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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98-[유전자 에이전트 김용범의<방귀와 분뇨의 비밀 이야기⑦>] 어떻게 될지 모르면 어떻게 하나?

김용범 프로필1

얼마 전 주변 사람에게 방귀 관련 일화를 부탁했다. 그로부터 얼마나 흘렀을까? 난데없이 특정 회사의 돌체 라떼에 대해서 알려왔다. 특정 회사를 선전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러나 이것을 마시면 방귀가 유난히 많이 나온단다. 평소보다 냄새도 고약하고 소리도 푸-슉!하고 나온다고… 호기심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돌체 라떼는 관장 라떼라고도 한다. 관장 라떼를 알려준 사람은 변비 해결을 목적으로 이것을 사 먹었는데, 쾌변과는 거리가 멀고 방귀만 나왔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방귀로 알고 힘을 주었더니 똥이 나오는 경우를 ‘황당’이라고 한다는 농담이 문득 떠올랐다.

돌체 라떼는 연유 위에 커피를 얹은 것이다. 연유는 우유와 설탕을 섞어서 졸여 만든다. 1리터 우유로 약 350 ml 정도의 연유를 만든다. 연유 1 ml를 먹으면 약 세 배의 우유를 먹는 것과 같다. 우유 속에 들어있는 젖당과 단백질도 약 3배 정도 될 것이다.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면 방귀가 아주 구리다. 단백질에 있는 황이 분해되어 황화수소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유 먹고 뀐 방귀는 당연히 더 구릴 것이다.

어른이 우유를 먹으면 뱃속이 부글대고 속이 편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증상의 원인 중 하나가 우유에 있는 젖당이다. 이것을 분해하는 효소는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에만 나온다. 성인이 되면 잘 나오지 않는다. 어른은 젖당을 잘 분해하지 못해서 소화가 안 된다. 우유를 먹으면 속이 부글대면서 뱃속이 불편하거나 소화불량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다.

소화가 잘 안 되면 장과 뇌가 서로 핫라인으로 통화를 한다. 뱃속에 이상한 것이 있으니 빨리 버리라는 신호를 뇌가 보낸다. 그러면 항문에 사는 뱀(설사) 등의 형태로 배변을 촉진한다. 이것이 아마도 쾌변을 보게 해주는 이유가 될 것 같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우유를 잘 먹지 않는다. 속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입에서 맛이 있어도 먹지 않는다. 그렇다면,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다시 가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입에서 음식이 맛있어서 다시 갈까? 그렇지는 않다. 어떤 음식점을 다시 가는 것은 뇌와 장 사이의 핫라인이 만족도가 중요하다. 입맛은 중요치 않다. 인간은 이처럼 우리의 상식을 깨는 모습을 가진다.

우리나라 사람은 젖당 분해 효소가 어른이 되면 잘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서양 사람들은 다른 점이다. 이들은 약 3천 년 전에 유전자 돌연변이가 생겼다. 우리와 다른 새로운 특성을 얻었다. 어른이 되어도 젖당 분해 효소가 나오도록 유전자가 바뀌었다. 이렇게 바뀜으로써 가축을 사육한 후 유제품을 먹는 사람들이 영양을 더 잘 섭취할 수 있었다. 성인 중 우유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생존 가능성이 올라갔고, 더 잘 살 수 있어서 자손을 남기기 유리했다. 이러한 것을 적응도가 올라갔다고 한다. 그 결과 지금은 이런 유전자를 가진 사람만 남았다.

생존 가능성 향상, 즉, 적응도 향상은 인간의 지속적 생존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아무리 옳고 문화를 만들어도 사람이 죽으면 그 문화는 유지되겠는가? 사람들은 죽어 사라지고 결국 문화도 사라지고 만다. 옳다고 하더라도 생존할 수 없다면 사라진다. 어쨌거나 생명체는 38억 년간 생존해 왔다. 이것보다 오래도록 유지한 국가가 있던가? 따라서 생명체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하고 이용하면 지속 가능한 사회나 국가의 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이라 초미세먼지가 심각해지고 있다. 중국이 핑퐁외교로 1970년대 경제 발전을 시작할 때 중국의 초미세먼지로 우리가 고생할 것을 미리 생각했을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불가능했다. 중국이 자기 잘 살고 싶었겠지 우리에게 초미세먼지 보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체 라떼 이야기를 전해 준 사람도 마찬가지다. 쾌변을 위해서 사 먹었지만, 쾌변과는 거리가 먼 방귀만 나왔다. 엉뚱하게 주변 사람이 구린내 속에 고통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애초의 목적과 다른 예상할 수 없는 결과를 얻은 것이다.

