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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00-[Main Story] 2018 몽골 귀국단원 인터뷰

“몽골 사막화 현장에서의 1년, 제 인생에 큰 변화를 준 계기였어요”


느즈막한 2월 말, 날씨는 제법 따뜻해졌고 곧 봄이 오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즈음 푸른아시아에도 봄을 닮은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왔다. 하나같이 밝은 표정들을 하고.

이들은 1년 전 각자의 꿈을 안고 먼 길을 떠났다. 누구는 하던 일과 학교를 잠시 쉬고. 또 다른 누구는 사랑하는 친구들, 가족들과 잠시 안녕을 고하고. 쉽지 않은 선택이었겠지만 그들에게는 몽골에 가는 확고한 이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몽골 주민들과 함께 나무를 가꿔 생명과 땅을 살리고 싶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 했던 파견 단원들. 그들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1년간 어떤 노력을 했을까. 그리고 그 속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래저래 바쁠 텐데도 다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파견 단원들

다들 건강한 얼굴로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 반갑고 고마워요. 오랜만에 만난 푸른아시아 회원님들께 간단히 소개 부탁드릴게요.
박정현 : 반갑습니다. 다신칠링에서 조림사업을 진행하고, 울란바타르에 상경해서는 한국어교육을 진행한 박정현 단원입니다.

박지혜 : 안녕하세요. 지난 1년 동안 울란바타르 몽골지부에서 활동한 박지혜라고 합니다.
파견 전 영상, 영화, 홍보마케팅 관련 일을 10년 정도 했고, 봉사활동에 뜻이 있어 1년의 시간을 푸른아시아와 함께 했지요.

양효선 : 안녕하세요. 작년 2월 초에 졸업을 하고 몽골 돈드고비로 파견됐었던 양효선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나리 : 안녕하세요. 돈드고비 사업장에 있던 이나리 단원입니다. 몽골 이름은 Hapaa, ‘나라’라고 해서 해를 뜻해요. 그 이름을 따라 몽골에서 좋은 기운을 많이 얻었죠. 푸른아시아를 만나기 전에는 공연기획사 일, 문화재단에서 예술단체 지원 등의 일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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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신칠링 공제회분들과의 마지막 인사(박정현 단원)

파견된 지역에서 주로 어떤 활동을 하였나요?
박정현 : 다신칠링에 있을 때에는 조림장 관리 외에 심층조사, 연구를 주로 했었습니다. 겨울에는 조림사업을 할 수 없어서 수도에 올라오게 되었는데, 그 시간 동안에는 몽골지부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진행했었어요.

박지혜 : 저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 있는 몽골지부 사무실에서 활동하면서 상반기에는 에코투어 업무를, 하반기에는 캠페인TF팀으로 활동했어요.
캠페인TF팀을 하면서 어린이환경교육 진행, 몽골지부 대학부 ‘Green Friends’ 운영 및 재정립, 북&카페콘서트 개최, 몽골 인솔자원봉사자 교육 등의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수도에서의 활동은 한국에서 일하는 것과 다름없는 환경에 빡빡하기도 했지만, 다양한 활동을 하며 몽골의 가능성을 보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양효선 : 조림사업을 주로 했어요. 4월에는 신규 조림지 조성을 위한 구역 표시와 나무 심을 구덩이를 팠어요. 5월엔 나무를 심고 열심히 물을 주었죠. 돈드고비 조림지는 땅이 정말 딱딱해요. 그래서 2인 1조로 한 명은 삽을, 한 명은 창같이 생긴 뾰족한 쇳덩이를 가지고 작업합니다. 그래서 주민직원분들과 함께 작업했어요.
비슷한 일상에 지루해질 때 즈음 생존율 조사를 했어요. 그 외에 교육용 게르도 설치하고, 자체 나담이나 어린이날 행사도 진행하며 주민직원들과 함께 활동했어요.

이나리 : 조림장 전반에 대한 관리를 했어요. 현장 상황이나 업무 진행 상태 등을 끊임없이 지부와 공유하였죠. 또한, 조림지 직원들에 대한 근태와 인력관리를 하였습니다. 물론 나무가 자라는 것들을 옆에서 지켜보기도 하고, 작고 큰 현장 조림업무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조림사업이 끝나는 겨울부터는 현지 지역 주민들과 요가로 몸과 마음을 풀어내며 함께했답니다.

