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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00-[유전자 에이전트 김용범의<방귀와 분뇨의 비밀 이야기⑨>] 추억 속의 채변 봉투, 그때가 더 나았다?

김용범 프로필1

똥이란 말을 들으면 나는 몸에 뭔가가 스멀스멀 기어가는 것 같다. 아주 기분이 나쁘다. 회충에 대한 기억 때문인 것 같다. 대학 때 회충을 해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라면처럼 꼬여있던 내장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것을 볼 때 어쩐지 영 기분이 나빴었다. 뱀같이 생긴 긴 모양도 한 몫 할 수 있다.

회충과 관련해 기분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혼자 생각해 보면 슬며시 미소를 짓는 추억도 있다. 그것은 채변 봉투와 관련된 것이다. 검정 고무신이란 만화 때문에 요즘 젊은 애들도 채변 봉투를 안다. 채변봉투는 종이봉투와 그 안에 조그만 비닐봉지가 있다. 그것을 학교에서 받으면 성냥개비로 비닐봉지에 똥을 담은 후 불로 지져서 입구를 봉한 후 종이봉투에 넣는다. 다음 날 또는 정해진 날 학교에 제출했다.

한 번은 한 학생이 두툼한 라면을 하나 가져왔다. 일반적인 라면과 비교할 때 비닐봉지가 너무 빵빵했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라면을 내는 학생을 보고 이게 뭐냐고 물었다. 학생이 똥이란다. 채변 봉투를 잃어버려서 다른 봉투에 똥을 담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라면 봉지가 빵빵할 만큼 잔뜩 가져온 것이다. 그때 선생님의 표정은? 이것을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걸 이렇게 가져오면 어떻게 해!”라고 소리치셨던 것 같다. 받았는지 어쨌는지 내 기억은 여기까지인데 그 학생은 지금 잘살고 있겠지 싶다.

채변 봉투를 내고 나면 그 후 몇 개월이 지나면 선생님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호명된 누군가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나온다. 이때 아이들은 다 같이 웃는다. 무슨 뜻인지 알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일을 하지 않았어야 하는 것 같다. 학생의 인권도 있지 않은가? 어쨌거나 믿거나 말거나지만 회충약을 받으러 난 한 번도 불려 나간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따로 불러서 회충약을 주었더라면 그 학생의 수치심이 덜 했을 것 같다. 지금이라면 난리가 났을 수 있다. 나도 때론 학생들에게 수치심이 들지 않게 하려고 중간고사 성적을 개인에게 문자로 다 보내주기도 했었다. 상대가 누구든 존중을 위해서다. 직접 성적을 문자로 보내주니 상대를 살피고 존중해주는 것 같아서 나는 좋은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걸려서 학생 수가 많으면 실행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회충약을 주고 나면 며칠 뒤 몇 마리 나왔는지를 생활기록부에 기록했던 것 같다. 어릴 때 다니던 초등학교를 찾아가서 생활기록부를 확인하면 기생충이 몇 마리 나왔는지 확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서 몇 마리 나왔는지 확인하면 창피할까? 나이가 먹어서인가 이런 정도는 창피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웃길 것 같다. 그래서 문득 회충이 몇 마리였는지도 친구들과 함께 확인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초등학교 다닐 때 모르던 회충에 대한 중대한 사실이 있다. 옛날에는 조그만 벌레 정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회충은 25cm가 넘을 만큼 제법 길다. 암컷은 30cm를 넘기고 큰 것은 40cm까지 된다고도 한다. 대학에서 회충을 해부하며 이것을 알고 속으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상상해 보라. 똥을 한 번에 40cm 정도 길게 눌 수 있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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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택종 작가

이택종 작가는 강릉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꿈과 낭만 속에서 자랐다. 지난 25년간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았다. 그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삽화 및 만화작업을 했다. 현재는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웹진 ‘e행복한 통일’에 월간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한 번 힘을 주면 끊어지지 않은 똥의 길이가 얼마나 될까? 40cm 이상 길게 쭉 빼는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더구나 배변을 시작할 때 회충도 같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긴 회충이 어떻게 될까? 접혀서 잘 나오면 다행이지만 길게 펴져 있다면 중간에 항문에 걸리기도 한다. 그것을 빼내려면? 방법은 한 가지다. 손으로 잡아 빼야 한다. 더 한 경우는 살아있는 회충 여러 마리가 누군가의 항문을 비집고 나오기도 했었다.

이런 삶을 살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똥을 싸면 그것을 모아 밭에 뿌리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채소를 키웠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먹고 소화를 시키면 다시 똥이 나온다. 그것은 다시 밭으로 가서 거름이 되고, 채소가 자란다. 그런데 이 사이클을 도는 동안 회충 알도 함께 돌았다. 몇 개월 또는 1,2년 전에 있던 회충의 자손이 다시 우리 뱃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옛날엔 회충이 어떻게 뱃속으로 들어오는지 몰랐다. 이것이 그런 삶을 산 이유다.

비록 이런 삶이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가 하나 있다. 자원의 순환이다. 똥과 사람의 음식 그리고 채소 등이 연결되어 순환했다. 똥이 상태를 바꾸어가며 순환한 것이다. 즉, 자원 순환 구조 사회였다.