모든 인간 활동은 이와 같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나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다. 초기의 미세한 차이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 능력 또는 지적 능력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떤 행동을 하면 그로 인해서 다른 어떤 문제가 항상 발생한다. 심한 경우 목적한 결과를 얻지 못하기도 한다. 이렇게 현재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어떤 상황이나 일이 생기는 정도를 불확실성이라고 한다.

불확실성은 인간의 능력으로 예측할 수 없다. 얼마 전 고등학교 동기가 췌장암으로 죽었다. 그와 가까웠던 약사인 친구가 정말 슬퍼했다. 췌장암으로 투병 중일 때 정말 고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시간이 흘러 죽었다. 고등학교 동기를 보내러 화장장에 다녀올 때 기분이 참 묘했다. 그런데 지금 약사 친구는 대장암으로 투병 중이다. 친구의 암을 슬퍼하면서 자신이 걸릴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50대 중반인데 대장암 3기인 것이다. 불확실성이란 것의 특징이 이렇다. 어찌 될지 전혀 모른다.

암에 걸릴 확률은 높지 않다. 그러나 누가 걸릴지 모른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크다. 누군가 걸리고 걸리면 죽는다. 따라서 이것을 관리하지 않으면 죽는다. 암에 의한 사망이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포기해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불확실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한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암 보험이다. 암에 걸리면 치료비 등을 부담한다. 그러나 생존을 보장 못 한다.

이것보다 더 좋은 불확실성 관리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암에 관한 한 무엇이 좋을까? 또 다른 친구 하나는 위암으로 위를 완전히 제거했다. 그 녀석은 위가 없다. 위가 없어서 늘 위가 없다는 농담을 달고 산다. 암 수술을 한 후 그 녀석은 등산을 즐긴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놀고, 등산하고,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 있는 자원을 나눈다.

선배들도 후배들도 그와 함께 있으면 즐거워한다. 그 친구는 쾌활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이 심심해하지 않는 것 같다. 타고난 재주일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가 주위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것 중에 지식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암으로 위를 제거한 지 10년이 넘었고 아직 건강하게 산다. 의학적으론 완치다. 어떤 보험이 이런 것보다 더 좋을까? 보험은 비용을 댈 수는 있을지라도 오래 산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나눔은 치유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숭고한 행복을 느끼면 면역 기능과 관련된 유전자가 발현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것으로 볼 때 미래의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이 가치 있는 자원을 나누는 것이라 믿는다. 나눔은 생존의 필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누면 오히려 자신의 자원이 줄어들게 되는데 어떻게 생존의 필수일까? 궁금할 것 같다.

수렵채집사회의 사냥꾼 예를 들어보자. 훌륭한 사냥꾼이 있다고 하자. 그가 사냥에 성공해서 커다란 사슴 한 마리를 잡아서 돌아왔다고 하자. 자기 집 식구들만 불러서 혼자 다 먹으면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사실 커다란 사슴은 몽땅 다 먹을 수가 없다. 남겨도 수렵채집사회에선 보관이 쉽지 않아 쉽게 상해버린다. 말려서 보관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맛은 아무래도 떨어진다.

이때 어떻게 할까? 나눔을 선택한다. 이 행동은 유전자에 있는 것 같다. 고기를 나누더라도 아무렇게 길거리 내 버리듯 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나눈다. 혈연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양을 준다. 이들은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으니 유전자의 입장에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다음으론 호혜적 이타주의다. 자신이 이번에 사냥에 성공했지만, 다음에 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사냥에 실패하면 굶어야 한다. 그것이 우연히 여러 번 겹치면 어떻게 될까? 사망으로 이어진다. 이런 것 때문에 흡혈박쥐는 사냥에 성공한 동료와 피를 나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이미 신세를 졌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자원을 나누면 신세 갚는 것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베푼 것은 나중에 받을 수도 있다.