1년 전 이맘때였을까. 처음 몽골 파견단원들을 만났을 때, 두 눈망울 가득 설렘이 가득해보였다. 설렘과 기대를 담뿍 안은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잠시, 사실은 조금 걱정도 됐었더랬다. 1년간의 몽골살이가 쉽지만은 않을 텐데, 혹 그 기대를 꺾어버리지는 않을까 하고…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것은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1년간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말하는 표정이 들떠있었다.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것마저 하나같이 좋은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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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과 삽목가지 자르는 작업을 하며(박지혜 단원)


#감사하고 가슴 뭉쿨 했던 몽골의 하루하루

1년 파견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면요?
박정현 :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하나 꼽는 다기 보다 1년 내내 몽골을 깊이 살아볼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전에도 자주 방문했던 곳이지만, 단기간 방문하는 것과 1년을 살아보는 것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마냥 아름답게만 보였던 풍경이 다르게 해석되고, 이전에는 비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던 풍경들에서도 오히려 희망적인 면들을 볼 수 있던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박지혜 : 파견기간 중 함께 현지에 있었던 한국 활동가 이보람대리님, 황기쁨대리님, 양승희간사님과 여행을 다녔어요. 셀렝게와 테를지, 홉스골 여행을 다녀왔는데 추억이 정말 많아요. 큰손 이보람대리님 덕분에 식량만 캐리어 2개 넘치도록 챙겨가기도 했고, 노하우가 쌓여 게르 연통에 볶음밥을 해먹는 스킬도 생겼지요. 홉스골 호수에 맥주를 넣어두고 돗자리에 누워 밤하늘을 보기도 하며 편히 쉴 수 있어서 파견생활을 보내는데 큰 힘이 되기도 했어요.
에코 1팀으로 투어 오셨던 김범중 선생님께선 동해바다가 보고 싶다는 저를 위해 매 계절마다 동해 바다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고, 몽골에서 보내는 생일 땐 나모나간사님과 자원봉사자인 푸제가 ‘겨울아이’를 불러주며 생일을 축하해줬는데 정말 감사하고 가슴 뭉클한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양효선 : 저는 자연과 함께했던 날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조림사업이 마무리된 후 어느 날 저녁 산책하며 보았던 노을이 잊히지 않네요. 분홍색으로 물든 하늘은 처음이라 넋 놓고 쳐다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해요.
몽골 아이들의 웃음 소리, 비올 때 지붕에 물방울이 맺히는 모습, 창문에 별이 쏟아지던 날의 풍경 등… 많은 기억이 행복으로 남아 있어요.

이나리 : 기억에 남는 순간이 너무 많습니다만, 그럼에도 4조림지 가장 높은 언덕에서 봤던 마을과 조림지의 풍경은 쉽게 지워지지는 않을 것 같네요. 고요하고 모든 게 제자리에 있는 듯 한 느낌은 매우 온전했어요. 작고 작은 나뭇가지를 넘어 펄럭이는 풀들까지, 그 완전한 찰나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 질문이 이어지자 너나 할 것 없이 할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다. 수줍음이 많아 뜸을 들이며 조용조용 말하던 이도 이 질문만큼은 적극적이다. 꼭꼭 간직해두었던 추억의 조각들을 조심스레 꺼내 보이는 모습이 그렇게나 예뻐 보일 수 없었다. 낯선 나라에서의 경험은 더욱 소중하게 기억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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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드고비 주민들과 처음으로 다 함께 찍은 단체사진(양효선)


#힘들었던 순간, 큰 힘이 되었던 것들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박정현 : 사람 간의 관계가 제일 힘들었지요. 한국 사람이든 몽골 사람이든. 언제는 집에 도둑이 들었었는데, 잡고 보니까 알던 아이들이더라고요. 에코투어 때도 와서 한국 아이들과 잘 어울리던 아이들. 알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으니 참 힘들더라고요. 또 조림장 주민들의 다툼이 있을 때 중재했던 것도 기억나네요.

박지혜 : 무엇보다 공기가 나빠 힘들었어요. 몽골에서 ‘오타’라고 말하는 대기오염으로 인해 두통과 호흡기 문제로 병원을 갔었는데 그때 환경오염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절실히 체감했죠. 연중 여름 2~3개월을 제외하고는 거의 공기가 좋지 않다보니 호흡기와 폐가 나빠졌고, 그럴 때 한국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온 지 2주가 되었는데 초미세먼지 때문에 맑은 하늘을 보기가 힘드네요.

