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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03-[엄민용 전문기자의 <우리말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19>]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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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시작된 이후 칼과 총에 상처를 입은 사람보다 말에 상처 입은 사람이 더 많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말을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은 표현이지요.
그런데요. 우리말 중에는 자신은 그럴 뜻이 없었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말이 더러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자신이 남에게 상처를 주는지조차 모른 채 습관처럼 쏟아져 나와 더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귀머거리, 장님(봉사·소경), 벙어리 등이 대표적 사례인데요. 이들 말은 하나같이 사람을 깔보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귀머거리는 청각장애인을, 장님·봉사·소경 등은 시각장애인을, 벙어리는 언어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루바삐 솎아 내야 하는 것들입니다.

누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장님 문고리 잡기’ 같은 속담도 있는데, 왜 장님을 못 쓰느냐”고요.
맞습니다. 우리 속담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오래전, 장애를 하늘의 재앙으로 여기던 고릿적 시절에 만들어진 표현입니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세상의 주인으로 존엄함을 대접받는 세상입니다. 누가 누구를 업신여길 수 없는 세상입니다. 게다가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격’으로 써도 충분히 글맛을 살릴 수 있음에도, 이를 놓아두고 장님 운운하는 것은 분명 온당치 않은 언어습관입니다.

‘벙어리 냉가슴 앓는다’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냉가슴’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혼자서 속으로만 끙끙대고 걱정하는 것”을 뜻하는 만큼 그 앞에 굳이 ‘벙어리’를 써야 할 까닭이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냉가슴은 누구나 앓는 것입니다.

‘벙어리장갑’도 마뜩지 않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이를 북한에서는 ‘짜개장갑’이나 ‘통장갑’으로 부르는데, 남북 언어 이질화 극복 차원에서라도 이런 말들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들어 ‘손모아장갑’도 많이 쓰입니다.

‘난쟁이’라는 말도 일상언어로 써서는 안 됩니다. 일반인 평균보다 유난히 키가 작은 사람은 ‘왜소증 환자’ 또는 ‘성장장애인’입니다. 아니면 말 그대로 ‘작은 사람’이라고 부르면 되지요.

키가 작은 사람을 ‘난쟁이’로 낮잡아 부를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동화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에 제발 ‘난쟁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는 겁니다. ‘난쟁이의 나라’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따위로 쓰지 말라는 얘기죠. 누구보다 고운 심성을 가져야 할 어린아이들이 남을 얕잡아보는 말부터 배워서야, 어디 그것을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동화책에서 쓰이는 ‘난쟁이’는 그냥 ‘작은 사람’이라고 하면 충분합니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듯이 ‘소인(국)’이라고 해도 되고요.

우리말에서 아예 없어졌으면 하는 말도 있습니다. 바로 ‘문둥이’입니다. 특히 <표준국어대사전>이 ‘문둥이’를 “경상도 출신인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올려놓았는데, 이는 정말 잘못된 뜻풀이입니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것도 아니고, ‘문둥이’는 우리가 가꾸고 다듬어서 곱고 바르게 써야 할 말이 절대 아닙니다.

‘문둥병’의 한자 표기는 ‘나병(癩病)’이고, 영어로는 ‘한센(Hansen)병’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그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얘기할 때는 ‘나병환자(나환자)’나 ‘한센인’이라고 해야지, ‘문둥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됩니다.

참, ‘장애인’과 대립하는 말로 ‘정상인’을 쓰는 사람도 많은데요. 이 역시 바른 표현이 아닙니다. 자칫 장애인을 ‘비정상인’으로 생각하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지요. 장애인과 대립하는 단어는 말 그대로 ‘비장애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