세 번째는 징발묵인이다. 사슴이란 자원을 가지지 못한 다른 사람들이 달라고 하는 것이다. 사냥에 도움을 준 것도 아니지만 고기를 달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자원을 주지 않으면 갈등이 생긴다. 갈등은 또 다른 에너지 소모를 발생시킨다. 사슴고기란 자원을 지키는 것이 더 좋을까? 아니면 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더 나을까? 이 둘 사이에 균형점을 찾는다. 그리고 나누어주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면 나누어준다. 이것은 매우 큰 사슴을 잡았을 때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현재도 주변에서 흔히 본다.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복권 당첨이다. 복권에 당첨되었을 때 당첨금을 혼자 다 가지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전화번호를 바꾸는 일이다. 가족, 친지, 기부단체 등 주변에서 돈을 달라고 전화를 걸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나누기 싫어서 혼자 다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잘산다는 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망하는 사람이 많으니 갑작스럽게 생긴 돈은 그것으로 타인에게 인심을 써라. 그것이 본인도 망가지지 않고 더 남는 것이다.

징발묵인은 동물이 세계에도 흔히 있는 현상이다. 커다란 사냥감을 사냥하면 주변에 다른 동물들이 몰린다. 자신이 잡은 것도 아닌데 뜯어 먹는다. 사냥한 동물이 다른 동물을 쫓아내려고 해 보지만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포기하고 같이 먹는다. 이런 행동이 징발묵인의 한 종류인데 많은 동물에게 발견되는 행동이라 인간의 유전자에 있는 것 같다. 인간은 우연히 동물 유전자가 약간 개선되어 나타난 존재 아닌가?

인간도 자신에게 별 필요 가치가 없으면 선심 쓰며 타인에게 준다. 오늘 마감인 영화초대권. 자신이 갈 수 없다면 어떻게 할까? 시간이 되는 친구를 찾아 준다. 굳이 가까울 필요도 없다. 모르는 사람을 줄 수도 있다. 이것이 징발묵인이다. 나는 라스베가스에서 이 징발묵인의 덕을 톡톡히 봤다. 우연히 한국 사람을 만났는데 그분들에게 갑자기 일이 생겼단다. 서커스 관람권이 있는데 자신들은 집으로 가야 하니 보지 않으면 표를 버려야 한다며 우리에게 표를 준 것이다. 백호가 나오는 서커스 쇼 표였다. 우리에게 표를 준 사람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우린 서커스 잘 구경했다.

마지막으로 나눔을 하는 이유는 값비싼 신호의 역할이다. 한 마디로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서 반대급부를 얻는 것이다. 이것은 수컷이 가지고 있는 특징으로 암컷에게는 없을 수도 있다. 수컷이 사냥을 잘하면 어떨까? 그와 결혼해 자식을 낳는 암컷은 먹고 살기 유리하고 자손을 잘 키울 수 있음을 증명한다.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더 많은 여성과 결혼하며 더 많은 자손을 낳을 수 있다.

남성과 달리 여성의 값비싼 신호는 외모다. 이것을 남과 나누지는 않지만, 자신의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 공장의 아름다운 깃털을 수컷이 가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게 함으로써 능력 있는 남성이 접근하도록 한다. 남성은 배란기 여성을 더 매력적이라고 느낀다는 사실을 혹시 아는지 모르겠다. 인간의 동물적 본능도 인간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인간 본능의 다른 것으로써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은 일부일처제가 보편적이지 않았다. 중앙아시아의 인구 8%는 한 남자의 Y염색체를 공유하며, 그 사람이 징키스칸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아일랜드는 10%의 남성이 5세기쯤 살았던 나일 장군의 자손이다. 청 태조의 할아버지 교창가의 Y 염색체는 1천5백만 명의 현대 남성들이 가지고 있다. 2015년 아시아 사람들의 유전자를 분석해 보니 널리 퍼진 혈통이 9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직 조상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혈동이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부를 얻었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적 지위나 재산이 값비싼 신호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당신이 나름 매력적인 여성이라 부인이 있는 재벌이 당신과 함께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할까? 거절할까? 받아들일까? AIDS에 걸린 외항선원인데 그것을 모르고 2년간 같이 살다가 나중에 알았을 때 어떻게 할까? 많은 여학생은 이혼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외항선원이 아니라 재벌이라면 달라진다. 이혼해서 위자료 받겠다는 여학생도 있지만, 같이 살겠다는 여학생이 늘어난다. 이것은 비하할 일이 아니다. 인간의 본능이 이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그만이다.

