귀과), 별당나무(인동과), 백당나무(인동과), 라나스덜꿩나무(인동과), 설구화(인동과)는 분단나무처럼 무성화와 유성화 모두 핀다.

잎으로 보자면 범의귀과는 수국과 산수국이 둥근편이고 나무수국은 길쭉한 편이다. 인동과의 백당나무와 불두화는 잎이 손바닥처럼 생겼다. 인동과의 분단나무, 별당나무, 라나스덜궝나무, 설구화는 잎맥의 골이 깊고 둥근 편이다. 물론 잎도 자세히 보면 차이가 있으나 구별이 쉽지 않다.

참고로, 상기 인동과와 범의귀과는 꽃차례만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범위귀과 꽃자례는 주로 산방꽃자례이다. 즉 펼친 우산모양이다. 인동과 꽃차례는 취산꽃차례이다. 즉 꽃대 꼭대기에 한 개 꽃이 피고 그 주위의 가지 끝에 다른 꽃들이 피며 거기서 또 가지가 갈려 다른 꽃들이 피는 형태이다. 그러나 꽃 피는 모습은 훨씬 다양해서 여러 화서가 섞이기도 한다.

 

호랑이 무늬 줄기에 잎 둥근 감절대

냇가나 산기슭의 그늘진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로 감절대(미디풀과)가 있다. 늦봄과 초여름에자잘한 꽃을 피우는데 옥수수대 또는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는 줄기는 같은 마디풀과의 싱아보다 더 굵고 속은 비어있다.

이와 줄기가 거의 같은 식물로 호장근(虎杖根. 마디풀과)이 있다. 虎杖은 ‘호랑이 지팡이’란 뜻인데 어린줄기의 붉은점이 호랑이 무늬를 연상시켜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실상 호장근과 감절대는 가까운 사촌이며 그저 잎의 생김새만 다를 뿐이다. 잎이 훨씬 크고 줄기는 푸른 왕호장근도 모두 마디풀과이며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 속성은 같다.

여기서는 감절대와 호장근의 차이만 살펴보자. 호장근 잎은 둥근삼각형이고 감절대는 둥글다. 서식지도 별 차이 없지만 따뜻한 남쪽지방에서 호장근이 더 많이 자생하는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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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절대와 호장근 어린순은 데쳐서 나물로 식용하며 우린물은 미백효과가 있어 피부에 바르기도 한다. 앞서 줄기가 대나무를 닮았다 했는데 새순이 날 때의 모습도 죽순이 올라오는 듯한 모습이다. 어린순과 성장한 잎은 날로 식용하기도 하는데, 싱아(마디풀과)처럼 잎과 줄기를 씹으면 신맛이 나므로 산행 중 마른 입에 침을 돋게 한다. 신맛은 수산(蓚酸. oxalic acid) 때문인데 이 성분은 괭이밥, 싱아, 유칼립투스, 시금치 등에 많은 일종의 식물독이다. 날것으로 과잉 섭취하면 칼슘 작용을 방해하여 신장결석과 피부병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뿌리는 소염, 이뇨, 부인과질환, 간질환 및 위장질환에 쓰이는데 특히 어혈 제거와 신장질환에 탁월하다고 알려졌다. 항균, 항바이러스 효능도 있다 한다.

 

생명력 강한 고유종, 히어리

히어리 또한 박태기나무처럼 초봄에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우리 고유종으로 높이 3~9m까지 자라는 낙엽관목인데 7개 이상 꽃들이 모여 이룬 꽃차례를 많이 피운다. 꽃차례 길이는 3~4cm에 불과하지만 여럿이 피므로 제법 풍성한 느낌을 준다.

매화나 생강나무가 필 무렵 시샘하듯 같이 피지만 이들과 달리 향기가 없다. 향기보다는 노랑색으로 곤충을 유혹하는 식물이라 하겠다.

송광납판화, 조선납판화라는 이명이 붙는데, 순천 조계산 송광사에서 처음 발견되었고 꽃잎을 만져보니 마치 벌집인 밀랍(납판 蠟瓣)을 입힌듯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꽃잎을 살피고 만져본 필자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창복 교수 식물도감에 따르면 히어리는 시오리, 시어리의 변형이라 한다. 옛날에는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 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오리나무는 오리마다 심었고, 시무나무는 스무리마다 심었다 한다. 시오리는 십리에 오리를 더한 15리(6km)마다 심었다는 뜻이 된다.

거리 측정을 위해 이들 나무를 심었다는 전언이 확실한지 알 수는 없지만 전국 곳곳에 잘 자라는 수종들이고 그만큼 생명력이 강인한 식물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특히 시무나무와 히어리는 우리 고유종이기에 더 애착하게 된다.

히어리 이름의 또 다른 유래로, 이른 봄에 피기에 새해를 연다는 의미가 반영된 이름 ‘해열이’의 변형이라 설과 노랑꽃잎이 햇볕을 만나면 희게 보인다 하여 ‘하야리’, ‘허여리’라 부르던 것이 변형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어떠하던 히어리가 다양한 곳에 편재했고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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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핀 이후 잎이 어긋나는데 둥글고 잎맥이 분명하며 거치가 있지만 털 없이 미끈하여 윤택하고 부드럽다. 잎 뒷면은 연녹색이다. 초봄의 잎은 개암나무 잎과 비슷해 보이지만 개암나무에 비해 잎맥이 가지런하고 윤기 있어 훨씬 고급스럽다. 잎의 크기는 5~12cm 정도이다.
잎과 수피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뿌리껍질은 오한과 구토를 멈추게 한다.

우리 고유종이 히어리인데 이와 비슷한 식물도 있다. 도사물나물과 일행물나물이 그렇다. 도사물나물은 일본 도사(土佐)지역의 히어리라 할 수 있고, 일행물나물은 일본 니꼬(日向)지역의 히어리라 할 수 있다. 물론 차이가 있다. 꽃송이가 모인 꽃차례는 히어리가 7~10개 정도로 가장 풍성하고 도사물나물은 6~8개 정도이며 일행물나물은 1~3개로 가장 빈약하다. 아무래도 히어리와 도사물나물의 구별이 쉽지 않은데, 히어리는 꽃차례의 꽃줄기에 털이 거의 없는 편이고 도사물나물은 털이 수북하다.

교목과 관목에는 이 밖에도 동글이 잎을 가진 많은 식물이 있다. 흔히 보는 사철나무도 그렇고, 고산에서 만나는 토종블루베리인 들쭉나무도 그렇다. 산 어디에서 흔한 참싸리나, 아주 작은 둥근잎을 가진 백자단, 홍자단도 그러하다. 무궁화 사촌인 황근도 잎이 둥굴다. 그 외에 둥근이란 이름이 들어간 식물들, 가령 둥근잎개야광나무, 둥근잎팽나무, 둥근잎눈까치밥나무 등도 보기에 따라 둥근잎을 가졌다.

지금까지 4회에 거쳐 동글이잎 식물들을 살펴 보았다. 주관적 평가가 앞선 식물탐구였지만 이 기회에 자주 접할 수 없었던 식물들을 일견할 기회였으면 족하다. 지금처럼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인류가 탄소배출량을 현격히 줄이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지 않는다면 우리 주변의 동식물들이 상당수 빠른 시간 내에 멸종하리라는 여러 보고서가 있다. 앞서 소개한 식물들이 기후변화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