양효선 : 돈드고비 생활은 너무 좋았고, 업무에서도 큰 어려움은 없어서 가장 답하기 힘든 질문이네요.(하하) 굳이 꼽자면 흔히들 말하는 인생의 모든 것이 재미없어지는 ‘노잼’시기가 가끔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나리 : 꽤 있었던 것 같은데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네요. 그렇지만 봄, 여름 즈음 이전에 해왔던 데로 사고하고 느끼고 실망하고 되풀이하던 그 때가 떠오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질문하며 혼자서 깨졌다가 다시 붙이고 하며 제자리를 찾아갔어요.

힘들었던 순간순간을 어떻게 극복했어요?
박정현 : 그냥 버텼어요. 시간이 지나길 바랐죠. 그러면 마음도 담담해지니까요. 나중에 귀국하기 얼마 전 도둑질을 했었던 그 아이 어머니를 뵀어요. 그냥 제가 손을 잡았어요. 보고 싶었다고 하면서. 그러니까 그분께서 자기 아이 일 때문에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마음이 다 녹았어요. 그거면 된 거 아니겠어요?

박지혜 : 저는 현장에 함께 근무했던 이보람대리님, 황기쁨대리님, 양승희간사님과 소통하며 많이 의지했어요. 함께 현장에 있다 보니 제가 겪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고 응원해주셨죠.
무엇보다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이 누군가 혹은 어디에 도움이 되었을 때 성취감을 느꼈어요. 내가 하는 활동이 헛되지 않음을 깨닫고 다음 활동을 준비하는 원동력이 되었지요.

양효선 : 단조로운 일상에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극복했던 것 같아요. 일부러 여기저기 더 돌아다니거나 드라마를 찾아보고, 새로운 재료로 실험적인 요리를 하는 등 일상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이나리 : 힘들었던 순간순간 맛있는 것도 먹고, 재밌는 것도 보고, 친구랑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전환했지만 결국엔 1년간 그 곳에서 사계절을 지내면서 모든 게 괜찮아지더라고요. 평화로운 곳에서 자연과 가깝게 하며 제 안에 그것들을 많이 담아낸 것 같습니다.


#파견 그 후… 더욱 성숙해진 그들

파견 다녀 온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박정현 : 단단해졌어요. 제 몽골이름은 ‘하따(Хадаа)-크고 단단한 아름다운 돌’예요. 몸도 마음도 단단해지자는 마음으로 지었죠. 정말 그렇게 되었어요. 하루에 20km 남짓을 매일 걸으면서 몸도 단단해졌고, 야생이 무엇인지, 삶과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으며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관계는 얼마나 연약하며 포기와 집착의 줄다리기를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등등 경험하고 생각하며 마음도 많이 단단해졌어요.

박지혜 : 파견 다녀 온 후,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대해 한발 더 다가선 느낌이 들어요. 아직 많이 모르고 부족하지만 내가 가진 능력이 어딘가에 도움이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고, 준비가 되고 기회가 되면 다시 현장에서 활동하고 싶습니다.

양효선 : 한국에서의 모든 것이 과하다고 느껴지더라고요. 특정 지역에만 너무 과하게 모여 사는 것 같고, 길거리 소음도 너무 과하고, 차들도 너무 많고… ‘한국에서는 도대체 어디서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자연의 소중함을 몸소 느끼고 오니 생활 속에서 나도 모르게 자연을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물이 귀한 나라에서 지내보니 이전에도 머리로는 알았지만 막상 실천은 잘 하지 않았던 절약 방법들이 습관이 되었어요.

이나리 : 참 많네요! 일단 푸른아시아 단원에서 활동가가 되는 중이고요. 뭐 앞으로도 시행착오가 끊임없을 테지만, 제 자신을 좀 더 허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옥죄지 않고, 어떤 개념 안에 가두지 않고, 가장 ‘나’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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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드고비 주민들과 파이팅!(이나리)


#2019 파견 단원에게 전하는 뼈 있는 한 마디

파견단원 선배로서, 2019년 몽골 파견단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박정현 : 몽골어를 공부하세요. 부디 제발 반드시 몽골어를 공부하세요. 그곳에 갔으면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제일 먼저 우선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소통을 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제대로 되지 않을뿐더러, 서로 이해하기도 힘듭니다. 서로 이해하지 않으면 반목하기 십상이에요. 막 유창하게 하라는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적어도 몽골어를 공부하려는 당신의 모습을 그들이 본다면 그들도 더 당신에게 다가오려고 노력할 거예요. 어렵겠지만 꼭 힘내주세요!