어쨌거나 일부일처제로 살았다면 특정 혈통의 사람이 다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없다. 신체 크기도 영향을 준다. 동물의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일부일처제는 신체 크기가 암수 사이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남성이 더 크다. 따라서 인간의 유전자는 일부일처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일부일처제가 인류에 등장하게 된 것은 매독과 같은 성병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성병으로 자손이 죽게 되면 난혼이나 일부다처보다는 일부일처가 더 유리하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1950년대만 하더라도 첩이 많이 있었다. 이런 것을 보면 일부일처 문화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른다. 참고로 프랑스는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은 채 동거 상태로 산다.

수렵채집사회에서는 사냥 잘하고, 잡은 고기를 잘 나누는 사냥꾼은 부인과 자식이 더 많다. 그러나 사냥꾼도 늙는다. 늙으면 사냥 능력은 떨어지게 되고 자연에서 얻는 자원이 줄어든다. 젊을 때 누가 자신도 늙을 것이라고 믿겠는가? 나이 들면 누구나 늙는다는 것은 알지만 실제 자신이 늙을 것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막연히 알 뿐이다.

나 자신도 그랬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매사에 더 욕심을 부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젊어서 주변에 많은 사람에게 베풀며 살았던 수렵채집사회 사냥꾼은 늙어서 거꾸로 보답을 받는다. 아플 때도 주위 도움을 많이 받는다. 나눔이 힘들거나 늙어서 더 좋은 삶게 해준다는 것이다. 즉,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매우 좋은 보험인 것이다.

수렵채집사회는 인류 생존 기간의 90%를 차지한다. 호모 사피엔스 이전에도 수렵채집사회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 길었을 것이다. 따라서 나누려는 본능이 인간의 유전자에는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친구가 많으면 더 행복하고, 자원을 나눌 때 숭고한 행복감을 느끼며, 면역 등의 유전자 발현을 좋게 해주는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나누면 아플 때나 외로울 때 그리고 늙어서 더 많은 친구가 주변에 생긴다. 후손도 많고 질별 치료에도 좋다. 나눔이야말로 인간 미래의 불확실성을 없애줄 멋진 보험 아닌가?

얼마 전 친구들에게 우리 나이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카톡방에 물었다. 그랬더니 나라 걱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노후의 안정성, 자식의 사회진출 문제 그리고 자신이 하는 사업의 지속성에 대한 걱정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인 것이다. 변비 해결을 위해 돌체 라떼를 먹었으나 쾌변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와 같은 개념의 고민이다. 모르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생기는 걱정 해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이미 말했지만 나눔이다. 이것은 유전자에 오래전부터 있는 보편적인 해법이다. 많은 동물이 나눔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을 해결했다. 친구가 걱정하는 자식의 사회진출 문제가 나눔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싶겠지만 나눔은 미래에 청년들의 직장 문제를 해결해줄 좋은 방법이다. NGO나 NPO 등이 제3 섹터를 활성화하면 이런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의 수요가 늘어난다. 최저임금도 늘어서 월급도 많아졌다. 기업이 아니더라도 직장이 늘어난다. 동시에 활동가도 숭고한 행복감을 얻는다. 사람들의 행복도는 더 올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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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택종 작가

이택종 작가는 강릉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꿈과 낭만 속에서 자랐다. 지난 25년간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았다. 그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삽화 및 만화작업을 했다. 현재는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웹진 ‘e행복한 통일’에 월간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나누는 사람을 우린 착한 사람이라고 한다. 착한 사람은 자신의 자원을 나눈다. 정보, 정서, 노동력, 그리고 자본. 이것들이 가치 있는 자원이다. 이런 자원을 나누며 살면 어떤 결과를 얻게 될까? 이것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나는 수년간 착하고 정직하게 살면 잘 살 수 있는지 수백 명의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명도 잘살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이 아직 없다. 오히려 못산다고 한다.

이런 대답을 들은 후 그들에게 자식에게 뭐라고 가르치느냐고 묻는다. 이상하게 즉각적으로 착하고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친단다. 이것은 이성이 생각과 사고를 통해 나온 대답이 아니라 본능이 한 대답이다. 이것을 알기에 살짝 장난을 친다. 착하고 정직하면 못사는데 왜 못살라고 가르치느냐고 한다. 그러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고민하다가 착하고 정직하게 살면 나중에 잘살지 않을까요? 가 고작이다. 이때는 아마도 이성을 썼고 합리화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식에게 즉각적으로 착하고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치겠다고 하는 것은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의 유전자에 들어있다는 증명이라 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 즉각적 반응은 제1 시스템에 있는데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렵채집사회의 생활상이나 나눔의 결과를 볼 때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유전자가 적응해온 삶의 방식과는 같은가?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며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있다. 앞으로 우린 어떻게 될까?

