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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98-[엄민용 전문기자의 <우리말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⑭>] 까치는 설을 쇠지 않는다

프로필_엄민용1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 우리들의 절받기 좋아하셔요”

윤극영 님의 동요 ‘설날’의 1·2절입니다. 본래는 4절 짜리 노래로, 그중 1절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 듯합니다. 물론 아주 어린 유아들은 말고요.
노랫말에서 보듯이 한 40여 년 전만 해도 설을 앞두고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새 신과 새 옷을 사 주시곤 했습니다. 또 때때옷을 입고 일가·친척 어른은 물론이고 동네 어르신들께도 세배를 다녔습니다. 직장인들은 회사 상급자에게 절을 올리러 우르르 몰려가기도 했지요. 그렇게 설은 시끌벅적한 명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가족끼리 며칠 푹 쉬거나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이 설의 새로운 풍속도가 됐습니다. TV방송의 ‘설 특선 영화’가 없다면 설인지조차 알지 못할 지경입니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더니, 정말 세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듯합니다.

‘설’이라는 말 자체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설’이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로 흥이 넘치는 때이지만, ‘설’의 어원을 살펴보면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설’의 어원에는 여러 주장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서럽다’에서 유래됐다는 ‘설’입니다. 조선 선조 때의 학자 이수광이 지은 <여지승람>에는 설날이 ‘달도일’로 표기돼 있는데, ‘달’은 “슬프고 애달파한다”는 뜻이고 ‘도’는 “칼로 자르듯이 마음이 아프고 근심에 차 있다”는 뜻입니다. 추위와 가난 속에서 맞는 명절이라 그런지, 아니면 차례를 지내면서 돌아가신 부모님과 정겹게 지내던 때가 떠올라 그런지, 아무튼 설을 서러운 날로 여겼다고 합니다. ‘서러워서 설이요, 추워서 추석이다’라는 옛말도 있습니다.

또 ‘낯설다’ 따위 낱말에 들어 있는 ‘설다(익숙하지 못하다)’에서 설이 유래됐다는 얘기와 “근신하고 삼가다”는 뜻의 ‘사리다’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설을 맞아 떡국을 먹으며 한 ‘살’을 더 먹듯이 “나이”를 뜻하는 ‘살’이 ‘설’과 같은 뿌리의 말이라는 견해도 있고, “새로 솟아난다”는 뜻과 “마디”의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 ‘살(sal)’에서 기원했다는 설도 있고요.
아무튼 이들 주장을 종합해 보면 “설날은 묵은해를 떨쳐 버리고 새해를 맞이하는 날로, 만사에 삼가고 조심해야 하는 낯선 날”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요. ‘설날’이면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동요 ‘설날’에 등장하는 ‘까치 설날’이 바로 그것입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에서 ‘까치 설날’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 모두가 아는 새 까치도 설을 쇤다는 의미일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이설(異說)들이 있기는 하지만, ‘까치 설날’은 ‘아치 설날’이 바뀐 말이라는 것이 국어학계의 정설입니다. ‘까치 설날’은 윤극영 님의 동요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 문헌에서는 보이지 않는 말이라고 하네요.

다만 옛날에는 ‘작은설’을 가리켜 ‘아치설’ 또는 ‘아찬설’이라고 했습니다. ‘아치’와 ‘아찬’은 ‘작은[小]’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북 출신인 윤극영 님께서 ‘아치’의 경기도 사투리라고 할 수 있는 ‘까치’로 노랫말을 지으신 것으로 짐작됩니다. 즉 음력 정월 초하루가 ‘큰 설’이고 그 전날인 섣달그믐이 ‘아치설(작은 설)’인데, ‘아치설’이 ‘까치설’로 바뀐 것입니다. ‘설’이 크리스마스라면 ‘까치설’은 크리스마스 이브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일전에도 얘기했듯이 봄의 시작점은 음력 1월 1일, 즉 설날입니다. 중국에서도 매년 음력 1월 1일을 중심으로 춘절(春節)을 보내지요.
언제나 설 즈음이면 ‘입춘’이 들어 있고, 적잖은 사람들이 이날 봄이 시작된다고 여기는데, ‘입춘’ 같은 절기는 우리의 것이 아니고 중국 주나라 때 화북지방의 기상 상태에 맞춰 붙인 이름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전통적으로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데, 24절기는 태양력에 따른 구분입니다.

다만 농경 사회에서는 ‘입춘’ ‘경칩’ ‘곡우’ 등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힘을 갖춤”을 뜻하는 말로 ‘철들다’를 씁니다. 계절(季節)을 뜻하는 우리 고유어가 ‘철’이지요. 그런 것을 모르는 사람이 ‘철부지(-不知)’이고요. ‘철없다’도 같은 의미입니다.

또 ‘철’을 속되게 ‘철딱지’ ‘철딱서니’ ‘철따구니’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따라서 흔히 “이런 철따구니(철딱서니)를 봤나”라고 하는 말은 “이런 철따구니(철딱서니) 없는 사람을 봤나”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 됩니다.