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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01-[유전자 에이전트 김용범의<방귀와 분뇨의 비밀 이야기⑩>] 똥을 아는 것이 이성 능력 극대화를 향한 몸부림이라고?

김용범 프로필1

똥이란 말을 들어도 역겨운 느낌이 든다. 어쩐지 어감도 좋지 않은 것 같다. 정말 역겨운 것일까? 과연 옛날에는 똥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똥을 단지 지저분한 것으로 취급했을까? 일반적으로 초식동물은 똥을 더럽게 여기지 않는다. 토끼는 자기 똥을 먹기도 한다. 초식동물의 행동을 보면 잡식인 사람도 똥을 그다지 멀리하지 않았을 수 있다. 사람은 초식동물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옛날 사람들의 똥에 대한 의식을 찾아봤다. “콜레라 환자는 인분 또는 돼지똥을 물에 녹여서 마신다.” 경남지역에 있었던 말이다. 이뿐만 아니다. “골절에는 인분을 복용한다.”, “거의 죽음에 이른 병자에게 인분을 물에 섞어서 마시게 하면 기력이 회복되고 일시에 위험을 넘긴다고 하여 이 방법을 쓴다” 등의 주장이 있다. 조선 시대에 경남이나 함북에서 돌아다니던 말이다.

“인분을 먹다니! 으이그.” 상상만 해도 진저리가 쳐진다. 아마도 인분을 먹는 일은 절대로 못 할 것 같다. 냄새뿐인가? 보기도 싫은데 그것을 먹으라니 누가 먹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인분이 치료 효과가 있다는 말은 많이 있다. 정말 더럽고 역겨운 것이면 치료제로 썼을까? 더구나 뼈 부러졌는데 인분을 먹으라니! 지금 과학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너무나 무식한 것 같다.

똥을 치료제로 사용한 것은 우리만은 아니다. 영국에서는 쇠똥, 프랑스에서는 말똥이나 고양이 똥을 약으로 썼다. 똥을 약으로 쓰는 것은 인류가 오랫동안 가진 문화였을 지도 모르겠다. 효과가 훌륭했는지 모르겠지만 똥이 이렇게 쓰임새가 많았다. 똥이라도 먹는 것이 그냥 죽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최소한 플라시보 효과는 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현대도 똥을 약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똥을 치료제로 사용한다고? 의아하겠으나 분명히 사실이다. 항생제 장기 투여로 인하여 장염이 발생하면 치료를 목적으로 외부에서 인분 투여를 한다. 과거와 다른 것은 인분은 위생적으로 처리를 한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인분 캡슐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똥은 연료, 화장품, 사료, 울타리, 종이로 바뀔 수 있다. 이런 것을 보면 똥의 이용은 과학 지식과 도구 사용 능력의 차이일 뿐인 것 같다.

사람은 똥을 하루에 얼마나 쌀까? 일반적으로 관심이 없다. 지저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쉽게 잊는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똥을 떠올리거나 기억하기 싫은 것처럼 자신의 잘못도 그렇게 반응한다. 그래서 쉽게 잊어버리거나 기억을 하지 않는다. 남보고 잘못을 문제 삼는 이유가 이런 뇌의 작용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자기 기억에는 잘못한 것이 없거나 잘못한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싫은 것도 객관적으로 본다. 그 결과 인간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하루에 약 500g 남짓한 똥을 배출한다. 그 똥의 주성분은 음식물 찌꺼기가 일부 있으나 3/4이 대장에 사는 미생물이다. 우리가 먹은 음식물은 분해되어 대부분은 체내로 흡수되어 똥에는 없다. 일부 성분들은 미생물이 먹고 자란다. 그리고 우리 몸에 유익한 비타민 K 등을 만들어 우리에게 제공한다.

성장한 그들은 똥이란 이름으로 배출된다.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나쁜 것은 아니다. 이 똥 속에는 여러 가지 미생물이 있는데 살찐 체형의 사람과 마른 체형의 사람에 따라 미생물 종류가 달라진다. 박테로디데스 (산소가 없는 혐기성에서 자라는 그람 음성균)과 루미노구균이 많은 사람은 동물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음식을 선호한다. 그리고 프리보텔라균이 많으면 식물성 위주의 음식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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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택종 작가

이택종 작가는 강릉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꿈과 낭만 속에서 자랐다. 지난 25년간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았다. 그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삽화 및 만화작업을 했다. 현재는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웹진 ‘e행복한 통일’에 월간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먹는 음식의 종류를 바꾸면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다.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을 대장에 사는 미생물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이성이 아니라 뱃속의 미생물이 먹고 싶은 것을 결정한다고? 우리는 스스로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다고 믿는다. 상식적으로 미생물이 먹고 싶은 것을 어찌 결정하겠나? 그러나 뱃속의 미생물군을 바꾸면 먹는 음식의 종류도 바뀐다. 자신의 이성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똥 속에 들어있는 미생물들이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결정하다니 도대체 인간의 이성은 뭐야? 라고 할 것 같다. 사실 이성은 인간의 삶에서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의 인간 행동은 이성과는 무관하게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자신의 잘못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것은 얼마나 이성이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이성은 우리 삶의 뒤로 밀려나고 있다. 음식을 먹는 것조차 자신의 의지가 아닌 미생물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로부터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그리고 이럴 때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서 다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이것이 내가 똥 이야기를 하는 이유다.

똥에 있는 미생물에 대해서 안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싶겠지만 이런 사실을 알면 우린 달라진다. 이성을 이용해 본능을 이용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대장에 사는 미생물 특성을 이용해서 다이어트용 제품을 만들어 시판하기도 한다. 본능 때문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대부분 본능대로 산다. 생각하고 말하고 나의 의지로 행동하는데 본능대로 산다니 무슨 뜻인가? 라며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은 대부분 본능에서 나온다. 우리가 잘못이나 불공평 그리고 갑질을 보고 분노하지 않는가? 이것이 본능이라고? 그렇다 이것은 지극히 본능적인 행동이다. 이성의 작용은 여기에 없다. 이성이 작동하려면 잘못이나 불공평 그리고 갑질과 같은 행동을 저지르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려 해야 한다.

이렇게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꾸는 노력은 인간의 본능에는 없다. 이성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금 이성적으로 된 제도들이 많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객관적 분석을 통해서 현재의 제도가 대부분 본능적이다. 인간의 본능을 제도화한 것에 불과하다. 본능을 이성이라고 믿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과학이 밝힌 것을 통해 이런 착각에서 벗어나고 싶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이성의 노력이 있는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친구가 똥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는 없느냐고 한다. 아무래도 느낌이 지저분하고 영 개운치도 않다. 그러나 똥은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서 나는 구린내를 숨기려고 하는 것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똥 이야기가 나름의 가치가 있는 이유다. 어쨌거나 지저분한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바라볼 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숨기면 오히려 더욱 썩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