지구상에는 많은 멸종 위기종이 있다. 개체 수가 적어서 지구상에서 사라질 종을 멸종위기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지금 70억을 넘으니 멸종위기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도 멸종 위기종이 아닐까 한다. 적어도 지금처럼 살면 멸종하는 길밖에는 없지 않을까? 싶다. 과거 인간은 나눔을 효과적으로 이용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회에 나갈 걱정, 사업이 잘될 것인지 걱정, 그리고 늙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 등 걱정이 많아졌다. 한 마디로 불확실성이 커졌다.

좀 다른 관점이지만 ‘이곳은 사유지다. 들어오지 말라.’라고 한다면 우린 그것을 인정해준다. 그리고 거기서 얻어지는 생산물과 소득에 대해서도 국가가 정한 세금을 내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개인의 양심에 맡길 뿐 나눔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런 사유재산에 대한 인정이 어쩔 수 없이 자산 소득 증가를 만든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삶을 다르게 만든다. 생산수단을 가진 자가 더 잘살게 되고 부익부 빈익빈이 가속화된다.

다른 상상을 해보자. 만일 수렵채집사회의 징발묵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원을 공유하자고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인정된다면 어떨까? 혈연선택, 호혜적 이타성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번 사람들에게 자원 공유를 요구할 수 있다면 그들은 달라지지 않을까? 자신의 자원을 나눌 것이냐 아니면 가질 것이냐 중간에서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나누는 선택을 할 것이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이기적으로 비추어지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수렵채집사회에서 커다란 사슴을 잡아 왔다면 그것은 잡은 사람 소유다. 사유재산이 보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원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공유된다. 자원 공유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때 자원 공유 요구를 할 수 없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될까? 이기적이고 배타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말려서 저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협동이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미래가 불확실한 환경에서는 공멸이다. 인간이 생존해 오는 동안 유전자는 협동을 위한 행동 특성을 유전자 속에 심어두었고, 자원 공유하자는 요구는 그렇게 얻은 자원에 대해 마음의 빚을 가지게 했다. 언젠가는 돌려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인간은 선조 종부터 이렇게 자연에 적응해 수십만 년간 생존을 이어올 수 있었다.

이제 현대의 삶을 생각해 보자. 사유재산이 많은 자가 자신의 재산을 늘리고 싶다면 혼자서는 어렵다. 노동이란 자원을 가진 자 협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노동의 답례를 임금으로 제공한다. 이것도 일종의 자원을 나누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 협력해서 자원을 가공하고 마케팅이란 이름으로 소비를 늘린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방출한다. 일부의 이익을 얻기 위한 활동 결과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모든 사람에게 견디기 힘든 더운 여름을 선사한다.

난 시간강사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 돈을 못 버니 이산화탄소가 나오는 전기도 아낄 만큼은 아낀다. 자동차도 없이 대중교통으로 다닌다.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에어컨 빵빵 켜며, 나 홀로 차량으로 출퇴근한다. 그러다 보니 내 삶의 활동이 적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늘리는데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들보다 더 힘들게 여름을 보낸다. 이산화탄소를 덜 배출했는데 그들과 같은 더위를 겪는다. 그래도 나는 그나마 낫다. 나보다 더 가난하고 힘들어 죽음에 이르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지난여름 같은 무더위를 누군가 견뎌야 하는 이유가 뭔가?

초미세먼지 문제도 마찬가지다. 초미세먼지 원인 물질을 내보내는 사람들은 기업가며 거기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이다. 마찬가지의 상황이 벌어진다. 자본가는 자본 투자한 대가로 이익을 얻고, 노동자는 노동의 대가로 급여를 받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내 품은 대기오염물질이 만든 초미세먼지 마시며 암을 걱정한다. 초미세먼지 원인 물질을 내보낸 사람들은 나보다 더 잘산다. 연봉 1천만 원짜리 시간강사보다 그들 연봉이 많지 않겠는가? 그들이 내게 빚을 갚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오염의 원인 물질을 내보내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기란 공공의 자원을 이익을 위해 더 많이 사용한 사람들의 책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른 차원이지만 자원을 더 많이 사용한 자는 초미세먼지 같은 오염이나 지구 온난화 유발뿐 아니라 다른 기술을 개발하게 한 책임도 있다. 자원이 고갈되면 그것을 기술적으로나 다른 형태로 대체해야 하지 않는가? 더구나 가치 있는 자원이 자연 상태로 만들어질 때 그 어떤 사람도 노동을 투여하지 않았다. 천연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게 한 사람은 없다. 철이 중요한 자원이지만 지구에 철이 존재하게 한 사람은 누구인가?