이런 자원 순환 구조는 회충에게도 참 좋은 세상이었다. 언제든 자기가 살 행복의 터전이 주변에 널려 있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따뜻한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종 보전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회충은 그 시절이 얼마나 좋았을까? 무척이나 행복했을 것 같다.

지금은 그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똥의 순환 구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 똥은 정화조를 거친 후 하수구를 통해 강과 바다로 나간다. 똥 속 자원이 직선형으로 흘러 사라진다. 그러다 보니 회충 알이 돌아서 사람에게 갈 기회가 없어졌다. 회충이 여기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사람들은 회충을 잡는 약도 개발했다. 고난의 연속이 된 회충. 회충을 구경하기조차 힘들어졌다. 어쩔 수 없이 인간에게 작별을 말하고 있다.

인간을 향한 회충의 작별인사. 이 인사가 정말 인간에게 좋을까? 똥이 거름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인 질소와 같은 영양물질 때문이다. 속에 있는 인과 질소를 생각해 보자. 인과 질소는 식물 생장에 필요한 비료다. 옛날엔 똥이 밭으로 가니 이것들도 밭에 있고 채소가 이 영양분을 흡수했다. 과거엔 질소, 인, 칼륨 등 식물 성장에 필요한 원소들과 사람 삶에 필요한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이 태양과 식물을 매개로 연결되어 있었다. 똥이 분해되어 식물의 영양물질이 되고 그것이 다시 광합성을 통해 사람에게 필요한 생체 구성성분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똥이 정화조를 거쳐 하수구를 따라 강으로 흘러간다. 무엇이 나가는 것인가? 단지 똥만이 아니다. 그것에서는 식물 성장에 필요한 인, 질소 등 다양한 영양물질이 있다. 이것도 함께 흘러간다. 그러면 인과 질소는 어떻게 보충해야 할까? 인광석을 캐내서 사용한다. 질소는 인위적으로 고정한다. 이때 엄청난 화석에너지를 쓴다. 화석에너지 하면 요새 유행하는 것이 있다. 초미세먼지다. 이것이 암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도 생긴다.

더구나 똥을 혐기성 발효를 하면 메탄가스를 얻을 수 있다. 바이오 연료가 되는 것이고 화석 연료를 줄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싸는 똥의 양이 하루에 약 500g 정도다. 5천만 명이 하루에 배출하는 똥의 양은? 2.5만 톤이다. 이것을 모두 메탄가스로 바꾸면?

노르웨이가 2010년에 생산한 바이오가스는 약 0.5 TWh라 한다. 이 중에서 분뇨가 32%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산업폐기물 22%, 가정 쓰레기 14%, 음식점 7%, 그리고 매립지 12% 등이다. 똥이 엄청난 에너지 자원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인, 질소와 함께 그냥 강으로 바다로 간다. 그리고 강도 바다도 부영양화로 몸살을 앓는다.

회충이 우리에게 직선형 작별을 고하고 거의 사라진 지금 회충처럼 인간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인간의 자원 소모로 인한 기후변화다. 이것이 계속되면 인간도 회충처럼 지구와 직선형 작별을 고해야 할지 모른다.

인간이 지구와 작별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자원이 순환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순환 사회는 단순히 똥을 비료로 쓰고 메탄으로 바꾼 사회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순환 사회는 태양에너지를 잘 이용하는 사회다. 태양을 이용한 전기 생산뿐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자원을 가능한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를 이용해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재생이 가능한 자원을 이용하는 것을 늘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식물을 키워서 종이를 만들거나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식물을 적당히 가공하면 신발도 만들 수 있으며 옷감도 짤 수 있다. 더 나아가 플라스틱이나 휘발유도 얻을 수도 있다. 식물을 태양만 있으면 자라는 것이니 이런 것을 이용해 삶에 필요한 자원을 얻는 것이다. 이런 사회로 가자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태양을 통해서 식물이 고정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을 위해서는 아마도 과학기술의 발전이 더 필요하겠지만 충분히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 중에서 식물이 고정하는 것은 2%다. 나머지는 다 지구 밖 우주로 나간다. 이 중에 절반인 1%는 식물이 에너지 대사를 통해 내보내고 오직 1%만이 남는다. 태양에너지의 1%를 가지고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지지고 볶는 것이다. 만일 이런 태양에너지 고정 능력을 지금보다 조금만 더 늘릴 수 있다면 어떨까? 화석 연료의 사용이 준다. 다른 자원들도 식물을 이용해서 만들 수 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온난화는 사라질 것이다. 더운 여름을 힘겹게 날 필요가 없다.

지구 온난화로 허덕이는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자원이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생 가능한 순환 자원에 대한 인간의 생산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필요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난 이런 분야의 투자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런 분야의 발전은 인공지능이 개발되어도 일자리 걱정은 없을 것이다. 단적으로 과거에 없었던 일이라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없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더 필요하고 도움이 될 것 같다. 과거에 만든 데이터 분석을 효과적으로 분석해 이해하기 위해서다.

어쨌거나 회충이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적어도 자원이 순환했다는 측면에서는 그때가 더 나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마치 우리에게 직선형 자원 소비가 아닌 순환 구조로 만들라고 회충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다. 지금과 같은 직선형 사회구조로 살면 그들처럼 된다고 말이다.

“녀석! 자기도 살고 함께 싶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