박지혜 : 처음이라 잘 못할 수도, 부족할 수도 있고 좋은 뜻으로 하고자하는 일이 그곳 사람들에겐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좌절하고 실망하기 보단 하고 싶은 활동 마음껏 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무엇보다 건강! 건강이 최우선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항상 응원할게요!

양효선 : 건강이 가장 중요하니 무엇보다 건강히, 무사히, 잘 다녀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나리 : 여러분의 하루하루는 어떤 것들로 가득찰지, 같은 땅에서 우리는 얼마나 다르게 감각될지 많은 것들이 궁금합니다! 언젠가 만나서 나눌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일상이 다양한 빛깔로 가득차시길 바랄게요.

‘선배’라는 말에 조금은 낯설어하더니 이내 다들 진심어린 이야기를 꺼내주었다. 상투적이고 뻔한 이야기가 아닌, 힘이 되는 조언들이었다.


#단원님들, 앞으로 꽃 길만 걸어요!

끝으로 몽골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계획이 있는지 들려주세요.
박정현 : 이 봉사활동을 시작한 계기를 단원들끼리 키워드로 요약하여 후원의 밤에 발표한 적이 있지요. 그때 저는 ‘현장’을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현장을 보고나니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정해지더라고요. 그것은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에요. 정치외교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저는 조금 더 전공을 좁혀, 지금 서울대학교 환경정책대학원 입학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조금 더 공부해서 돌아오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박지혜 : 퇴사 후 제가 어떤 일을 잘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고민한지 3년이 되었네요. 아직도 무엇이 잘 맞는지 어떤 일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지 찾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제가 어떤 일을 재밌어하고 잘하는지는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당분간 건강 회복하는데 시간을 투자하면서 새롭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합니다. 몽골에서의 1년은 분명 제 인생에 변화를 주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양효선 : 현재는 고향에 돌아와서 쉬고 있어요. 올해 하반기부터 해외취업을 준비할 것 같아요. 제 첫 직업은 국제개발 쪽이 아닐 것 같지만, 국제 개발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직업은 국제개발 분야에서 가질 계획입니다.

이나리 : 이전에는 별로 찾지 않았던 나름의 ‘고요’에 빠져있어요. 그러다 때론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 이전의 나와 지금의 너를 나누고 있습니다. 가끔은 맑은 하늘, 대부분은 탁한 하늘이지만 한국의 소담하고 오밀조밀한 예쁜 자연을 눈에 가득 담고 있습니다. 시원하고 맑은 숲 냄새도요.
그리고 곧 몽골로 다시 돌아가 푸른아시아 활동가로서 다양한 활동들이 기다리고 있겠네요! 많은 응원 부탁드릴게요.(웃음)

혹 못 다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박정현 : 우선 푸른아시아의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푸른아시아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렇게 발전하지 못했을 거예요.
또한 뉴스레터를 읽는 모든 분들께 ‘아직 희망을 놓을 때가 아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현장(다신칠링, 울란바타르)에서 반짝이는 그분들의 눈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몽골과 한국에 있는 우리는 서로 일체 만난 바 없지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삽니다. 몽골에서 저는 이 환경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많은 분들을 보았어요. 그분들의 이런 숭고한 수고는 우리가 포기하는 순간 헛되이 되어버립니다. 그것이 한국에 있는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박지혜 : 단원 모집 단계부터 한국에 귀국하는 순간까지 애써주신 푸른아시아 활동가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써주시고 활동하는데 지지해주신 덕분에 1년 파견생활 잘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처음 하는 일이라 많이 부족했는데 질책하기보다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용기 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양효선 : 푸른아시아 서울 본부와 몽골 지부의 많은 활동가분들, 돈드고비 주민직원 분들, 동네에서 자식처럼 저희를 챙겨주신분들, 가족들, 친구들 등등 많은 분들 덕분에 1년 동안 탈 없이 잘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나리 : 1년간 단원들 곁에서 혹은 멀리서 마음 써주신 푸른아시아 여러 가족분들 감사드립니다! 모두 맑고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기 위해 함께해요!

 

1년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발을 내딛게 될 귀국 단원들. 사회로 돌아가면 ‘◯◯단원님’이라는 호칭보다 ‘◯◯씨’라는 호칭에 더 익숙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이날을 기억하리라. 어느 힘든 날, 몽골에서의 추억과 그들이 했던 숭고한 활동들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꼭 그러기를 바라본다.

글 배윤진 푸른아시아 캠페인실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