철 성분을 추출해서 사람이 쓸 수 있게 하는 것은 노동이라 특정한 개인이 가지는 것을 타당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철이란 물질 자체는 인간 노동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다른 광물질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은 핵융합으로 생성되지만, 현재의 인간 능력으로 만들기 어렵다. 오직 자연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처럼 물질이 원래 가지고 있던 가치는 인간의 노동력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것을 특정 개인의 소유라고 할 수 있을까? 따라서 내게 자원 공유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국민에게도 그러한 권한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본능에 자원 요구권이 있다. 그러나 이런 본능이 아니더라도 못 가진 자는 가진 자에게 자원 공유를 요구할 수 권리가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자원의 종류와 상관없이 가지지 못한 자에게도 ‘자원 공유 요구권’이 있어야 한다. 인간 본능, 자원 자체의 가지, 그리고 공공자원 이용의 편중성 때문에 발생하는 피해를 생각할 때 필요한 권리라 생각된다.

자원 공유 요구권이 있으면 사유재산을 인정하더라도 우린 더 자유롭고 평등해질 수 있다. 자본가를 포함해서 사유재산이 많은 사람이 얻은 이익을 일정 수준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에서 공유가 가능해지면 가난한 자는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 가난을 벗어나면 삶이 더 행복해진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초석으로 이용할 수 있다. 더구나 이 권리가 인정되면 월경 오염물질인 초미세먼지 피해도 보상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어쨌거나 자원 공유 요구권은 부익부 빈익빈 가속을 종식하여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권리가 아닐까 한다.

이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어서 가진 자에게도 유리하다. 그들도 다른 사람에게 자원 공유를 요구할 수 있다. 더 저렴하게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공유권 때문에 일정 시간 후 이익의 많은 부분을 도로 내놔야 하지만, 실패를 걱정하지 않고 새로운 생각으로 남다른 모험을 할 수 있다. 초기 투자 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자본이 없는 사람도 이런 시도가 가능하다. 그리고 실패 후 다시 재기를 모색하기도 좋다.

노동자도 걱정할 것이 줄어든다. 그들의 노동력 투자가 실패하더라도 누군가 이익을 얻은 사람이 있으면 그 자원을 공유할 수 있다. 즉, 기본 소득 또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얼마나 많이 공유를 요구할 수 있느냐,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그것을 요구할 수 있느냐는 앞으로 더 깊게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게 지원해주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 따라서 가치 있는 자원 공유를 요구할 권리를 인정하고 이것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치 있는 자원 공유 요구권. 이 개념은 근대 국가에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덜어진 것은 아니다. 원래 인간의 삶에 녹아있었던 권리다. 유전자에 있던 권리며 자연 자원의 이용과 관련된 권리였다. 더 나아가 다른 생명체에게도 있던 권리다. 게다가 대기와 같은 자원 이용 및 피해에 형평성 문제가 생기면서 현대에 더욱 필요해진 권리가 되었다.

나는 이 권리가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경쟁을 줄이고 무능하거나 약한 개체의 생존 가능성을 올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무위도식하는 개체를 만들거나 약탈자를 만들어낼 우려도 있다. 따라서 이런 권리를 주장할 때는 자원을 가진 자의 수준, 요구 규모, 기간, 그리고 정직성 등 여러 가지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나는 ‘가치 있는 자원 공유 요구권’을 제도를 통해 구현하기를 바란다. 많은 종의 생명을 다양하게 유지하게 해주었던 필수 방식 중 하나였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전적 다양성을 올릴 수 있으니 일석삼조다. 지금 당장 실천하자고 하고 싶지만, 인간의 사고가 금방 달라지는 것은 아니란 것을 잘 안다.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논의하고, 국민의 생각이 바뀌며, 동시에 정치인의 사고가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걸릴지 나는 모르겠지만 이 권한이 제도적으로 인정되는 세상이 빨리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